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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조엘 에글로프 『도살장 사람들L’étourdissement』

by 답설재 2009. 2. 8.

 

 

 

 

『현대문학』 2009년 2월호에 소설의 일부가 소개되었다. 번역자(이재룡 숭실대 불문과 교수)가 다음과 같은 주를 붙였다.

 

『도살장 사람들』은 조엘 에글로프Joël Egloff의 네 번째 소설이다. 『현대문학』은 에글로프의 처녀작 『장의사 강그리옹』과 두 번째 작 『해를 본 사람들』에 이어 『도살장 사람들』을 출간하기에 앞서 일부를 먼저 소개한다. 이 작품은 시골마을의 도살장에서 일하는 남자가 겪는 소소한 일상을 그린 이야기이다. 폐수처리장, 쓰레기하차장, 폐차장에 둘러싸인 마을에 사는 어리숙한 사람들의 어두운 일상이 작가 특유의 해학적 시각으로 그려진 『도살장 사람들』은 <엥테르 문학상> 수상작이다. 프랑스 라디오 방송국인 '엥테르'가 주관하는 <엥테르문학상>은 전국 각지의 독자를 대표하는 25명이 투표로 수상작을 결정한다. 이제 겨우 다섯 작품을 발표한 작가지만 『장의사 강그리옹』은 <알랭 푸르니에상>, 『해를 본 사람들』은 <에륵만 샤트라앙상>, 『내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했던 것』은 <블랙유머 대상>을 받은 바 있다.

 

소개된 일부 중의 첫 부분이다.

 

내가 사랑에 빠져 있었던 시절에는 모든 게 달랐다.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지금의 내가 아니었다. "지금 네가 하는 것은 아주 훌륭한 직업이야."라고 누누이 혼자 중얼거렸고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할머니를 다정하게 포옹했고 이 동네도 정말 평화롭고 살기 좋은 아늑한 곳이라고 믿었다.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도살장에서였다. 그렇다고 그녀가 거기에서 일을 했다는 소리가 아니라, 그녀는 유치원 선생님이었다. 그녀가 격주로 금요일마다 현장학습을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에 오는 바람에 그녀를 만난 것이다. 도살장에서는 요일별로 모든 연령대의 방문객을 받았다. 그녀가 데리고 오는 가장 어린 연령층의 방문객은 주로 동물 구경을 하고 암소는 "음메" 하고 울고 양은 "메"하고 운다는 등, 주로 그런 것들을 배우러 온다. 보다 머리가 큰 아이들은 주로 기술적인 것들을 궁금해 한다. 자동장치들,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기계, 흔들거리고 움직이는 전기, 수압, 공기압력을 이용한 장치들 같은 것에 흥미를 느낀다. 조만간 우리 처지에 처할 법한 또래의 연령층이 원하는 것은 보다 구체적인 것을 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거리낌이 없었고 모든 것을 아주 자세히 알고 파고들고자 했다. 그들은 긴 질문목록을 가지고 나타났다. 메모를 끄적거리는 것을 봐서 나중에 발표도 할 모양이었다. "마취는 어떤 식으로 하지요?" "피는 어떻게 뽑아내는지?" "내장 제거는?" "열탕식 털 뽑기는 어떻게 작동하는 건지?" "심줄제거기는 어떻게 쓰는 건지?" 그들은 시범을 보여주길 원했다. 그리고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았다. "한 시간에 몇 마리나 죽일 수 있나요?" "하루에 몇 시간 근무하는지요?" "그리고 이것저것 다 합하면 얼마나 버나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는 그들을 보며 나는 "도무지 젊은 애들은 없네!" 라고 중얼거렸다. '

 

동네 도살장에는 유치원 아이들도 가서 배우고 고등학생쯤 된 -조만간 우리 처지에 처할 법한 또래의- 학생들도 가서 배우는구나.' '역시, 이렇게 가르치는구나!' '우리는 뭘 가르치고 있나.'

 

그렇지 않은가? 인문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자연과학이든, 그 어떤 학습이든 우리들 생활의 모든 장면에서 이루어질 수 있고 이루어져야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우리는 뭐든 어떤 교과목이든 이 세상의 심오한 것들은 모두 교과서에 담고, 그 모든 것을 가르치지 못해 안달이 나 있다. 그런데도 왜 내가 하는 일은 아직 교과서에 없느냐며 대어들고, "이것도 중요하다", "저것도 중요하다" 핏대를 세우고 있다.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목표가 문제인 교육정책이어야 한다. 우리는 내용을 추구하며 수많은 시간을 가르치고 배운다. 그것으로 아이들을 못살게 굴고, 그것으로 서로 다툰다. 교육목표나 학습목표 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다. 어느 학교가 그 학교의 교육목표나 그 지역의 교육청에서 정한 혹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정한 교육목적 혹은 교육목표를 거두어 내팽개쳤다고 하자. 그 학교의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 될까?

 

교육은, 잘 간추려진 수많은 사실들의 요약을 잘 전수하고 암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갈 수 있는' '살아가는' 능력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목표를 추구하는 활동이어야 한다.

 

'배운다'는 것은, 보고 생각하는 개별활동으로,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활동이다. 언제 어디서나 '생활'은 심오한 것이고 심각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목표를 정하는지가 관건이 되어야 한다.

