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물1
김 명 리
우리가 헤어지던 그해 겨울 당신은 내게 향로를 주었다
손아귀로 꼭 한 줌, 저녁 숲에 차오르는 이내를 닮았다 했으나
뚜껑 여닫을 때마다 바스락거린다
봄 강 물마루의 얼음장 풀리는 소리가 난다
보름사리로 밀리며 쓸리는 달빛, 물빛
유채꽃 불씨들이 한줄금 연무로 날아오르고
물그림자 흔들흔들
밤이면 스모그빛으로 소용돌이치는 달의 행로를 비추지만
모로 눕히면 허공이 쏟아지는 박산향로博山香爐다
뉘 무덤에 물리는 젖 내음인지
어느 곳도 향하고 있지 않은 무하향無何鄕
청명한 밤에는 먼 절 사미니의 목탁 내리는 소리
천지간 흩날리는 연분홍 털오라기들로만
당신이 두세두세 내 흉금에 꿰매놓은 박산향로다
--------------------------------------------------------------------------------
김명리 1959년 대구 출생. 1984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물속의 아틀라스』 『물보다 낮은 집』 『적멸의 즐거움』 『불멸의 샘이 여기 있다』 등.
그 향로가 이 생애를 결정지었습니다. 철저하게.
그러므로 그 향로를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당신이
헤어지며,
그렇게
이 가슴에 묻어놓고 꿰매어버렸습니다.
선물…….
그렇게 누구에겐가 '선물'이 될 수 있었을까요?
제가 그런 선물이었다면,
그런 선물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한 건
참 단순하고 얄팍한 마음이어서
사실은 우리는 이미 누군가에게 모두 선물이 되어 있는 건 아닐까요?
다만 그 선물이란 게
가령, 아늑한 젖무덤 같은 것으로 남은 것일 수도 있고,
지긋지긋하여 몸서리치는 것으로 남은 것일 수도 있고,
다시 찾아가 먼 빛으로라도 살펴보고 싶은 것일 수도 있고,
……
따져보면 다 그런 건 아닐까요?
『현대문학』2009년 11월호, 172~173쪽. [본문으로]
'詩 읽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남호 「참 좋은 저녁이야」 (0) | 2010.04.01 |
---|---|
임 보 「겨울연가」 (0) | 2010.03.08 |
문정희 「겨울 사랑」 (0) | 2010.02.08 |
이성부 「논두렁」 (0) | 2010.02.04 |
고영민 「앵 두」 (0) | 2010.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