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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아이들이 적은 나라

by 답설재 2009. 10. 14.

 

 

 

마침내 우리나라도 아이들이 적은 나라가 되고 있습니다. 한때 너무 많아서 지천이어서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돼지새끼 다루듯(요즘은 거의 쓰지 않는 '가돈家豚'이라는 낱말이 있긴 하지요? 그렇게) 구박하고 강압적으로 다루고 가만히 앉아서 오는 아이들 받으며 “너희들 아니어도 얼마든지 있다”는 식으로 가르치던 것이 어제 같은데 이렇게 되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아이들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우리를 피곤하게 하고 어렵게 하고 귀찮게 해도 이것들이 없으면 우리끼리 뭘 하겠습니까? 그런데 그 아이들이 턱없이 줄어들고 있다니 큰일 아닙니까? 돈이야 국회의원들에게 조르면 되고 우리의 전문성은 책을 더 읽으면 되고 되지도 않는 지시·명령·감독을 해대는 저 교장은 물러갈 때를 기다리면 되지만, 우리가 나서서 여성들에게 “제발 아이 좀 더 낳아주시면 안 될까요?” 한다는 게 아무래도 좀 그렇고 더구나 “알았어요! 많이 나아줄게요” 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 생각은, 지금 있는 아이들이라도 더 잘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달 평균 1800명씩 신생아 줄어드는 한국」, 지난 주말에 본 신문기사입니다. 혼인 건수도 작년보다 7% 이상 줄었답니다.1)

지난해 1.19명이었던 합계 출산율(가임 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자녀 수)은, 프랑스(2명), 스웨덴(1.91명)은 물론 일본(1.37명)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훨씬 낮아서 ‘세계보건통계 2008’(WHO)에 따르면 193개국 중 우리나라가 최하위였고, 더구나 올해에는 1.1명 내외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2)

최근 들어 이런 기사를 점점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는「비어가는 초등학교 교실」이라는 기사도 봤습니다.3)「올 학생수 19만명↓… 62년 조사후 최저」라는 그 기사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원 1인당 학생 수가 19.8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20명 아래로 떨어졌다. 이는 저출산 등 인구감소에 따라 초등학생 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든 데 따른 것으로…….”

그 기사의 도표를 봤더니 1962년의 우리나라 초등학생 수는 408만 명이었으나, 1970년의 574만 명을 정점으로 1980년 565만 명, 1990년 486만 명, 2000년 401만 명으로 줄어들었고, 올해에는 마침내 347만4395명으로 지난해보다 19만7812명이나 줄어들었습니다. 매년 기록해온 사상 최저치를 올해도 경신한 것은 물론입니다.

 

정부의 관련 정책도 숨 가쁘게 추진되고 있고, 국정감사에서도 저출산 극복대책이 나왔습니다. 국정감사 첫날인 지난 5일, 국무총리실 감사에서는 “2세기에 로마가 망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인구감소로 세입이 줄어 경제시스템이 붕괴했기 때문”이며, “저출산문제는 향후 대한민국의 가장 큰 위기가 될 것”이므로 “내년부터 둘째 아이 무상보육이 소득하위 50%에서 70%로 확대되는데, 이를 100%로 확대하여 모든 둘째 아이에게 보육료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원도 있었고,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0개국 중 24개국이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아동수당은 ‘특별한’ 정책이 아닌 주요 국가들이 채택하는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정책”이라는 주장도 나왔답니다.4)

이런 기사도 보입니다.

“임신 및 출산 비용 100% 지원, 공립유치원비 무상화, 아버지 출산휴가 의무화, 임신의 날 지정…. 이미 위기 수준을 넘어선 저출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각국 정부의 노력은 그야말로 눈물겹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에 고심하고 있는 한국도 매년 10월 10일을 ‘임신부의 날’로 지정, 지난 2006년부터 각종 행사를 펼쳐오고 있다.……”5)

“정부가 매월 셋째 주 수요일을 ‘가족의 날(Family Day)’로 지정하고 관공서와 기업, 학교, 유통기관 등이 동참하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특히 공무원에 대해서는 셋째 주 수요일에 야근수당을 인정해주지 않는 방안을 추진한다.……”6)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1962년 보건사회부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최초로 산아제한정책이 담긴 가족계획을 발표하고 대한가족계획협회를 설립한데 따라 등장한 슬로건이었습니다.

다산(多産)은 일제시대를 거쳐 이승만 정부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미덕이었으나, 6․25 전쟁 이후 헤어졌던 가족들이 재결합하고 전쟁으로 연기됐던 결혼과 출산이 줄을 이으면서 인구증가율이 치솟자 정부가 그런 정책까지 내놓은 것입니다. 1950년대 출산율은 6.3명에 달했고, 먹을 것조차 부족한데도 인구는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이 슬로건은 산아제한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출산율이 4.53명으로 줄어든 1970년대에 정부가 권장하는 자녀수를 2명으로 정한데 따른 것이었습니다. 가족계획어머니회는 남아(男兒)선호사상을 타파하는 사회운동으로 심지어 ‘임신 안 하는 해’(1974년), ‘남성이 더 피임하는 해’(1975년), ‘나라 사랑 피임으로’(1976년) 같은 캠페인까지 벌였습니다. 두 자녀 이내 부모가 영구불임수술을 하면 공동주택 구입과 금융대출을 우대해주고, 영구불임수술가구 자녀에게는 취학 전 의료혜택을 주기도 했습니다.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출산율이 2.83명으로 떨어진 1980년대에는 정부가 마침내 이처럼 하나만 낳아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산아제한정책이 32년만인 1994년에 이르러 드디어 폐기되었고, 2005년에는 산아제한정책을 위해 세웠던 가족계획협회를 출산장려기관(인구보건복지협회)으로 전환했습니다.7)