 

'조금 가르치고 많이 배우게 한다Teach less, learn more'는 것이 싱가포르의 교육정책이라고 한다. 우리는 학교에서 더 많은 시간을 가르치면 좋아하고 그것이 교육혁신이라고 부르짖는다. 교사는 수업시간의 대부분을 자신의 설명으로 메우고 학생들에게는 '학습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잘 가르치는 교사는 많이 설명하는 교사가 아니다. 잘 가르치는 학교나 교사는 밤늦게까지 많은 시간을 가르치는 학교나 교사가 아니다. 같은 시간에 학생들이 더 많이 생각하게 하고 더 많이 배우게 하는 교사가 잘 가르치는 교사이다.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 교사와 학생, 교과서, 칠판, 프로젝션 TV가 있는 교실이면 온 세상을 다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교육방법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지식이나 세상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 선생, 먼 나라의 소설 속에 나타난 걸 보고 뭘 그래? 40년을 교단에 바치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나?" 한다면, 나는 19세기(1886년)에 이탈리아의 에드몬드 데 아미치스가 발표한 소설 『사랑의 학교』는 21세기에는 못하겠다면 22세기에라도 꼭 실현해야 할 우리의 '꿈의 학교'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좀 직접적으로 말한다면, 이런 식으로는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다만, 우리 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면, 그러면, 사교육도 정상적인 사교육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는 결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 생각해볼 것이다.

 

번역자는 이 소설에 대해 '해학적 시각'이라고 했다. '해학적 시각'이라면 '해학적'이지만 그것 또한 우리의 삶이고 진실이 아닌가 싶다. 그런 부분을 두 군데만 인용해둔다. 이것은 순전히 재미를 위한 인용이다.

 

그들이 떠나는 순간에는 항상 그녀는 내게 들러 인사를 하고 시간을 내줘서 고맙다고 했다. 어린 양떼 속에 있는 양치기 소녀처럼 얇은 옷차림의 그녀가 멀어져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다음번에는 덤벼봐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다음번에도 항상 ‘다음번에는’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지금까지 지속되었다.

밤에 침대에 누워 그녀를 생각하며 마음속에서 같은 말을 되풀이하면 모든 게 잘될 것 같았다. 그녀에게 나는 "언제 하루 날 잡아서 이끼 낀 강변으로 피크닉을 하러 갈 생각 있어요?"라는 말을 연습해보았다. 그녀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끼 낀 강변이라고요?"라고 대꾸할 것이다. "그것 재미있겠어요."라고 대꾸할 것이다. 그렇지. 이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하지만, 빌어먹을, 그게 그렇게 어렵단 말이지. 몇 달이 지났고 나는 여전히 이리저리 생각만 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도대체 밑질 것도 없잖아, 라는 생각을 했다. 따지고 보면 밑질 것도 없다. 최악의 경우라도 내가 당할 일이라고는 그녀가 나를 완전히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그녀가 나를 깔보며 웃는 것. 아마 아이들도 이유조차 모르면서 멍청한 웃음을 터뜨릴 테고, 그러면 마치 전염병처럼 웃음이 도살장 안에 퍼질 테고 모든 사람이 나를 손가락질하며 배꼽 잡고 웃을 것이다. 그게 전부이다. 그래서 뭐가 달라지나? 그것만 뺀다면 내가 밑질 게 뭐 있나? 이러니 꽤 자신감이 들었다. "그래 맞아, 별것도 아니잖아. 따지고 보면 손해날 것도 없어." 그래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그녀의 다음 방문을 기다렸다. 그날이 오자 나는 기회만 엿보았다. 심장이 북을 치듯 요동쳤다. 그녀에게 돌진하기 전에 셋을 세었다. 그리고 다시 셋을 세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셋을 세었다.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이 나답게 그녀에게 감히 말을 걸지도 못했고 그냥 떠나보냈다.

 

어쩌면…….

 

-자네 말이 맞아. 그런 생각은 못했네. 보르슈가 맞장구를 쳤다.

-불쌍한 피뇰로. 그리 나쁜 놈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갑작스레 가다니……. 집이 가까워지자 어떤 식으로 이야기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만 할지 점차 걱정되기 시작했다. 쉽지 않은 일이고 부드럽게 말을 꺼내야 하는데 이런 상황은 한 번도 겪은 적이 없으니 미리 조금 연습을 해보면서 적당한 말, 상황에 맞는 문장을 찾아보았다. 우선 그녀에게 약간의 연금을 만지게 될 거란 말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일단 기분이 좋아질 거다. 그러고 왜 연금을 받느냐고 묻겠지. 그때서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야기해주면 보다 쉽게 받아들일 거야. 보르슈는 미심쩍은 눈치였다. 그는 보다 근엄한 투로, 예컨대 "피뇰로 부인, 남편께서는 영웅답게 돌아가셨습니다."라고 하자고 했다. "허풍 떨지는 말아야지."라고 내가 반박했다. 우리는 머리에 떠오르는 온갖 말들을 늘어놓았다. "피뇰로 부인, 좋지 않은 소식이 있습니다." "피뇰로 부인,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피뇰로 부인, 용기를 내셔야 합니다." "피뇰로 부인, 남편께서 재수가 없었습니다." "피뇰로 부인, 하느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피뇰로 부인, 우리가 왜 방문했는지 알아맞혀보세요." 결국 어떤 표현에도 합의할 수 없어서 우리는 즉석에서 튀어나오는 말로 하자고, 상황에 처하면 말이 저절로 튀어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가장 간결한 표현이 최선일 것이다. -골치 아프면 내게 맡겨둬. 보르슈가 말했다. -고마워. 하지만 내가 하는 편이 나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