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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외롭지만 신선한 KAIST의 학생선발 (경기신문 시론 20081118)

by 답설재 2008. 11. 18.

 

 

 

  올해도 어김없이 D-100일식으로 ‘카운트다운’된 대학수학능력고사였다. 신문에는 당연한 듯 수험생을 위한 작전이나 유의점이 기사화됐고, 족집게 과외문제도 등장했고, 영험하다는 곳을 찾은 부모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도 실렸다.

 

  “수능, 작년보다 어려웠다” 혹은 “전반적으로 평이한 교과서 수준서 출제” “메가스터디 ‘언어․외국어는 작년과 비슷” “상위권 변별력 위해 수리 ‘가’와 외국어 까다롭게 출제” “출제위원장, 너무 어려워도 너무 쉬워도 문제, 수험생 기대치에 맞추려고 노력” “1교시엔 웃다가 2․3교시엔 울상” “특목고 출신, 상위권대 ‘싹쓸이’할 듯” “수능 자신 없으면 수시 2학기 적극 공략해야” “소신․적정․안정권으로 나눠 포트폴리오 짜야” “상위권 대학은 수리, 중위권은 언어에 가중치” 등 유사한 기사들이 공식처럼 등장했다.

 

  아무런 불평 없이 10시까지 출근․등교했고, 심지어 경찰차나 소방차까지 동원되어 수험생을 실어 나르는 부산을 떨었다. 듣기문제를 풀 시간에는 온 나라가 조용히 해준 것도 물론이다. 수험생과 그 부모들은 오랫동안 몸살을 앓았고, 그걸 모르는 국민은 아무도 없으므로 겉으로는 그야말로 우리나라 특유의 혹은 고유의 무슨 축제일처럼 평온한 하루가 지나갔다.

  더구나 올해는 어떤 부작용이 있었다는 기사 하나도 없었다. 그 시험을 그렇게 치르는 것은 당연하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 그렇게 지나간 것이다.

 

  그러나 수능은 대한민국 고교 3학년 전 학생을 대상으로 한 철저한 객관적․상대적 평가일 뿐이다. 하루 만에 수십만 명의 실력을 평가하는 건 불합리한 일,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들추어내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 시험이 오늘날 교육학자나 교육자들이 중시하는 사고력이나 창의력 같은 필수적 능력을 평가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험문제를 출제하는 측에서는 온갖 노력을 기울여 사고력을 평가하는 문제를 출제했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학생들은 개인적 상태에 대해서는 아무런 배려도 있을 수 없는 제한된 그 시간에 온갖 조건이 통제된 그 고사장에서 그 문제만으로 자신들의 사고력이나 창의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기계가 아니다.

 

  수능에는 학생의 진로나 희망사항이 끼어들 수 없다.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길러온 특기․적성, 장래희망 같은 건 사치품에 지나지 않는다. 온 학생이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수능영역, 변별력과 난이도, 백분위점수와 표준점수 같은 교육용어에 익숙해져야할 뿐이다. 전국의 학생들과 점수로 겨루어야 할 뿐이다. 그 점수에 맞춰 지원할 대학을 고르는 일에 능숙한 전문가가 등장하고, 면접고사에서 지원동기는 짜맞춰 대답하는 하나의 절차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형태만 변경되어온 그 수능고사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심지어 교과서 밖에서 지문이 선택된 경우 그게 무슨 사건인양 기계적․획일적 학습을 강요하는 그 지긋지긋한 시험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때로는 새롭고 특이한 대입전형(大入銓衡) 방법이 등장한다 해도 결국은 이 무소불위의 전형방법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전통을 답습하고 있다.

 

  웬만한 신문에는 수능에 대한 사설 하나 실리지 않았다. 어느 영역(교과)에 어떤 문제가 출제되었으므로 앞으로는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분석조차 없다.

  결국 ‘특목고 학생은 좋겠다’ ‘교과서를 철저히 외울 필요가 있다’ ‘시간을 많이 투입할수록 유리하다’ 싶은 이 시험에 대해 KAIST 총장은, 1점 차로 합격과 불합격이 결정되기 때문에 비교육적인 사교육을 시키게 된다고 했다. 그는 이런 이유 때문에 KAIST는 면접으로만 신입생을 선발한다면서 “우리가 원하는 학생은 점수 1점을 더 받는 학생이 아니라 창의성, 사회성, 자기 독립성 등을 갖춘 학생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유명 대학들도 이 변화를 따라오게 될 것이며 “이렇게 되면 쓸데없이 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KAIST의 아직은 외롭지만 신선한 변화가 어느 날 걷잡을 수 없는 기세로 확산되기를, 이로 인하여 우리 교육의 발전방향이 정립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