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숨 막히도록 끈질긴 교과서 중심 교육 (경기신문 시론 20081021)

by 답설재 2008. 10. 21.

 

  지난달 26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최 국제학술세미나에서 호주 커틴대학교 교수 콜린 마쉬는 수많은 나라에서 교육개혁에 열정을 보이고 있으나, 교육정책가들은 여전히 표준교육 및 필수학습을 우려하고 있으며, 교사들의 전문지식이 강화되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학교교육 선진화를 위해서는 3C, 즉 교육과정(Curriculum), 창의성(Creativity), 협동(Collaboration)이 기본적 요소라고 했다. 또 한국은 국가교육과정에는 관심이 많은 나라지만, “덜 가르치고 더 많이 배운다(Teach less, learn more)”는 싱가포르 정책처럼 학생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교육과정 운영이 세계적 추세이므로 한국의 교사들도 각 학교에서 학생중심의 다양한 교육과정 개발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교교육과정’이라면 우리나라도 1990년대부터 현장에 적용되기 시작했으므로 행정면에서는 매우 발달되어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교과서를’ 가르치지 말고 ‘교과서로’ 가르쳐야 하며, 그러자면 국가교육과정을 기준으로 각 학교별로 개별 교육과정을 구성해야 한다는 지침을 주고 있다. 또 교육과정 개발요령 연수를 실시하고 해마다 우수한 학교교육과정을 선정하여 표창하고 있다.

 

  그러나 교실현장은 그 취지에서 멀다. 학교교육과정은 정작 수업을 위한 프로그램이 되지 못하고 있으므로 교사들은 ‘매뉴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표준화된 지도안이나 교과서만으로 수업을 전개한다. 오죽하면 ‘매직쇼’ 혹은 ‘원맨쇼’라고 해도 좋을 학원강사식 강의가 아직도 인정을 받거나 인기를 끌고 있을까.

 

  우리 교육의 이러한 병폐에 대한 증거가 “학원에서 암기위주로 공부한 학생을 뽑지 않겠다”는 KAIST의 발표다. KAIST는 인성과 잠재능력을 중시하는 면접위주의 입시전형을 적용하지만 학원가에 ‘KAIST 준비반’이 생기는 등 예상답변을 외우는 사례가 많다면서, “우리는 준비한 답을 암송하는 학생이 아니라 책을 많이 읽고 다양한 활동을 한 잠재력 있는 인재를 원한다”고 했다.

 

  입시위주, 암기식교육의 병폐를 들 수 있는 증거는 얼마든지 있다. 최근 컬럼비아대학의 한 교수는 1985년부터 2007년까지 아이비리그 등 14개 명문대학에 입학한 한국인 학생 1400명 중 졸업생수는 784명(56%)에 불과하며, 중도탈락률이 중국, 인도 등에 비해 2~3배나 높다고 밝혔다.

  그는 이처럼 중퇴율이 높은 것은 입시위주의 공부를 해온 탓에 미국의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온실에서 자란 화초 같은 학생들은 사회적응력이 떨어지고 도전과 실패를 몰라 힘든 대학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우리나라 학부모의 절반인 48.3%가 자녀의 유학을 희망하며, 이는 ‘국제적 안목을 키우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36.4%) ‘한국의 교육제도가 싫다’(23.7%)는 사람도 많다는 통계청 발표도 그러한 지적에 지나지 않는다. 또 조기유학생들이 지적한 한국교육의 나쁜 점은 ‘암기위주 주입식교육’(21.4%), ‘과중한 공부’(20.5%), ‘학생수 과다에 따른 자질 무시’(19.6%)였다는 한국교육개발원의 발표도 마찬가지다.

 

  우리 교육이 교과서중심 교육, 입시위주 교육, 암기위주 교육이라는 비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행정은 이 문제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쏟아지는 교육정책 속에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책은 찾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현재의 정책, 현재의 교원연수와 회의들이 모두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는 ‘넉넉한’ 해석은 그만하고, 우선 학교교육과정을 위한 정책, 연수, 회의부터 강화해야 한다.

 

  앨빈 토플러는 이미 1980년에 산업사회 공장의 소품종 대량생산형 교육은 시간엄수, 복종, 기계적인 반복작업이 그 특징이라고 외쳤다. 그는 2006년에 한국에 와서 이렇게 말했다. “풀빵 찍듯 하는 교육, 국가경제 망칩니다.” 앨빈 토플러가 30년간 괜히 공허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교과서를 외우는 공부를 시키면서 그 범위 밖에서 출제하면 큰일로 치는 우리 교육이 끈질긴 고집 혹은 방치에 빠져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