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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명품학교」와 「흐리멍덩한 학교」

by 답설재 2009. 10. 17.

…(전략)…

 

○○초 학생들은 우리 음악에 푹 빠진다. 아침마다 교정에 울려 퍼지는 국악창작동요를 들으며 등교하고 건강달리기를 한다. 또 20분씩 국악동요를 부르는 시간도 갖는다. 분기마다 열리는 국악동요부르기대회에도 참가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수업 시작과 끝을 알리는 종소리도 국악, 현관에도 화장실에도 하루 종일 국악이 흐른다. 격주로 실시하는 음악조회도 빼놓을 수 없다. 아이들은 독보력과 악기 연주 실력을 쌓고, 우리음악과 서양음악을 비교하는 시간을 갖는다.

 

…(중략)…

 

“먹을거리는 우리 것이 좋은 줄 알고, 우리 것을 찾습니다. 우리 몸에 맞기 때문이지요. 우리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이 태어나 자라면서 모국어를 배우듯 우리의 정서, 느낌, 감성이 담긴 우리 음악을 통해 음악의 모국어를 찾아주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어느 신문에 소개된 학교입니다. 어느 신문인지 밝히면 공연한 논란이 일까봐 밝히지 않겠습니다.

“이 학교가 바로 명품학교다!”

“명품은 무슨…… 좋아할 아이, 득이 되는 아이도 있지만 싫어할 아이도 있다. 우선 교장에게 과연 그렇게 할 권한이 있느냐, 그것부터가 문제다.”

“왜 못해! 교장인데!”

…….

 

한 가지 밝혀두고 싶은 것은, 나도 한때 이런 생각에 침잠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왜 이 길을 걷게 되었나? 진도아리랑, 딱 한 곡이라도 저렇게 부를 수 있다면, 이름 없는 음악가로 늙으며 혹 헐벗고 굶주린다 한들 얼마나 좋을까?’

 

‘명품학교’를 만들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학교마다 ‘브랜드(brand, 상표)’를 창출하라는 거나 마찬가지 뜻이었죠? ‘명품’, ‘브랜드’……, 학교가 무슨 기업도 아니고 뭐 하자는 건지 모를 일이지요. 요즘은 어떻습니까? 잠잠해졌습니까, 아니면 여전합니까? 나는 그런 일에 관심이 없어서 요즘의 지침을 잘 모르겠습니다.

 

명품학교, 그게 어떤 학교인지 명확한 규정은 없지만 대체로 제2의 ‘김연아’가 배출되는 학교쯤으로 보면 될까요? 말하자면 음악을 잘해서 이름을 날리는 학교, 우리 남양주양지초등학교처럼 소년체전에 나가서 더러 육상 금메달을 몇 개씩 따오는 학교, 스키를 강원도 아이들보다 더 잘하는 학교, 피리를 기막히게 잘 불어서 특별히 이름난 학교, 합창을 프로처럼 하는 학교, 전국적인 태권도 선수가 나오는 학교, 하다못해 한자교육을 열심히 해서 전교생이 ‘한자선수’가 된 학교, …… 이런 학교라면 명품학교가 되지 않겠습니까?

 

‘명품’……, 교육학에서 그런 용어를 읽은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명품수업’이라는 말도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행정가들은 이런 이상한 용어 만들기나 외래어로 이름 짓기를 좋아합니다. 방심하고 지내면 저게 무슨 소린가 싶을 때가 흔합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문서를 보면 우리말과 외래어가 아주 ‘범벅’이 된 것도 있고, 마침내 학교에서도 그런 문서를 흉내 낸 문서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런 일에는 무관심했던 교육학자들은 어안이 없는지 알고도 모르는 체하는 건지 우리가 가야할 길을 제시하지 못하고 뭘 하는지 그저 조용합니다.

 

어쨌든 교장이 ‘명품학교’를 만드는데 혈안이 되면 좋을까요? 위에서 높은 분이 내려다보면 기분이 좋을 것 같기는 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전국이 혹은 전 지역이 모자이크를 한 것처럼 다양하게 보일 것 아닙니까? 이렇게 자랑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봐라, 우리는 교육의 다양성을 실현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관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런 관점이라니, 큰일 날 짓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보면 다양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어느 것 한 가지에 몰두하는 학교는 ‘절름발이교육’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가 어렵습니다. 학교나 학급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 중에는 체육을 열심히 하고 싶은 아이도 있지만 미술을 열심히 하고 싶기도 하고 국어를 열심히 하고 싶기도 하고 책을 많이 읽고 싶기도 하고 과학에 몰두하고 싶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담임선생님이 허구한 날 미술교육에 몰두하는 학급이라면 다른 아이들은 얼마나 지겹겠습니까. 그 아이들은 얼마나 서럽겠습니까?

