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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명사(名士)의 베스트셀러

by 답설재 2010. 6. 24.

참 부끄러운 글이지만, 지난 5월 21일에 소개한 졸고(拙稿) 「가끔 절에 가서」에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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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나는 어느 절에 가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느니 어떠니 하는 소리도 들었는데, 문득 부처님을 찾아가 절하는 사람이 나처럼 이렇게 시주는 조금만 하면서 여러 가지를 골고루 빌면 그 소원을 어떻게 다 들어주겠나 싶어서 그렇게 비는 걸 포기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이렇게 빌었다. “부처님, 구체적으로 빌지 않겠습니다. 다만 부디 제가 좀 착한 놈이 되도록 해주십시오(‘내가 착한 놈이 되면 당연히 내 가족도 저절로 득을 보겠지.’).”

 

그러다가 또 어느 날, 이것도 다 부질없는 욕심이지 싶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부처님 앞에 한 달에 한 번 정도도 나타나지 않는 주제에 ‘착한 놈’이라니, 보시기에 어처구니가 없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 때부터는 이렇게 빌게 되었다. “부처님, 모든 것을 부처님 뜻대로 하십시오. 다만, 잘못한 일들은 당장은 안 되더라도 두고두고 뉘우치겠습니다. 그러니 지금을 심판하지 마시고, 두고 보아주십시오.”

 

그렇지만 부처님은 다 알고 계실 것이다. ‘이렇게만 빌어도 내가 이미 전에 빌고 빈 것들을 다 기억하실 것이다. 내가 이렇게 빌어 어느 날 착해지면 전에 기원한 것들을 다 들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음흉함, 혹은 내숭을 모르실 리 없다. 그건 내 마음의 변화가 잘 증명하고 있다. 문득 이렇게 빌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부처님, 저는 그렇다 치고, 또 앞으로는 착한 놈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고, 제 아내, 제 아들딸도 착하여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행복한 가족이 되게 해 주십시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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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어느 명사의 '참회론적 메시지'라는 책을 소개하는 광고를 보았습니다. 며칠마다 한 번씩 크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12주 만에 18만 부를 돌파했다니 어마어마한 베스트셀러입니다.

위와 같은 글을 쓴 저로서는 그 광고가 눈에 띠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본문에서 가장 감명깊은 부분을 인용한 글인지, 그 광고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들어 있었고, 저는 이 부분을 몇 번이고 읽어보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기원하는 마음과는 전혀 다른 접근방법의 기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매일 매일 우리는 당신께서 내려주시는 기적 속에서 삽니다. 그러니 기적이 아니라 당신께서 주신 그 기적들을 거두어 가지 마시기를 진실로 기도합니다. 만약 ○○가 어제 본 것을 내일 볼 수 있고 오늘 본 내 얼굴을 내일 또 볼 수만 있게 해주신다면 저의 남은 생을 주님께 바치겠나이다. 아주 작은 힘이지만 제가 가진 것이라고는 글을 쓰는 것과 말하는 천한 능력밖에 없사오니 그것이라도 좋으시다면 당신께서 이루시고저 하는 일에 쓰실 수 있도록 바치겠나이다."

 

'아, 기원은 이렇게 하는 것인가? 내 자식(?)을 낫게 해 주시면 내 재주를, 나를 다 바치겠다고 하는 거구나.'

'제대로 된 기원은 이런 것이구나.' ……

스님이나 신부님이나 목사님은 그렇다 쳐도, 여기서 이렇게 지내는 우리로서는 보다 직접적인, 당면한, 나에게 뭔가를 실현해주는, …… 그런 기원을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인가, 어차피 인간이란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깊이 깊이 하게 되었습니다.

 

위에서 보여드린 제 글이 실린 졸저(拙著) 『보고 읽고 생각하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라는 이름의 책은, 이제 서점에서는 살 수가 없고 인터넷 주문을 해야 우편으로 오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2005년 봄에 욕심스럽게도 3천 권을 찍었는데 출판사 창고에는 서점에서 반품된 그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