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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과정·교과서

어느 교사가 생각하는 2009 개정 교육과정

by 답설재 2010. 6. 10.

1945년 교육에 관한 긴급조치 및 교수요목, 1954년 제1차 교육과정, 1963년 제2차 교육과정, 1973년 제3차 교육과정, 1981년 제4차 교육과정, 1987년 제5차 교육과정, 1992년 제6차 교육과정, 1997년 제7차 교육과정.

우리나라 국가 교육과정이 공포·고시되어온 내력입니다.

그 이후에는 2007년 개정 교육과정이 나왔고, 이어서 지난해에 2009 개정 교육과정(미래형 교육과정)이 고시되었습니다. 그간 교과목 혹은 영역별로 부분개정된 건 생략하고 열거했습니다.

 

그러므로 9년, 9년, 10년, 8년, 6년, 5년, 5년, 10년이던 개정주기가 미래형 교육과정에 이르러 갑자기 2년으로 줄어들었습니다.1

“이 기간에 어떻게 연수하고 준비하고 익숙해지란 말이냐.” 같은 이야기를 하려면 할 수도 있고…… 아니 뭐, 할만한, 혹은 하고 싶은 이야기야 많겠지만, 일선에서 그 교육과정을 실천하는 교사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비난이나 비판을 ‘일삼기’보다는(논리적이고 실천적인 비판이 필요 없다는 얘기는 전혀 아닙니다. 그런 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이 교육과정에 익숙해질 수 있겠나’를 생각하는 것이 이른바 ‘생산적’이지 않겠습니까?

 

그런 선생님을 한번 만나보십시오. 저에게만 공개하는 거라고 하셨는데, 익명으로라도 공개하고 싶었습니다.

특별한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보기는 어렵고, 부분적으로 서로 생각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다만 벌써부터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교장선생님! 며칠 전 맞춤장학 때 협의주제로 '2009 개정 교육과정의 효율적 운영방안'을 얘기하게 되었는데…… 숨이 턱 막혔습니다. 분명 변화되는 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전략들이 바람직하나 일선교사들로서는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제 생각을 짧으나마 쭈욱 나열해보겠습니다. 읽어보시고 많은 가르침을 주세요

~

다른 분들에게 공개하기에는 제 짧은 생각이 너무도 부끄러워 교장선생님께만 공개하기로 한 것입니다……^^

 

 

2009 개정 교육과정의 배경을 보면 미래사회에 대응하기 위하여,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인재 양성을 필요로 하고, 고질적인 교육문제를 해소하고, 국가·사회적 요구사항을 반영하기 위함이라고 되어 있다. 유엔미래보고서를 보면 미래에는 인간의 두뇌, 즉 한 사람이 저장할 수 있는 지식의 수십억 배에 달하는 지식이 오픈소스로 무료 제공된다고 한다. 따라서 미래의 대학은 똑똑한 학생보다 인간 두뇌 용량의 수천, 수만 배에 달하는 지식을 밤새도록 찾아다니는 부지런한 학생들을 우선 선발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다는 말처럼 이렇게 변화되고 있는 사회 환경을 생각하면 2007 개정 교육과정이 시행되기도 전에 ‘미래형 교육과정’이라는 2009 개정 교육과정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2009 개정 교육과정의 성격을 보면, 골자가 ‘개성의 발달과 진로’ ‘새로운 발상과 창의성’ ‘문화적 소양과 다원적 가치를 추구하는 품격 있는 삶’ ‘배려와 나눔을 하는 세계와 소통하는 시민’으로 그것에 맞추어 개정 교육과정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여러 가지 방안들이 발표되었다. 이 과정에서 갑자기 쏟아진 것이 학교현장에 대폭적인 자율성을 부여한 점이다.

그 내용으로 교과(군)별로 20% 범위 내에서 시수 증감 운영이 가능하고, 교과별 특성을 고려하여 학년, 학기별로 집중이수제를 실시할 수 있으며, 학년을 달리하는 복식학급을 편성․운영하여 공통주제를 중심으로 교재를 재구성하여 활용할 수 있고, 더군다나 주요 교과목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을 막기 위하여 창의적 체험활동을 강조하고 있다. 학교현장에서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쏟아지는 내용들을 감당하기에는 숨이 벅찰 정도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나씩 해결점을 찾아보면,

먼저, 전폭적인 자율권 부여에 대하여, 모든 교원이 전문성을 발휘하여 참여하는 민주적인 절차와 과정을 거쳐 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하도록 한다. 이때 교원, 교육과정 전문가, 학부모로 구성된 ‘학교교육과정위원회’를 구성하여 교원의 조직, 학생의 실태, 학부모의 요구, 지역사회의 실정 및 교육시설 설비 등 교육여건과 환경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가 주도적인 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할 때는 자율권 부여를 그렇게 갈망했건만 막상 자율권이 대대적으로 부여되고 보니 여러 가지 어려움이 발생함을 볼 수 있다.

 

둘째, 국·영·수 중심의 입시위주로 과목이 편성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입학사정관제도가 확대됨에 따라 대입전형에서 창의적 체험활동이 중시되는데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편성․운영하도록 되어 있지만 이 부분 역시 내용 구성이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실질적 체험학습이 되도록 지역사회 유관기관과 적극적으로 연계․협력해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되어 있는데, 교육청에서는 창의적 체험활동에 대한 매뉴얼을 제작 보급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으로 본다.

 

셋째, 교과군, 학년군 도입을 통한 집중이수를 가능하게 했는데 이론적으로는 학습의 효율성을 제고한다고 볼 수 있지만 이것이 실효성 있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준비가 여러 가지로 필요할 것으로 본다. 또한 학생의 전출학교와 전입학교간의 집중이수과목이 달라 발생하는 교과 미이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미래사회에 대비하기 위한 교육과정이지만 현재 학교간 서열화를 부추기는 전국단위 학업성취도평가를 생각해보면, 2009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와 대비됨을 볼 수 있다. 학업성취에 대한 학교 책무성 강화를 목적으로 한 것이지만, 평가 교과 위주의 교육활동이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자명한 일이다. 국가적인 공감대를 형성하여 교육의 논리에 충실한 기본교육을 강화하고 모든 학생들에게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여 교육에 대한 모델링을 제시한 핀란드의 교육방식을 볼 때 급하게만 서두를 일이 아니고 개정 교육과정의 각 항목에 대한 매뉴얼을 충분히 제공하고 공감대가 형성된 후에 시도를 해도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본다. 틀만 던져주고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운영하라고 하면 일선 교사들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을 해낼 것이다. 그렇게 하고 나면 또 어떤 교육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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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9년, 10년, 8년, 6년, 5년 등 정부에서 판단하여 개정하겠다고 결정되면 개정해왔으니, 그걸 두고 '개정주기'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하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