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가 되겠다고 혹은 되었다고 법만 들여다보고, 의사라고 해서 의학서적만 들여다보고, 교육자라고 교육학만 읽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싶습니다. 숨 막힐 것 같으니까요. 하기야 단돈 만 원도 아까운 책도 많습니다.
독서를 많이, 혹은 잘 했다고 아이들에게 상을 주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얘들아, 너희는 참 좋다. 나는 이제 늙었으니까 저승에 갔을 때 ‘너는 세상에 태어나서 뭘 했나? 살아본 소감이 어떤가?’ 물으면 ‘세상에는 책이 있어 참 좋았다. 그런데 그 책을 맘껏 읽은 세월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불러서 그게 안타깝다.’고 대답하겠다.”
이 블로그에서「어느 독자」라고 소개한 그 선생님께서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한 두 가지 정답 중 한 가지를, 지난해 4월 어느 날 ‘댓글’로 보내주셨는데, 그 정답을 이제야 소개합니다. ‘두 가지 정답’이란 순전히 제 생각이며, 한 가지는 ‘재미(즐거움)’이고 다른 한 가지는 ‘필요’입니다. 희한한 것은 ‘재미’ 때문에 읽으면 ‘필요’의 의미가 거의 없는 경우이고, ‘필요’ 때문에 읽는다면 책을 읽는다는 일이 ‘재미’가 없다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오남리는 봄꽃에 인색했을까요. 학교 담장 개나리가 느닷없이 피었다가 지면 금새 5월 장미로 화사해졌다는 기억입니다. 그러나 이 학교는 목련과 개나리, 만개한 벚꽃으로도 부족해 출퇴근길과 새로 운동을 시작한 장자못 산책로에 이르는 길까지 지천입니다. 그제 과학의 날 행사로 글라이더와 고무동력기를 날리고(5초 이상 비행한 비행물체는 없었습니다.^^) 시간이 남아 이때다 싶어 준비한 카메라로 꽃과 어우러진 아이들을 담았습니다.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한 후 8년째로 치르고 있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감상 시간에 아이들은 제 요구보다 자신들이 연출한 작품(?)에 더 웃음짓습니다.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그해 4월 막내 누님의 결혼식 가족사진에 저는 없습니다. 서산 어느 교회에서 치러졌던 결혼식의 분주함보다 그 뜰에 피었던 목련이 눈부셔 그 나무벤치에 앉아 ‘4월의 노래’를 흥얼거리다 타이밍을 놓쳤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이제 조카를 보낸 지 100일. 누님가족의 슬픔이 조금이나마 가셨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오늘 아이들과 도서실에서 수업을 했습니다. 도서실을 활용한 첫 번째 수업을 아이들에게 영국국립도서관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배 모양을 한 도서관의 이유, 3,500만 권의 장서와 1억 7,000만 점의 자료, 그 자료를 다 꽂는데 필요한 625Km의 서가, 한 사람이 그 자료를 보는데 걸리는 시간 8만 년,『해리포터』,『나니아 연대기』,『반지의 제왕』이라는 상상력은 그 도서관의 힘이라고. 사실 첫 도서관 수업을 위해 준비한 게 따로 있었는데, 얼마 전 읽었던 영국국립도서관 탐방기의 내용이 생각나 들려주었습니다(이 독서는 어떤 면에서 유용했을까요).
지난겨울 도킨슨의『만들어진 신』을 읽고, 반론을 제기한『도킨슨의 망상』(일리스트 맥그라스, 조애나 맥그리스, 정성민 옮김, 살림, 2008), 이어서『신은 위대하지 않다』(크리스토퍼 히친스, 김승욱 옮김, 알마, 2008).『도마복음 이야기 1』,『Q복음서』(김용옥, 통나무, 2008)를 통해 신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엿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도킨슨의『눈먼 시계공』은 아직은 장식용입니다. 요즘은 고종석의 우리말 산책인『말들의 풍경』과 국어의 변두리를 담은 몇 개의 풍경화『감염된 언어』를 통해 부족했으면서도 부끄러움도 못 느꼈던 우리말에 대한 애정을 찾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책만 있으면 일정 기간의 고립도 견딜 수 있겠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 아이들에게 책 읽는 이유를 물었을 때 그 어떤 아이도 대답해 주지 않아서 답답했던 그냥 읽는 게 ‘즐거워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신청한 수업실기대회 참가를 폐해야겠다는 좋은 핑계거리를 찾았습니다.
아이들은 늘 예쁘지만 오월 장미와 함께였을 때가 좋아보였습니다. 그것이 장미의 덕택인지, 오월의 덕택인지 모르겠지만요. 마음을 한없이 흐트러지게 하는 벚꽃보다 검붉은 장미의 열정이 교장선생님의 답답하고 초조해지는 마음을 붙잡아주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건강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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