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때는 자주 이곳 교보문고에 다녀옵니다. 지금까지는 주민번호를 입력해주면 적립해주던 마일리지를 7월부터는 북클럽카드가 없으면 해주지 않겠다고 해서, 오늘은 그 카드를 새로 발급받으러 갔었습니다.
저는 다시 공부한다면 어떤 공부를 할까,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더러 합니다.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금까지는 "그거야, 교육학이지요!" 그런 대답을 했지만, 사실은 '아,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이렇게 많은데, 그 중에서 또 한 가지라니……' 하고 오래 망설여야 할 것입니다. ‘미학(美學)’도 그 중 한 가지입니다.
오늘은 그곳에 간 길에 F 26-1에서 미학에 관한 책 구경을 했습니다.
『동아시아 미학』은 600페이지나 되는 책이어서 눈에 띄었습니다. 저자 리빙하이(李炳海)는 저처럼 1946년에 태어났답니다. 저는 이렇게 살고 있는데 그는 그런 책을 썼으니 다 같은 병술생(丙戌生)이지만 그야말로 천지차이(天地差異)입니다.
공 선선생님이 일러주었다. "질(본바탕)이 문(꾸밈새)을 압도해버리면 촌스러워지고 문이 질을 압도해버리면 추해 보인다. 꾸밈새와 본바탕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다음에야 참으로 모범적인 인물이라고 할 것이다."
子曰 :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然後君子" -『論語』 <옹야편>
그 부분에 눈길이 멎어서 거기서부터 수십 페이지를 눈으로 훑어 내려가며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위의 글은 오래 전에 본 적이 있지만, 그땐 무슨 소리인지 몰랐었습니다. 생각하기에, 오늘 그 뜻을 이만큼이라도 짐작하게 된 것이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아무래도 그 책의 번역자 신정근 선생의 노력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더 서글퍼집니다. 이제 그만두어야 할 즈음에 보고 싶은 책은 너무나 많고, 이미 본 글들도 새로 다듬어져 이처럼 좋은 책 속에 담겨져 있으므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F26-1의 ‘미학(美學)’ 코너에 전시된 책은 100여 권입니다. 그 책 중 1/10 정도는 그 장정(裝幀)으로 보아 학점(學點)이나 업무(業務)가 아니라면 읽고 싶지 않은 모습이지만, 나머지는 모두 읽고 싶었습니다.
가령, 마쓰다 유키마사의 『눈의 황홀』은 도판(圖版)만 봐도 기가 막혔습니다. 에드먼드 버크의 『숭고와 아름다움의 이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미학의 고전(古典)이랍니다. 이 책들부터 읽어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욕심이나 나열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오늘 그 서점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방학을 했겠지요.
"우리나라 대학은 방학이 너무 길다", "1년의 반은 노는 기간이다", 그런 비판을 많이 하지만 학생들이 방학 동안에 읽어야 할 책들을 잘 제시해준다면 방학은 길면 길수록 좋을 것입니다. 교수들은 그것만 잘 해도 잘 가르친다는 말을 들어도 좋다는 생각을 합니다.
바닥에 아예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하염없이 책을 읽는 그 고운 여학생은 물론이고, "가능한 한 시간을 적게 들여 책을 읽고 좋은 점수를 받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큰소리로 설명하며 지나가는 한 남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야 그렇고말고!'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서점에 오는 젊은이가 많아지고 있는 우리나라는, 정치나 경제나 사회나 문화나 어느 면에서나 점점 젊어지고 있으니 참 좋은 나라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 젊은이들이 부럽습니다.
다시 공부할 수 있다면, 세상에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어제는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내일 또 가야 합니다. 내일은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일 실을 예정이던 글을 지금 서둘러 싣고 있습니다. 몸이 이렇게 되니까 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려고 사람들이 그렇게 좋았었나?' 그런 생각도 합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내가 왜 이런가 싶도록 좋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열렬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데 혼자 좋아하는 건 우스운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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