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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책 읽는 선생님

by 답설재 2009. 9. 27.

 

 

<지난주 가을독서축제 때 학교 홈페이지에 탑재된 사진 :

양지뜨락에서 산 책을 그새를 못 참고 쪼그리고 앉아 읽고 있는 아이가 많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K 선생님의 편지>


야당은 총리 후보자를 인준할 수 없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나타난 결과를 보면 그에게 씌워졌던 외피가 상당히 왜곡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추궁하는 자나 해명하는 자나 아직도 그들만의 세계인 『당신들의 대한민국 1』(박노자, 한겨례신문사, 2001)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2인자 지명 논란 속에 평생을 2인자로 살면서 오늘날의 중국의 기틀을 마련한 저우언라이의 삶이 떠오릅니다. '저우언라이 동지는 사리사욕이 전혀 없는 고상하고 순수하며 도덕적인 사람이고, 또 인민 해방을 위해 자신을 완전히 헌신한 사람'이라고 마오쩌둥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까이 있었던 이들은 그가 최고 지도자인 마오와 불화하지 않고 자신을 굽히며 철저하게 2인자의 자리에 만족했던 이유가 주어진 권력으로 중국의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하고, 인민들의 배를 불리고자 하는 대의(大義) 때문이라고 그를 추억합니다(리핑, 허유영 역, 『저우언라이 평전』 한얼미디어, 2005). 물론 티베트의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라마에게 있어 그에 관한 추억은 티베트 민중의 삶을 앗아간 추악하고 교활한 민족주의자요 국수주의자로 묘사되고 있지만 말입니다(김용옥,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3-인도로 가는 길』 통나무, 2002).

'괜찮은 2인자라도' 하는 심정에서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책 읽어주는 선생님, 행복한 아이들!' 어제 교육청에서 교사와 학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한 연수 주제입니다. 150여 명이 참석자 가운데 남자는 단 둘이어서 공문서를 잘못 이해했나 싶었습니다. 오랫동안 책읽기 모임을 꾸려 오신 강사 선생님은 이야기를 한결같이 잔잔하게 풀어갔습니다. '아이들이 참 행복했겠구나! 저런 선생님을 만났으니.'(사실 열정을 간직한 선생님들을 여름 연수를 통해서 많이 만났습니다.)

『내 이름은 데셰』 『지각 대장 존』 『잃어버린 호수』 『눈의 여왕』과 같은 책들과 앤서니 브라운, 존 버닝햄, 로알드 달, 로렌 차일드 등 꼭 동화를 써야만 될 것 같은 이름을 가진 작가들이 소개되었습니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읽기의 힘, 듣기의 힘』이라는 책의 공저자로 소개되었을 때 '아! 나도 아는 사람 이름 하나쯤은 나오는구나' 안도하기도 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간 아들이 읽었던 책 중에서 꽤 괜찮은 것으로 학급문고를 꾸며주고 책읽기를 독려해 왔지만 책을 읽어 주는 선생님은 아니었습니다(아이들에게 읽어주는 기쁨보다는 제가 읽고 싶은 책이 너무나 많은 까닭이겠습니다).

영화로도 유명하지만 저는 책으로만 읽었습니다. 미하엘과 한나가 낭독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진입했던 것을 떠올리면서(『더 리더』(베른하르트 슐링크, 김재혁 역, 이레, 2004), 오늘부터 당장 시작해야지 하며, 칠판 가득 소개 받은 책을 적어 주고 점심시간에 도서실에서 찾아보라고 했는데 『지각대장 존』만 찾아왔습니다. 선생으로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맘 때 쯤 교장선생님께서 책읽기에 대한 글을 올리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때쯤 슬그머니 출석해야지 했습니다. 기억하시는지요. 2007년 책 많이 읽은 교사로 뽑혔을 때 교사에게는 상이 나오지 않아 섭섭해 하시며 교장선생님 명의로 상장을 만들어 주셨지요. '서음증(書淫症)' 총대장이 서음증 신병(新兵)에게 주는 인증서 같은 것으로 여겨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어제 연수회에 『보고 읽고 생각하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김만곤, 아침나라, 2005)를 가지고 참석했습니다. 함께한 본교 선생님이 그 책을 읽느라 연수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2009 개정 교육과정'을 위한 무모한 질주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때 교육과정에 대한 교장선생님의 새로운 책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건강을 기원합니다.


