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신문 보기

판사와 교사의 말

by 답설재 2010. 2. 10.

기사의 제목입니다. 「이번엔 교사가 막말, 학생을 '벌레'에 비유」 부제는 이렇습니다. 「인권위, 자체인권교육 권고」1

짐작이 됩니까, '이번엔'이라고 표현한 이유? 30대 판사가 60대 노인에게 "버릇없다"고 꾸중했다는 기사의 후속 기사 취급이었습니다.

 

  # 장면 12

판사의 사연은 이렇습니다.

 

  ▶ 때 : 2009년 4월 23일

  ▶ 곳 : 서울중앙지법 민사단독 법정

  ▶ 상황 : 아파트 입주와 관련된 민사소송 재판에서 원고와 피고측 변호사가 차례대로 변론을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이때 원고 윤모(당시 68세)씨는 변호사 대신 직접 판사에게 의견을 밝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씨 "판사님."

판사(39세) "조용히 하세요. 어디서 버릇없이 툭 튀어나오고 있어."

다른 신문은 판사의 발언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어디서 버릇없이 툭 튀어나오느냐. 할 말 있으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어서 하라."

 

  ▶ 당시의 상황 설명

윤씨 "억울한 마음에 판사에게 직접 말을 하려고 했는데 손아랫사람에게나 쓰는 '버릇없다'는 말을 듣고 차마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윤씨의 변호사 이모씨 "당황스럽고 불쾌했다."

A판사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인 윤씨가 법정 예절을 알면서도 계속 재판 진행을 방해해 엄하게 주의를 준 사실은 있으나 정확한 발언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 이후의 상황 전개 과정

○ 이 변호사의 사임(사유 :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 윤씨, 2개월 후 국가인권위원회에 인격권이 침해됐다고 진정하고, 30여년 일하던 직장을 그만둔 뒤 지인들과의 연락도 끊고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 2010. 2. 4, 인권위, "A판사가 윤씨에게 '버릇없다'고 말한 것은 인권 침해"라고 결정

"윤씨가 법정 질서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고 판사가 재판장으로서 법정 지휘권을 갖고 있다고 해도 사회통념상 39세인 판사가 68세인 노인에게 사용할 수 있는 말이라고 볼 수 없다."

"법정지휘권도 국민의 공복인 공무원에게 주어진 권한인 이상 이를 국민에게 행사할 때는 헌법 10조에 규정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 등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행사해야 한다."

○ 서울중앙지법원장 : 인권위의 권고에 따라 A판사에게 주의조치, 법정 모니터 강화 등 재발방지대책 수립 의사를 인권위에 전달

 

  ▶ 의견

A판사가 윤씨에게 이렇게 말했다면…….

"조용히 해주십시오. 법정에서는 그렇게 하시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만 해도 판사 말을 듣지 않을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지 않습니까?

 

 

  # 장면 2

 

  ▷ 때 : 2008. 11. 4, 서울의 명문 A고등학교 2학년 종례시간

  ▷ 상황 : 담임교사가 아이들을 꾸중

"인간쓰레기들, 바퀴벌레처럼 콱 밟아 죽여버리겠다. 너희가 사람××냐?"

"사회인이 되면 내 눈앞에 나타나지도 마라. 보이면 뭐로 확 찍어버리겠다. 나라도 경찰에 신고해버리겠다."

-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심의를 받은 학교폭력 가해 학생은 당시 교실에 없었음.

 

  ▷ 인권위의 결정

○ 2008. 12월, 위에서 언급한 그 학교폭력 가해 학생의 학부모(40대)가 인권위에 진정

○ 해당 교사(피진정인) 진술

"폭력 가해 학생들의 폭력 행위가 얼마나 나쁜 짓인지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선도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얘기했다."

"만약 그런 인간 이하의 짓을 하는 녀석이 있으면 인간 이하의 벌레라고 취급하고서 밟아버린다고 생각한 것을 얘기한 것이다."

○ 인권위의 결정 : 2010. 2. 8, 인권위, A고등학교장에게 유사한 인권침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자체인권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

"교사가 학생들에게 학생을 벌레에 비유하는 등의 폭언을 한 사실이 인정된다."

"이런 행위는 교사로서 부적절한 발언으로 학생들에게 모욕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는 인격권을 침해한 것이다."

"교사로서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경고성 발언이었다는 점을 고려해 앞으로 유사한 인권침해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자체인권교육 시행이 필요하다."

 

  ▷ 인권위의 권고에 대한 의견

"…………………………………………………………………………………………………………."

(저는 정말 뭐라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떻게 생각하고 해석해야 좋을지조차 모르겠습니다. '이번에는 교사가 막말'이라고 표현해도 좋을지, 즉 판사의 말버릇과 그 교사의 말버릇을 '한통속'으로 생각해도 좋을지, 판사의 판결과 교사의 교육을 마치 같은 수준으로 취급하는 듯한 자존심 상하는 건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그 교사가 말을 제대로 했다는 건 결코 아니지만("아이들 보고 벌레라니요! 도대체 교사가!"), 그래도 이래저래 속만 상하고 분명한 의견을 내기는 어렵습니다.)

 

 

 

  1. 문화일보, 2010.2.8,10면. [본문으로]
  2. 중앙일보, 2010. 2. 5, 2면「68세 노인에게 '버릇없다'한 39세 판사」와 조선일보, 2010.2.5,A1면.「39세 판사가 69세 소송당사자에게 '버릇없이… ' 인권위 '인격권 침해' 주의 조치 권고」에서 발췌함.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