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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아, 한글!

by 답설재 2009. 11. 27.

 

 

아, 한글!

 

신문의 독자투고란에서 봤습니다.1

 

…(전략)…

미국·프랑스·일본·호주·브라질·파라과이·우즈베키스탄이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했고 파리 7대학을 비롯하여 세계에 한국어과가 개설된 학교가 640여개, 한글학교가 2000개이다. 2009년 세계에서 한국어능력시험에 응시한 인원은 18만명에 이른다. 유네스코는 1997년 훈민정음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했고 1990년부터 매년 9월 8일이면 파리에서 문맹퇴치에 공헌한 세계의 NGO와 개인에게 '세종대왕문해상(King Sejong Literacy Prize)'을 주고 있다. 미국 메릴랜드 대학의 언어학자 로버트 램지 교수는 20여년째 우리보다 한글날을 더 기린다. 미국의 하버드를 비롯한 명문 대학교들은 한국학이 만만치 않다.

…(후략)…

 

저는 우리 나이로 9세가 될 때까지 학교에 입학하지 못했습니다. 한글은 이미 읽고 쓸 수 있었지만 도무지 학교에 가는 길(방도)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보다 '아주 조금만' 더 나은 수준이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때는 그런 부류가 저 말고도 있었을 것이니 한국의 옛 '찌아찌아족'이었지요. 부모님은 농사에 바빠서 그런 것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도 않았고, 서당은 다른 동네에 있어서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한글은 '아침글'이라는 별명도 있는데 그야 물론 '하루아침'에 다 배울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정말 그렇더군요. 동네 어른 한 분에게 "어르신, 저 한글 좀 가르쳐주세요." 했더니 "그래? 그럼 내일 아침에 큰 종이 한 장을 갖고 오거라." 해서 문종이 한 장을 갖고 방문했더니 붓을 들어 가로로 자음, 세로로 모음을 쓴 다음에 드디어 '가갸거겨……'를 써내려가며 설명을 하는데 그 설명을 들으니 그게 끝인가 싶었고, 그 자리에서 받침에 대한 설명도 다 듣고 말았습니다("세종대왕님! 감사합니다."). 여러분도 물론 그러셨을 것입니다. 그 어른은 당신의 자녀는 두고두고 가르쳐도 막막하다고 한탄을 한 다음 저를 크게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한글을 읽고 쓸 수 있으면 뭐 합니까, 학교를 가야지요. 드디어 9세가 되던 그 해의 입학식도 지나가버렸습니다. 새로 입학한 아이들이 아침에 학교에 가는 모습을 보니까 기가 막히고 숨이 차올랐습니다. 그래, 한 동네에 사는 고모님을 찾아가 부탁했습니다. "고모요. 저 학교 좀 데려가줘요."

저는 그렇게 해서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3월 중순쯤이었을까요? 요즘은 그런 면에서는 참 좋습니다.

 

 

 

  1. 이만주(서울국제공연예술제 연구분석위원),「우리는 한글로 춤도 춘다」(조선일보, 2009. 11. 25, A 33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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