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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일본 가르치기

by 답설재 2009. 10. 11.

우리 정부와 하토야마 일본 총리간의 유화적인 기사가 연일 신문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주말의 한 신문 1면 기사 제목은 「한․중․일, 오늘 北核 중대 논의 -어제 한․일 정상회담… 하토야마 “북핵 일괄타결에 동의”」였고, 그 기사 위에는 이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하토야마 일본 총리 부인 미유키 여사가 특유의 미소를 짓고 있는 대형 천연색 사진 아래에 ‘김치 먹은 日총리 부인, 한국말로 “밥도 주세요”라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3면에는 이 대통령과 하토야마 총리가 태극기와 일장기를 배경으로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도 있었습니다. 기사 제목은「“막걸리 주세요”…와인 물리친 日 총리」였습니다. 이만하면 분위기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이래저래 어차피 가까이 지내야 하는 나라이므로 이처럼 유화적인 분위기를 조성해가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우리 정부로서도 그 방안이 최선일 것 같습니다. 다만, 그 아래의 작은 제목들이 눈길을 끌어 깊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 과거사 “역사 직시(直視)…무라야마 담화 중요”

- 교포 참정권 “결론내고 싶지만 내각 논의 필요”

- 북핵 공조 “공동보조 취하면 좋은 결과 확신”

 

성급한 주문일지 모르지만, 하토야마의 발언대로 분위기 외에는 아직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고, 그리 쉽게 이루어질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부터 ‘직시(直視)’해야 합니다. 특히 교육자들은 그런 눈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전 대통령 부시의 조치에 만족하여 그냥 지나가고 말았지만, 지난해 여름 일본 문부과학상이 관방장관까지 대동하여 발표한 그들의 ‘중학교 학습지도요령(국가교육과정) 해설’에는 “우리나라와 한국 사이에 다케시마(독도)를 둘러싸고 주장에 차이가 있다는 점 등을 가르쳐, 북방영토(쿠릴열도)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영토․영역에 관해 이해를 심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기술은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당시(지난해 여름) 미국 국회 홈페이지의 독도 표기가 ‘다케시마’로 변한 것을 발견한 우리 정부가 강력하게 항의하자 당시 부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바로잡아 준 일 때문에(그 일이 우리의 뜻대로 이루어진 것에 만족하여) 우리는 일본 문부과학성의 그 조치에 대해서는 ‘유야무야식’으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통탄할 일입니다. 하토야마는 그것도 직시하겠다는 뜻일까요? ‘직시’가 뭡니까? 고쳐야지 직시하면 뭐합니까.

 

1985년에 일본 소학교 아이가 쓴 글 한 편 보십시오. 오래 전의 기록이어서 구체적인 수치는 달라졌겠지만, 그들의 교육은 전혀 그대로일 것이 분명합니다. 유심히 볼 것은, 일본인들은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인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 피해만을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니까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神社)에 1급 전범(戰犯)의 위패를 갖다놓고 총리 이하 관리들까지 찾아가 고개를 숙여 참배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전쟁을 일으키고 지휘한 총책임자인 왕(이른바 '천황')을 지금껏 끔찍이 섬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글을 쓴 아이는 당시 구보소학교(久保小學校) 5학년 미오 마쓰무라(松村美歐)이고, 이 글은 오래 전에 제가 번역 출판한 책에서 인용한 것입니다(힐데가르트 하브리크 편, 정승일․김만곤 역,『지구촌 어린이들이 본 세상』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3).

 

 

