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사랑
문정희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서울아산병원 사보(社報)에서 읽었습니다.
병원 뒤편 한강
그 하늘 위로
다시 이 해의 눈이 내릴 때
나는 중환자실에 갇혀 있었습니다.
멀쩡한(?) 사람들은 하루만에 벗어나는 그곳에서 3박4일을 지내며 평생을 아이들처럼 깊이 없이 살아온 자신을 그 풍경에 비추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눈송이들이 이번에는 마치 아이들처럼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 큰 건물 앞으로는 자동차와 사람들이 쉴새없이 드나듭니다. 어떤 '행복한' 사람은 담배까지 피우며 걸어다닙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그 모습들은 무성영화 같습니다.
풍경에서 그리움이 피어오르기로는 건너편 아파트의 저녁도 마찬가지입니다. 1990년대의 경상남도나 전라북도 쯤으로 출장 간 날 초저녁에 그 들판 건너 인가(人家)에서 하나둘 별처럼 반짝이기 시작하는 불빛도 그렇지만, 서울 같은 대도시의 삭막한 곳에서도 사람 사는 '시멘트 숲'에서 초저녁 불빛이 비치기 시작하면 그 불빛이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병원 건물에서 몇날 며칠이고 갇혀 지내다보면 그리운 사람 곁으로 달려가고 싶을 건 당연한 일입니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詩人은 병원 측에서 사보에 실을 詩 한 편을 부탁했을 때 우선 병원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처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몸 혹은 마음까지 불편할 것이므로
아주 쉬운 말로
아주 원초적인 그리움을 나타내는 감추어진 사랑의 단어만으로
글씨를 모르는 이의 간절한 연애편지를 써주듯
우리의 '겨울 사랑'을 표현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래!
그렇게 살고 싶다…….
그러나 병원 문을 나서면 어디 그렇겠습니까?
세상 일이 어디 그렇게 간단합니까? 보나마나.
우리는 다시 머뭇거리게 되고
별 일 아닌 것 가지고도 서성대고
그러면서 숨기고 살아온 것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인생이란 눈송이는 아니라는 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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