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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이성부 「논두렁」

by 답설재 2010. 2. 4.

논두렁

 

 

 

            이성부

 

 

이 논두렁길이 백두산 가는 길이라니 놀랍습니다

하다못해 논두렁 정기라도 받고 태어난다는

옛사람들 말씀 생각나 고개를 끄덕입니다

물꼬 막으며 잠시 서서 바라보는 먼 산으로

치미는 가슴 울화 가라앉히고

새참 먹은 뒤 담배 한 대 태우며 숨 쉬는 서러운 하늘로

어느덧 상것들 다시 힘이 솟았지요

저기 저 말을1 뒤 푸른 소나무밭을 지나

뒷산으로 길을 잡아 올라서면

구비구비 끝없이 펼쳐진 우리나라 땅 모두 산이었어요

저 많은 크고 작은 산들 두루 거쳐

몇 날 몇 달을 걸어가노라면

할아버지 산에 다다른다는 사실을

옛 어르신이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논두렁길은 예사 길이 아닙니다

백두산 실핏줄이 여기까지 뻗어 내려와서

태어나는 아기들 포근하게 지켜주는 것을 압니다

있는 사람 없는 사람 가리지 않고

피붙이들에게 저를 다 불어넣어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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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부 1942년 전남 광주 출생. 1962년『현대문학』등단. 시집『이성부 시집』『우리들의 양식』『백제행』『전야』『빈산 뒤에 두고』『야간 산행』『지리산』『너를 보내고』『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등. <현대문학상><한국문학작가상><대산문학상><편운문학상><가천환경문학상> 등 수상.

 

 

  『현대문학』2010년 1월호, 256~257쪽.

 

 

 

 

 

  우리나라에 '환경보호헌장' 같은 게 있습니까? 아직 그런 건 없는 것 같습니까? 그러면 이 시를 그 헌장으로 삼으면 어떻겠습니까?

  혹 그 '헌장'이라는 게 이미 있다면, 아니면 있어도 유명무실하다면, 그 헌장 옆에 이 시를 나란히 붙여놓아보면 좋을 것 같지 않습니까?

  돈을 많이 벌려고, 세금을 많이 거두고 싶어서 멋진 산, 아담한 구릉들 다 깔아뭉개는 사람들에게 아뭇소리 않고 깨끗한 종이에 이 시를 베껴 보내도 좋지 않을까요?

 

 

  다시 읽어보며 첫 행에 눈이 멈춥니다.

 

 

  "이 논두렁길이 백두산 가는 길이라니 놀랍습니다"

 

 

  얼마나 정겹습니까?

  조금 더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질 것도 같습니다.

  그렇게 정겨운 마음으로 읽어가다가

  마지막 부분에 이릅니다.

 

 

  "백두산 실핏줄이 여기까지 뻗어 내려와서

  태어나는 아기들 포근하게 지켜주는 것을 압니다

  는 사람 없는 사람 가리지 않고

  피붙이들에게 저를 다 불어넣어주지요"

 

 

  만약 다시 한번 더 읽어본다면,

  1950년대의 저처럼, 말하자면 옛날 시골 학교 국민학생들처럼

  소리내어 낭독해봐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걱정스러운 일은,

  이런 시를 시험지에 옮겨놓고

  잡다한 문제 몇 개를 출제하는 일입니다. 제발 그렇게 하는 일은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저의 경우 "새참 먹은 뒤 담배 한 대 태우며 숨 쉬는 서러운 하늘로"라는 부분에서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 심장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요즘은 일단 담배를 피울 수가 없습니다. 남에게 욕을 먹어가면서도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사람은, 욕은 먹지만 행복한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때 저도 행복한 줄 알면서 담배를 피웠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대한 모든 생각을 더 깊이 하고, 사람들 생각도 더 많이 하고, 교육에 대해서도 더 깊이 생각할 걸 그랬기 때문에 후회가 막심합니다.

  저의 독자 '엘라'라는 분의 말씀대로 저를 치료해주는 의사와 친해지면 솔직하게 말 좀 해보라고 할 것입니다. 하루에 한 세 개피 정도는 피워도 되지 않는지…….

 

 

 

  1. '마을'의 오기(誤記)가 아닐까요?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