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교장실 연가(戀歌) Ⅱ

by 답설재 2009. 10. 28.

열차 안 TV에서 「경기 초등교 교장실 인테리어에 2년간 36억원 ‘펑펑’」이라는 스포트 뉴스를 봤습니다. 민망했습니다. 교장실을 제 방인 양 꾸미고, 고급 양탄자를 깔고, 온갖 것 다 갖다놓고, 그렇게 해놓고 앉아 있는 걸 ‘꼴사납다’고 본 어느 의원(혹은 위원)이 최근 2년간 교장실을 꾸미는 데 들어간 예산을 조사했을 것입니다.

 

저는 어느 곳에서든 가 앉게 되면, 우선 떠나야 할 시간부터 계산하며 살아왔습니다. ‘이걸 차려놓으면 떠날 때는 어떻게 하나?’…….

 

이 학교에 와서 반 년 간 지낸 1층의, 인테리어가 제법인 그 교장실을 교감실 및 회의실로 정하고 -선생님들이 교장실보다는 더 많이 이용하는 방이 교감실, 회의실이므로- 지난해 3월에 2층의 지금 이 방으로 올라왔습니다.

행정실에서 뭘 좀 차려놓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말자며 그냥 들어왔습니다. 40만원이면 학급운영비를 만 원씩은 더 줄 수 있는데, 돈을 들여 제가 있을 방을 꾸민다는 게 싫었습니다. “저 커튼이라도 품위 있는 걸로 바꾸어 분위기라도 살리자”고 했지만, 그 전 해에 이 방에 있던 예쁜 선생님과 아이들이 커튼을 더럽히지 않았으므로 이 분위기가 이대로도 좋다고 했습니다.

 

평소에는 ‘일단’ 썰렁하지만, 선생님들이 몇 명 들어오거나 아이들이 볼 일을 보러 들어오면 그렇지 않습니다. 평소에도 그렇게 봐서 그렇지 저 교실에서 아이들이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시간에는 이 방이 결코 썰렁한 방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대단한’ 방입니다. 제 아이들 1400명을 책임지는 방이니까요. 그 누구에게도 얕잡아 보이고 싶지는 않은 방이니까요.

 

그러므로 '신종플루'로 휴교를 한 오늘 같은 날, 제 방은 얼마나 쓸쓸하고 썰렁하겠습니까. '대단한' 교장인데도 뭘 어떻게 해볼 수가 없을 지경이어서 저는 지금 한심한 입장이 되어 있습니다. 그냥 가슴을 졸이고 앉아서, 아이들이 그리울 뿐입니다.

 

 

      

 

 

저 문으로 사람들이 들어옵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저렇게 보입니다.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이어서 형편이 없습니다.

 

 

     

 

    

다른 쪽에서 바라보면 출입문쪽이 저렇게 보입니다.

 

 

    

 

    

들어오는 사람은 저 책상에 앉아 있는 제가 보일 것입니다. 그분은 북엔베리아와 골드세비아 가지가 늘어진 그 옆에서 저와 마주하게 됩니다.

 

    

 

 

저 곳에 앉아서 이야기합니다. 적어도 학교를 상대로 장사를 하는 분은 한번도 앉아본 적이 없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전교어린이회장단 아이들이라면 저 자리가 바로 저희들만을 위해 마련된 자리인 줄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전학온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는 부모들은, '백발백중' 자신이 왼쪽의 저 첫 자리에 앉으려고 듭니다. "네 이름이 뭐지?" 하고 아이에게 물으면 자신이 "예, 얘 이름은 ㅇㅇㅇ입니다." 하고 대답을 대신해주고 싶은 부모가 그렇게 합니다. 그걸 막으려고 저도 '백발백중' 아이더러 첫 자리에 앉으라고 하고, 부모님은 그 다음 자리에 앉으라고 안내합니다. 제가 아이와 이야기를 좀 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해도 "예, 이 아이 이름은 ㅇㅇㅇ입니다." 하고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고 싶어 안달이 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면담이 끝날 때까지 그런 분에게는 일부러 단 한마디도 해주지 않습니다. 섭섭해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언제까지 부모가 그렇게 해주겠습니까. 그러니 이 나라 교육이 안 됩니다.

 

유리판 밑에 깔려 있는 것은, (주) 동아지도 안동립 사장이 보내준 우리나라 영토 '독도' 지도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걸 보고 독도가 동도와 서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합니다. 그것도 그렇지만, 독도에 한번 직접 올라가 보면 애국심도 더 강해지고, "이 섬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피어오릅니다.

 

    

 

 

제 자리에서 바라보이는 맞은편 벽입니다. 저 벽에 커다란 한국화 한 점을 걸어두면 멋스러워 보여서 덩달아 ㅇㅇㅇ 교장이 좀 나아보일 것입니다. 저도 그쯤은 잘 압니다.

 

 

    

 

 

제가 손을 씻거나 하는 곳입니다. 오른쪽 벽에 걸린 것은 월별로 메모해놓고 쳐다보는 주요교육활동 일정표입니다. 하루에 몇 번씩 저기 저 창가에 서서 운동장과 동네와 하늘을 내다봅니다.

 

 

    

 

 

 

가을이 깊었습니다.

아이들이 오가거나 뛰어놀거나 운동을 하고 있는 운동장은 괜찮지만, 아이들이 없으면 저렇게 쓸쓸합니다.

 

그렇게 내다보고 서 있을 때 제 방의 문을 열어보는 분은, 제가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몰라서 때로는 그냥 문을 닫고 돌아서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음 사진을 보시면 그 이유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교장실이 식물원 같네요?" 합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작은 화분들은 몰라도 이렇게 큰 식물들은 저를 보호해줍니다. 저 나무 옆이나 밑에 한번 서 보십시오.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단지 하루에 한두 번 쳐다봐주기만 하면 저 식물들은 만족해합니다."

 

     

  

   

 

 

저 위에서 보신 운동장 건너편 마을 위로 저녁해가 걸렸습니다. 그러면 누구라도 다 돌아가야 합니다. 거의 모두 내일 아침에도 언제나처럼 돌아올 사람들이지만, 돌아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을 사람도 더러는 있게 될 것입니다. 교장실을 '안방'처럼, '거실'처럼, 무슨 '고관대작의 집무실'처럼 꾸미는 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학교장 컬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멕킨지 연구소와의 인터뷰  (0) 2009.11.07
경주가상여행  (0) 2009.11.05
「명품학교」와 「흐리멍덩한 학교」  (0) 2009.10.17
아이들이 적은 나라  (0) 2009.10.14
일본 가르치기  (0) 2009.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