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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봄 편지(Ⅳ) ; 포기

by 답설재 2009. 4. 18.

여자대학 봄 교정에 가보았습니까? 그냥 교정 말고 학생들이 가득한 그런 교정. 무슨 세미나에 참석하려고 이화여자대학교 후문에 들어섰을 때였습니다. 그 언덕길에 차를 세우고 어느 건물인가 싶어 표지판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합동으로 무슨 행사가 열렸는지, 그 학교 수천 명 학생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난감할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수십, 수백 명이면 ‘난감하구나’ 하면서 어떻게든 그 사이를 서행하려고 했겠지만 그냥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어서 그 싱그러움과 화사함 속에 그냥 서 있었습니다. 그렇게 서서 제각기 다른, 똑같은 모습은 단 한 명도 없을 것 같은, 그 외에는 그  모습들을 표현할 길 없는, 다만 한두 명이라야 ‘예쁘다’ ‘아름답다’ 하지 너무 많으면 그런 느낌 같은 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걸 느꼈습니다.


진건 읍내에서 오남으로 향하는 그 도로 네거리 옆에는 ‘대은변은렬묘역’이 있습니다. 연휴 이틀을 정신없이 앓고 출근하던 지난 월요일 아침, 그 묘역을 지나면서부터 참 난감했습니다. 배꽃이며 복사꽃이며 진달래며, 이틀 새 만발한 봄꽃들의 모습을 어떻게 정리해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올봄의 변화를 하나하나 챙겨가며 감상했는데, 그 이틀 새의 변화에 대해서는 무엇이 어떻게 변하고 있다는 식의 정리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주체할 수 없는 변화여서 ‘이 판을 이렇게 벌여 놓으면 어떻게 수습하려고 이러나’ 싶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식탁에 차려놓는 반찬들은 식사가 끝나면 버릴 건 버리고 다시 보관할 건 냉장고에 집어넣는 식으로 정리하게 됩니다. 이 책상에 이처럼 어지럽게 늘어놓은 책들과 자료, 필기구들도 시시때때로 정리하기 마련입니다. 세상에 우리가 정리하지 않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 봄의 싱그럽고 화사하고 찬란하여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성찬(盛饌)’도 언젠가는 정리되어야 할 것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차근차근, 차례차례, 천천히, 하나하나씩 변하면 어떻겠느냐고 이야기할 데가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도대체 이 변화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습니까?” 어느 누구도 서로에게 그걸 묻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젠 아무것도 모르겠고, 어느 순간 그 변화의 자초지종을 설명할 만큼 차근차근 살펴보는 일도 불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막스 피카르트도 이 변화를 그냥 ‘일격(一擊)’이라고만 표현했으니까요.

교장실에서 창밖을 내다봅니다. 단 두 가지 색에 대해서만 정리해두기로 했습니다. ‘연분홍의 깨끗함이 저와 같으므로 무슨 수로 저 화사함을 머릿속에 그려둘 수 있을까.’ "이게 개나리 울타리라는 거야!" 들은 적은 없지만 딱 한번 단호하게 얘기하고 간 것이 분명한 저 노랑……. ‘봄은 노란색 물감을 듬뿍 찍어 저 울타리 위로 확 그어버렸지.’


막스 피카르트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의 주제는 언제나 ‘침묵’입니다.


봄이 시작될 때면 사물들은 침묵으로부터 돌아와서 자기 자신을 더욱 깊이 성찰하게 된다.

봄에 나뭇잎들이 나비처럼 수줍게 나뭇가지에 앉아 있고 하늘의 푸르름이 가지들 사이로 밀려와서, 나뭇잎들이 가지에서라기보다는 하늘의 푸르름 속에서 떨고 있을 때, 나무는 침묵에보다는 하늘에, 그리하여 자기 자신에 더 많이 속하게 된다.

두 그루의 나무 사이로 사슴 한 마리가 뛰어 달아난다. 그 사슴의 밝은 반점들은 침묵을 뚫고 지나가는 하나의 소리와도 같다.

그러나 갑자기 달이 나타나고, 낫 모양의 달은 하나의 벌어진 틈과 같고 그 틈을 통해서 침묵이 숲속으로 내려와 모든 것을 뒤덮는다.(「자연과 침묵」에서)


봄에는 최초의 앵초꽃과 버들가지가, 마치 침묵의 갈라진 틈으로부터인 듯, 눈에 띄지 않게 살짝 미끄러져나온다. 그 다음에는 마치 일격을 받은 양, 크로커스와 튤립이 온통 한꺼번에 나타난다. 그 일격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렇게 돌연히 그 꽃들은 나타나고, 그러나 보라, 그 강렬한 소리는 빛깔로 변해 있다. 붉은, 아주 붉은색과 노란색으로 튤립은 거기 서 있다.

새들이 노래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대기의 침묵이 새들의 날개에 베어지는 소리 같다. 노래란 그렇게 하여 생긴다.(「농부와 침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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