 

<'따뜻한'님의 편지>


'서음증'이라…… 증상이 어떤가요? 저도 중기 환자 같은데요.

글자로 된 것은 다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책이어야 더 좋아하는 저도 교장선생님의 새 책을 기다립니다. 컴퓨터로 읽으면 아무데서나 못 읽고, 줄도 못치고, 베고 잘 수도 없고……^^.

아이들이 책 읽는 모습이 좋지만, 또 책 읽는 사람들이 좋지만, 생활에서 깨닫고 뚝심 있게 실천하는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관념으로 말하지 않고 실천하는 사람들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습니다.


저 역시 벗어날 수 없어서 책을 만났던 것 같아요.

가난한 우리 집에서 서양의 '소공주'를 만나서 행복했고, 퀴리부인을 만나서 잉크가 얼도록 추운 방에서도 공부만하면 이룰 수 있는 건가 꿈도 꾸고, 지겨운 입시와 답답한 학교에서 온갖 낭만적인 일이 가득한 순정만화와 수많은 하이틴 로맨스로 대리만족을 하면서 '현실연애'하는 아이들을 측은한 듯 바라보며 위안하고,

'별볼일없는' 성적을 변명하듯 읽어도 모르겠는 『유리알유희』니 『말테의 수기』(정말 모르겠구나 싶어 절망한 나머지 고1 이후로 시도조차 안한 책)니 이런 책 대출카드에 이름을 남기고,

돌이켜보면 책이 있어서 참 행복했습니다. 그대로 눈뜨고 느꼈다면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어른이 되어서는 방학 한 귀퉁이 내어 찍어두었던 작가의 책을 달콤한 아쉬움을 느끼며 읽는 <휴가성 독서>, 힘 있게 내 생각을 펼칠 수 있는 <백그라운드 만들기용 독서>(아직 어떤 사람들에게는 '책에 있다'란 말이 쓸모 있기 때문에), 열심히 하던 일인데 갑자기 맥이 빠질 때 쓰는 <뒷심기르기용 독서>(평소 내 생각을 대변해 온 책들), 변화가 필요할 때 화두를 던져주는 <깨달음용 독서>(언제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평소 존경하는 사람들의 서평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또 이 책은 시간이 지나면 '뒷심기르기용' 책으로 변신합니다)로 좀 더 다양해졌습니다.


신기한 것은 아주 힘이 빠지고 지쳤을 때, 책 한 권 제대로 읽으면 다음날 아침 새 힘이 생깁니다. 『그리스인 조르바』 『로맹가리』 『고리오 영감』, 이런 책이 올해 저를 힘나게 도와준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지만- 책입니다.

교사로서 '아이들을 어떻게 좋은 책으로 데려올까'보다는 아이들이 행복하게 놀기를 바라야 하는데, 자꾸 저도 모르게 책으로 끌어올 궁리를 합니다. 가을엔 유난히 더 그렇구요.

지난해 읽고 참 좋아하게 된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에서 옮깁니다.

"교사로서 느끼는 가장 큰 보람 중의 하나는 한 학생이 아무 책이건 얼마든지 읽을 수 있는데도 - 대량으로 쏟아지는 그 숱한 베스트셀러들을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굳이 혼자서 가파른 길을 올라 발자크를 벗삼아 마음의 안식을 찾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다."

밑줄 치는 것도 모자란 저는 아래에 "으악! 할렐루야!"라고 썼네요.

 


<메모>


'책 읽어주는 선생님, 행복한 아이들!' 그런 주제의 연수에는 왜 여 선생님들만 참석할까요? 그게 정상인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면 남 선생님들은 무얼 하겠다는 의미일까요? 150명 중 남선생님은 딱 두 명이어서 '공문을 잘못 봤나?' 했다니…….


