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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르 클레지오가 본 한국

by 답설재 2009. 1. 13.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는 어떤 생각을 할까? 우리나라, 우리 문화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화여대 해외학술원 석좌교수인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가 200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2008년을 대부분 한국에서 보냈고, 노벨문학상 발표 일주일 전까지도 서울에 있었다.

 

파리에서 그와 인터뷰한 조선일보 기자가 그 내용을 『현대문학』 2009년 1월호에 실었다(박해현, 「문학의 책무-르 클레지오와의 인터뷰」282~291쪽). 다음은, '한국'과 '한국어', '한글', '서울', 한국 아이들에 대한 관점,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와 문학이 필요한 이유, 인터넷에 대한 생각, 건강 문제를 중심으로 그 글에서 발췌한 것이다.

 

 

박해현 : 언제 한국에 돌아올 건가.

르 클레지오 : 이화여대 해외학술원 석좌교수가 됐기 때문에 때때로 내 강의가 있을 때만 한국에 가면 된다. 아마 내년 2월이나 3월에 갈 것 같다. 이화여대 학술원과 상의할 일이 남았다. 호텔 숙박을 싫어하는 나를 위해 그동안 이화여대에서 기숙사의 작은 방을 제공했었다. 사방이 흰 벽인 그 방은 집필실로 쓰기에 딱 좋았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소설 『허기의 간주곡Ritournelle de la faim』을 거기서 썼다.

 

박 : 다시 오면 최소한 6개월 정도는 머물 것인가.

르 : 그렇다. 나는 한국에 머물면서 한국어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을 떠나 있으면 한국어를 잊어버리는 바람에 매번 새롭게 익혀야 한다. 영어와 프랑스어와는 달리 한국어는 쉽게 배울 수 있는 독특한 언어다. 프랑스어에 비해 한국어 동사시제는 쉽다. 그리고 한글 읽기를 깨우치는 데 하루면 족하다. 한글은 매우 과학적이고 의사소통에 편리한 문자다. 나는 한국인들이 얘기하는 것을 잘 들은 뒤 그것을 어떻게 쓰는지 사전을 통해 알아보고, 다시 그것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배웠다.

 

박 : 당신은 프랑스어 이외에 영어와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데 이제 한국어까지 할 줄 안다니 놀랍다.

르 : 아니, 아니 (손사래를 치면서) 한국어를 영어나 스페인어처럼 말할 수준이 아니고 그냥 한글을 읽을 줄 안다는 것이다. 한국어의 특징을 보여주는 단어들로 '보람'과 '정'을 꼽을 수 있다. '보람'은 용기를 북돋우면서 희생도 요구하는 독특한 말이다. 영어와 프랑스어에는 합당한 번역어가 없다. '정'도 그렇다. 긍정적이면서 부정적인 뜻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내가 남에게 정을 준다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남이 정을 달라고 하는 것은 내게 부정적이지 않은가. (웃음)

 

박 : 서울이 그리운가.

르 : 그럼, 그럼. (잠시 눈을 가늘게 뜨더니) 서울은 역동적인 도시다. 파리는 몇 년을 떠났다가 돌아와도 변한 것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서울은 두 달만 비우면 새 건물이 들어선다. 물론 서울의 아름다움도 빼놓을 수 없다. 한강은 매우 크고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강이다. 서울에는 나무가 울창하고 새들이 지저귀기 때문에 산책하기 좋은 언덕이 약 50군데나 있다. 특히 여름철에 '매미'(정확하게 한국어로 발음)가 노래하는 소리를 이화여대에서 들으면서 나는 현대문명과 농경사회의 혼합을 느꼈다. 서울처럼 매미 울음소리가 자동차 소음보다 더 큰 수도首都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다.

 

…(중략)…

 

박 : 당신의 첫 소설 『조서』의 끝부분에서 유년기는 자연과 소통하는 '유희적 우주'라고 강조했고, 다른 소설에서도 유년기의 의미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다.