우리는 히로시마를 견학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는 쿠다마쓰에서 동쪽으로 약 100㎞ 떨어진 곳에 위치한 히로시마는 인구가 백만 명이 넘는 곳입니다.우리는 3학년 때는 공업도시인 우리 고장 쿠다마쓰를 둘러보았고, 4학년 때는 현청(縣廳)이 있는 야마구치시의 여러 가지 문화시설을 방문하였습니다. 이번 여행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 밖으로는 첫 여행이었습니다.불행하게도 그 날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줄곧 우산을 들고 다녀야 했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즐거운 표정이었습니다. 먼저 일본에서 셋째 번으로 큰 자동차 회사인 마쯔다를 방문했습니다. 마쓰다는 종업원 수가 28,000명으로, 1983년에는 134만 대의 자동차를 생산했다고 합니다.마쯔다에는 로봇이 많이 있었고, 일꾼들은 이 로봇들과 어울려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 공장에서 만드는 자동차의 70%가 수출되고 나머지 30%가 우리나라 안에서 팔린다는 설명을 듣고 놀랐습니다. 마쓰다 자동차는 미국으로 가장 많이 수출되고, 그 다음은 오스트레일리아, 셋째 번은 독일로 많이 수출된다고 합니다. 생산된 자동차들은 수출하기에 편리하도록 공장의 부두에서 한번에 2000대씩 커다란 선박에 싣는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여 우리나라 자동차가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다음으로 우리는 원자폭탄이 떨어진 히로시마시 중심지의 평화공원과 평화기념관으로 갔습니다. 공원의 작은 돔 모양의 건물 안에는 평화의 불이 타오르고 있었고, 광장에는 비둘기(평화의 사자)가 떼지어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기념비에는 “편안히 잠드소서! 잘못은 다시 되풀이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새겨져 있었습니다.조금 걸어서 강변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니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던 내 마음은 곧 슬픔으로 흐려지고 말았습니다. 원자폭탄이 떨어지자 그 열로 불이 붙은 사람들이 강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강물도 뜨거워져서 수만 명의 사람들은 그대로 죽었다고 합니다. 그곳이 바로 우리가 서서 바라보던 바로 그 강이었습니다.우리는 원자폭탄의 무서움을 평화기념관을 둘러보고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불에 타서 갈갈이 찢어진 옷, 불탄 벽돌, 뒤틀린 맥주병, 추한 모양으로 죽은 사람들, 깨어지고 무너진 콘크리트 건물 사진이 있었습니다. 단 하나의 폭탄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고, 화상을 입고, 백혈병으로 고통 받았다는 것을 알고 나는 너무도 놀랐습니다. 화상을 입은 사람들의 그러한 모습을 전에는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모습은 우리들의 보통 부상이나 화상에 비해 훨씬 끔찍하였습니다.나는 그 사진 속의 사람들처럼 내가 그러한 비참한 재난에 빠졌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습니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그 당시에 태어나셨습니다. 나는 원자폭탄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전쟁이 싫습니다.정오가 되어도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과 함께 버스 안에서 어머니가 준비해주신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식사 후에는 번화한 시가지를 통과하여 맥주 공장으로 갔습니다. 먼저 맥주를 만드는 과정에 대한 영화를 보았습니다. 맥주는 보리로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맥주가 어떻게 하여 만들어지는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공장 안은 매우 시끄러운데도 종업원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자동화된 기계가 오렌지 주스를 병에 담는 모습도 보았습니다.공장에서 나누어주는 팸플릿에는 놀라운 사실이 적혀 있었습니다. 맥주를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는 미국이고, 독일 사람들도 1년에 한 사람당 236병의 맥주를 마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도 맥주를 좋아하시지만, 일본 사람들이 마시는 맥주의 양은 그 나라들에 비해서는 훨씬 적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쌀로 만든 술을 많이 마십니다. 나는 독일 사람들이 과음하여 위가 맥주통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마지막으로, 유명한 신사가 있는 미야지마로 갔습니다. 거기에서는 가족들에게 나누어줄 기념품을 샀습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돈은 1000엔으로 정해졌습니다. 쇼핑은 참 즐거웠습니다.우리는 버스 안에서 선생님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돌아왔습니다. 이번 히로시마 여행에서는 사회과 공부를 잘 했습니다.그러나 나는 대도시보다는 푸르고 조용한 우리 고장이 더 좋습니다. 내년에 갈 수학여행이 기다려집니다. 그때는 신칸센 고속열차도 타고, 규슈의 호텔에서 지내기도 할 것입니다.

 

 

미오 마쓰무라는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이유도 잘 배웠을까요? 원자폭탄의 피해에 대해 가슴 아파하는 것 이상으로 자기네가 일으킨 전쟁에 대해서도 가슴 아프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을까요?

 

히로시마 평화공원 기념비에 새겨진 “편안히 잠드소서! 잘못은 다시 되풀이되지 않을 것입니다.”란 무슨 뜻일까요? “잘못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은, ‘우리는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란 뜻일까요, 아니면 ‘강한 나라를 만들어 앞으로는 다른 나라에 당하고 살지 않겠다’는 뜻일까요? 그게 중요할 것입니다. 저는 아무래도 후자를 이야기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분명하게 "편안히 잠드소서! 우리는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새겨놓아야 우리도 안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양국간의 호혜적인 분위기가 잘못되었다거나 싫다는 건 아닙니다. 그럴 리도 없습니다. 당연히 우리와 일본은 그런 분위기로 살아가야 양국이 모두 편안하고 서로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일본이 우리에게 어떻게 했고, 저들이 지금은 어떤 교육을 하고 있는지를 잘 파악하면서 우리도 우리의 역사 교육을 더욱 충실히 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을 뿐입니다. 가령, 우리 교사들은 저들이 독도를 자기네 섬 '다케시마'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오래 전의 글이지만, 계획적인 현장체험학습, 여행의 끝에는 신사(神社 ; 일본 왕실의 조상이나 나라에 공로가 많은 사람을 신으로 모신 사당)를 참배하는 일정을 마련하는 것, 용돈의 규모를 정해주는 것 등 일본교육의 이모저모도 눈여겨 볼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