'교장 같은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각 학교 도서실에서 다 갖추기는 '책'이 너무 많고, 너무 많이 나옵니다. 세상은 딱 그것 한가지로라도 좋은 곳입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남양주시립도서관 운영위원회에 다녀왔는데, 그곳에도 책이 많고, 남양주시에만 해도 여기저기 공사립 도서관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그런 곳도 찾아가게 하면 좋겠고, 각 학교에서는 우선 그런 곳을 찾아가는 현장학습을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 학교는 학년별로 각각 6회의 현장학습을 하므로 연간 36회를 실시하는데, 유감스럽게도 도서관 현장학습은 없습니다. 어느 선생님이 곧 그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오남도서관 개관 후? 연간 36회의 그 현장학습이 그나마 '덜 소풍'이어서 그렇지, 만약 '완전 소풍'이라면 제가 돌아버렸겠지요.


'책 읽어주는 선생님'이나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은 선생님'이나 같을 것입니다. 아니, 아이들에게 더 오래 기억될지도 모릅니다.


제가 '서음증(書淫症)' 총대장이라니, 참 재미있습니다. 병 걸린 사람들의 총대장이라는데도 자부심이 생기니 '리더'가 좋긴 좋은 것 같습니다. …….

'총대장이라, 2008년부터는 교육청에서 학생, 학부모와 함께 교사에게도 상장을 주고 있으니까 그건 됐고, 그럼 내가 뭘 해야 하지?'


『보고 읽고 생각하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 그 책 쓰레기가 아니던가요? 「교육과정」에 대한 책을 써봤자, 아무도 읽지 않는, 또 그런 쓰레기만 생산하게 될 텐데요. …….


'인터넷 종이'(종이처럼 구부러지는 전자책)이 곧 나온다지만 종이책만 할까요. '따뜻한'님에 따르면 '아무데서나 읽고, 줄도 치고, 베고 잘 수도 있고'.

종이책은 촉감도 좋고, 읽지 않고 턱 꽂아두기만 해도 폼이 나고(책 만드는 사람들이 등표지만 봐도 폼 나게 하지 않습니까?), 일단 다른 사람들이 보면 '아, 이 사람은 썩 괜찮은 사람이구나.' 해주지 않습니까? 까짓 거 '책에 길이 있다'느니 뭐 그따위 소리는 집어치웁시다. 길이 있긴 뭐가 있습니까. 우리나라에서는 그따위 소리는 집어치워야 합니다. 저만 하더라도 고등학교 다닐 때 명작이라면 마구 읽어대다가 입시에 실패했지요. 길은 무슨 길, 그냥 재미있는 게 책이지요.


'소공주'를 일찍 만나셨다면 그만해도 괜찮습니다. 저는 교과서밖에는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그랬는지 중·․고등학교 때는 아주 미쳐나갔으까요? 저도 방안에 놓아둔 물통의 물이 꽁꽁 얼어붙는 방에서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책은 읽었으니……, 그래서 이 꼴일까요?


『유리알유희』 『말테의 수기』가 어려웠군요. 사실은 저도 어려운 책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절망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절망에는 마구잡이 번역도 한몫 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지요. 지금 나오는 책들 중에는 흡사 우리 책인 양 끝내주는 번역이 많습니다. 이해하기가 어려운 책은 당장 이거 번역 잘못된 거 아니야?' 하는데(스스로 생각해도 돈도 꽤 투자한, 시간도 많이 투입한, 그래서 제법인 독자이기 때문에), 건방진 거죠?


<휴가성 독서>, <백그라운드 만들기용 독서>, <뒷심기르기용 독서>, <깨달음용 독서>, 그 참, 희한하고 명징한 정리입니다. 오죽하면 이런 정리가 나왔을까요.


좋은 책은 좋은 그대로 우리에게 힘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와 같이. 그런 책을 다 읽고 가면 참 좋을 텐데요. 그래서 저는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 다독상(多讀賞), 독서상(讀書賞)을 주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얘들아, 나는 이제 늙었으니까 하는 말인데, 이 세상이 왜 좋은가 물으면 '책이 있어서 좋습니다.' 그럴 거다. ……."

저승에 가서 설문조사를 받게 되고 그 설문에 '뭐가 억울한가?'도 있으면 "아직 읽고 싶은 책을 덜 읽었는데 불려온 것이 억울합니다."라고 답할 작정입니다.


마지막 한마디, 알고 보면, 썩 괜찮은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공교육'이 어떠니 해도 대한민국은 이런 선생님들이 있어 아직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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