르 : 생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면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간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년기는 세계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들 틈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시기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아이들은 여섯 살만 되면 어른들로부터 '공부해라'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어린 시절을 도둑맞는다. 매우 슬픈 일이다.

 

박 : 한국 아이들이 더 공부에 시달리면서 크는 것이 아닌가.

르 : 그래도 한국에서 어린이는 왕이다. (웃음) 한국 아이들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소리 지르고 아무 데서나 뛰어다닌다. 한국 아이들은 좋은 대접을 받고 있다.

 

박 :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다음 날 파리에서 공동기자회견이 열렸을 때 당신은 오늘날 문학의 위기를 의식한 듯 '소설을 계속 읽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던졌다.

르 : 나는 '문학을 통한 세계이해'를 사랑한다. 과학서적을 통해 세계를 이해할 때와는 매우 달리 우리는 문학서적을 읽으면서 '타자他者'를 받아들이게 되고, '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인격'에 변화를 일으킨다. 예를 들어, 당신이 황석영의 소설을 읽을 때 당신은 그가 말하는 것에 거리를 둘 수 없고, 황석영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중략)… 나와 다른 시각을 통해 세계를 볼 수 있게 한다. 문학은 세계 이해의 좋은 도구이자 동시에 문학은 획일적 사상의 세계화로부터 탈주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중략)…

 

박 : 인터넷이 문학을 위협한다고들 하는데…….

르 : 아니,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문학과 인터넷은 서로 다른 영역이다. 문학은 책을 통해 향유되지만, 인터넷은 기술에 속한다. 인터넷이 미술의 데생이라면 문학은 회화라고 할 수 있다. 종이책이 덜 팔릴 수도 있지만, 책은 여전히 유통된다. 한국정부는 책에 세금을 적게 매기는 좋은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 책은 품질이 좋으면서 값은 싸다. 거꾸로 프랑스의 책은 품질은 나쁘면서 값은 비싸다. 한국으로 치면, 소설책 한 권에 3만 원이나 한다.

 

…(중략)…

 

박 : 당신은 원기왕성해 보인다. 건강을 어떻게 유지하는가.

르 : 하하. 한국음식은 내 건강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나는 한국인처럼 쌀밥을 아주 많이 먹는다. 모리셔스섬의 음식도 한국음식과 마찬가지로 쌀밥과 채소 위주로 꾸며진다. 나는 알코올을 전혀 입에 대지 않고, 담배는 더 이상 피지 않는다. 나는 매우 이성적이다. (웃음) 나도 한때 담배를 많이 피웠었지만 서른세 살에 끊었다. 금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을 하나 소개하겠다. 이탈리아 소설가 이탈로 스베보의 소설 『제노의 의식Conscience de Zeno』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담배를 끊으려고 애쓰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금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뭔가 큰일을 하려면 당장 금연하는 게 좋다.

 

…(후략)…

 

 

르 클레지오는 2008년 12월 7일, 스톡홀름의 스웨덴한림원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연설을 통해 '패러독스의 숲 속에서'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문학이 여전히 필요한 두 가지 이유를 밝혔다.

그는 "문학은 언어로 지어진다." "작가, 시인, 소설가들은 모두 창조자들이다. 이것은 그들이 언어를 발명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아름다움, 사상, 이미지들을 창조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뜻한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발명품인 언어는 모든 것에 선행하면서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게 한다."고 했다. 또 "책은 케케묵었지만 이상적인 도구"이며 "실용적이고 다루기 쉽고 경제적이다. 책은 결코 특별한 테크놀로지의 힘을 요구하지 않고 어떤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는다."고 했다.

 

 

그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노벨상 받는 일에 이토록 집착하는 한국에서.

나 : 당신은 노벨문학상을 받기 위해, 훌륭한 작품을 쓰는 일 외에 또 어떤 노력을 했는가.

르 클레지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