 

옛날이야기까지 인용한 것은, 출산장려정책의 추진은 산아제한정책보다 아무래도 더 어려울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이 정책이 부디 성공하기를 기원해야 합니다.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여기 이쯤에서 우리는 우리의 교육정책을 바꿔야 할 것 아닌가 싶습니다. 너무 많다고 했을 때의 그 수업방법을 180도로 확 바꾸어버리고, 영재교육정책도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1%, 5%만 뽑아서 가르치겠다던 그 방법을 바꾸어 웬만하면 다 영재교육을 시켜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선, 교원 1인당 학생 수 19.8명이 OECD 평균 16명(2007년 기준)에 비해 아직도 좀 높은 건 사실이지만, “학생 수가 너무 많아서……”라는 사고방식을 얼른 버려야 할 것입니다. OECD 평균 아래로 떨어지는 그때를 기다려서 바꾼다면, 인구정책(산아제한정책→출산장려정책)처럼 이미 늦어지는 것 아닐까 그게 걱정스럽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바꾸면, 학생 수가 적은 학교나 학급을 보고 ‘그 참 희한한 학교(학급)가 있네’ 하던 사람들이 학생 수가 많은 학교나 학급을 보고 ‘그 참 희한한 학교(학급)가 있네’ 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정책의 관점도 그렇게 바꿔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인간은 짐승이나 나무, 기계, 돈 같은 것들보다 훨씬 소중하다는 의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교육자들, 교육행정가들은 특히 그런 의식을 먼저 가져야 할 것입니다.

 

“학생 수가 너무 많아서…….”라는 생각을 버리면 할 일이 참 많아집니다. 한 가지만 얘기하겠습니다. 그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선 획일적·일제식·강의식·설명식 수업을 쓰레기통에 버려야 합니다. 수준별 학습 쯤은 당연하고 개별학습이 중시되어야 합니다. 제가 제7차 교육과정으로 고군분투(孤軍奮鬪)하며 부르짖던, 그리하여 전국의 초·중·고등학교 교사들이 그것 때문에 저를 송충이 보듯 하던 그 ‘수준별 학습’ 말입니다(저는 그 당시 산골짜기 외딴 학교 앞을 지나며 ‘지금 저 학교에 들어가면 저 학교 선생님들도 나를 죽이려고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눈물겨웠었습니다). 학원들은 ‘수준별 학습’이라는 용어가 등장했을 때도 그랬지만, 정부에서 말을 꺼내자마자 학교는 당장 시큰둥하지만 ‘얼씨구나!’ 하고 날쌔게 달려든 그 ‘개별 맞춤형’ 교육을 일반화해야 합니다. 아직 안 됩니까? 멀었습니까? 그럼 우리나라도 아직 멀었습니다. 저주(詛呪)가 아닙니다. 일제식·강의식·설명식·주입식·암기식으로는 우리나라 발전에 분명 곧 한계가 드러날 것입니다.

 

영재교육도 기본적으로 전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으로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영재는 수학이나 과학뿐 아니라 어느 분야에나 다 있고 다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 아이들은 장차 어느 분야에서나 다 독보적인 존재로 살아갈 것이라는 가정이 옳은 것 아닙니까? 수학, 과학이 중요하다는 걸 모를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수학, 과학 분야 외에도 개인과 집단, 국가 발전에 공헌하는 인재는 얼마든지 있는데도 지금 우리의 영재교육은 수학, 과학 선행학습이 마치 영재교육의 대명사나 되는 것처럼 그것에만 몰두하는 후진형 아닙니까? 겨우 ‘선행학습’ 수준이라니, 차라리 그만두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나저나 이 글 때문에 또 ‘송충이’가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이 시골 학교 교장이니까 심각하게 여기지도 않겠지요. 어쨌든 좀 별나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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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일보, 2009. 10. 10. A10. 기사 본문에서는 한달 평균 1857명씩의 신생아가 줄어든다고 했습니다.

2) 조선일보, 2009. 10. 2, A21,「대한민국 제1호, 1962년 첫 産兒제한정책」및 10. 10, A10,「한달 평균 1800명씩 신생아 줄어드는 한국」참조.

3) 매일경제, 2009. 9. 29, A31.

4) 문화일보, 2009. 10. 5. 4면,「與野, 저출산 극복대책 ‘한 목소리’」.

5) 문화일보, 2009. 10. 10. 10면,「오늘 ‘임신부의 날’ … 각국 출산장려 백태」.

6) 매일경제, 2009. 10. 10. A4,「셋째 주 수요일은 ‘패밀리데이’」.

7) 이 부분의 산아제한정책에 관한 모든 내용은 조선일보, 2009. 10. 2, A21,「대한민국 제1호, 1962년 첫 産兒제한정책」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