 

나는 특히 초등학교는 일단 ‘흐리멍덩한’ 학교가 좋겠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흐리멍덩한’ 학교가 어떤 학교냐 하면 어느 것 한 가지도 소홀히 하지 않고 가능한 한 힘이 있는 한 여건이 되는 한 국가가 정해놓았거나 권장하는 ‘메뉴’를 다양하게 골고루 마련해줌으로써 어느 아이도 매력을 잃지 않는 학교 어느 아이라도 도전해볼 만한 과제가 있는 학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른바 ‘명품학교’가 어느 한 가지에 집중투자하고 분명하고 확실한 노력을 기울이는 학교라면 ‘흐리멍덩한 학교’란 그 색깔이 분명하지 않은 학교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1360명 모두가 ‘오늘은 우리 선생님이 어떤 과제를 내주시려나?’ ‘이번 주일에는 어떤 활동이 벌어지려나?’ ‘다음 11월에는 내가 할 수 있는, 내가 하고 싶은 어떤 활동이 전개될까?’ 기대하며 살아가는 학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아서 나도 아직까지 영 흐리멍덩한 학교를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초등학교는 누가 뭐래도 교과, 재량활동․특별활동, 생활지도를 통해서 기초·기본교육부터 충실히 해주어야 하는 학교입니다. 그러면서 아이들 모두가 자신이 가진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특기·적성·취미·관심 영역에서 자신의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일에 노력해야 하는 학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제2의 김연아가 나오게 되고, 모두들 자신의 영역에서 제2의 김연아가 되려는 학교라면 이상적인 학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좀 말을 바꾸어 제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학교교육목표는 초등학교 ‘교육과정(국가교육과정기준)’을 잘 성취하는 데 필요한 목표로 제시되어야 합니다. 그런 식의 목표를 제시하는 범위 내에서 창의성과 다양성, 개별성을 발휘해야 하지 지금처럼 무턱대고 ‘건강한 어린이’ ‘탐구심이 깊은 어린이’ ‘슬기로운 어린이’ ‘인사를 잘 하는 어린이’와 같이 그냥 보기 좋고 읽기 좋은 그런 목표를 제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그럼 당신이 근무하고 있는 그 학교의 교육목표부터 고치지 왜 그냥 지내느냐?”고 하면, 우리 교육의 시스템이 그렇지 않은데 혼자 그렇게 하다가 곧 정년이 되어 학교를 떠나면 짧은 세월에 혼란만 일으키고 떠난 돈키호테가 되고 우리 학교 선생님들도 산쵸 판자가 되기 일쑤일 것 같기 때문입니다. 내게는 권한도 없고 기회도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냥 골똘한 생각이 그렇다는 뜻일 뿐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없는 날에 누가 우리 학교에 와서 “이 학교 교육목표는 뭐냐?”고 물었을 때, 내가 생각하는 성격의 목표를 보여주고 그가 다시 “전통적인, 누가 봐도 그럴듯하게 제시된 4~5개의 목표는 없느냐?”고 물었을 때 “파란편지 교장이 그런 목표는 소용없다고 없애고 갔습니다.” 그러면 그 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 전공은 중등자격증으로는 사회과교육입니다. 사범대학에서 사회과교육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도 사회과교육 논문을 썼습니다. 교육부에서는 오랫동안 사회과 편수를 담당하다가 나중에 교육과정정책 총괄을 맡았었습니다. 그렇지만 학교에 나와서는 ‘사회과’ ‘사(社) 자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누구에게나 물어보십시오. 일부러 참고 참으면서 그렇게 했습니다. 딴에는 한때 전국의 전문가들을 모아 사회과 교육과정을 만들고, 교육과정해설도 집필하고, 사회과 교과서와 지도서를 만들고, 대한민국 처음으로 단행본 지역교과서를 편찬하는 역사적 사업을 담당하고, 공저(共著)지만 힘들여 만든 사회과교육 저서도 있으니까 마음으로는 우리 학교 교사들에게 사회과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을 때가 허다했습니다.

 

그렇게 사회과 편수를 담당했을 때는 전국의 장학관, 장학사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여 그들이 돌아가 그 지역의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도록 했으니 나의 영향력이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한 학교의 교장이니까 모든 교과를 다 중시하고 배려해야 하는 교장이니까 교장으로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오히려 그 균형을 깨면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 입만 열면 “교육과정” “학교교육과정” 얘기를 합니다. 학교는 아주 사소한, 편협한 공부를 시키는 곳이 아니고 ‘학교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교육부에서 교육과정정책과장을 역임한 이력이 이때만 살아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가 우리 남양주양지초등학교가 어느 정도 흐리멍덩한 학교인지 좀 들여다봐 주십시오.

 

인용한 저 기사의 학교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게 정리하겠습니다. 초중등교육법 제7조에 의해 장학(獎學)을 담당하는 교육감이 보기에 특별히 할 말이 없다면, 그 학교가 ‘명품학교’든 아니든, 그러한 교육이 ‘브랜드’이든 아니든 그만일 것입니다. 다만 교장에 의해 그 학교는 색깔이 분명하고, 우리 학교는 흐리멍덩할 뿐입니다. 더구나 이렇게 말할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색깔이 분명한 그 학교도 할 건 다 한다. 더구나 너희 학교보다 성적도 좋다!” 그럼 나는 할 말이 없겠습니다. 몇 달 안에 가슴이 터지지는 않을 테니까 그냥 생각만 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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