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초, 학교에는 매우 이례적인 공문이 접수되었다. 교육청에서 시청의 공문을 이첩해서 보낸 문서였다. 최근 멜라민 파동에 따라 국민건강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가운데,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는 멜라민 의심 제품 428개 품목에 대해 판매금지 조치를 하고 있다는 사항과 함께, (주)해태의 ‘미사랑 카스타드’와 ‘미사랑 코코넛’, (주)제이앤제이인터내셔널의 ‘밀크러스크’, 동서식품(주)의 ‘리츠샌드위치 크래커치즈’, 화통앤바방끄(주)의 ‘고소한 쌀과자’, (주)유창에프씨의 ‘식물성크림’, (주)아이에스씨의 ‘린저 카페테리아’, ‘모카 카페테리아’, ‘카페 메델린’은 멜라민이 검출되었으므로 이를 홍보하여 안전한 식품유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멜라민은 주로 플라스틱, 염료, 접착제, 합성섬유, 내연재 등의 원료로 이용되고, 식기나 주방용품을 만드는 데에도 많이 쓰이며, 사람이 다량 섭취할 경우 요로결석, 급성신부전 등 신장질환을 일으키는 공업용 화학물질이라고 한다. 실제로 지난 2004년과 2007년에 미국과 캐나다에서 개, 고양이 5천여 마리가 멜라민 독성에 따른 급성신부전으로 희생됐고, 2007년에는 사람의 콩팥에 악영향을 준다는 사실도 확인됐다고 한다.
보도에 의하면, 지난해 봄 주중 한국대사관에서는 미국에서 멜라민이 함유된 중국산 사료를 먹은 애완동물이 사망한 것을 알고 우리 정부도 수입식품관리에 주의할 것을 촉구하는 공문을 세 차례나 보냈다. 그러나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사료 원료만 성분조사를 한 뒤 위험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식약청은 또 멜라민 분유를 먹은 중국 영아들이 사망한 뒤에도 중국 분유는 국내에 반입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그러다가 영유아 수천 명이 신장결석을 앓고 있으며 22개 업체 유제품에서 멜라민이 검출됐거나 멜라민 가공식품을 수출했다는 중국의 발표를 보고서야 수입가공식품 검사를 시작했다.
우리는 이처럼 사태파악에도 어설프기 짝이 없다. “멜라민 커피를 하루에 4천 잔 이상 장기간 마셔야 위험하다”는 말도 나오고, “검사를 왜 안 했느냐”는 질문에 “사람이 먹지 않는 화학물질이어서 검사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아이들은 안중에도 없이 성인에게는 독성이 강한 물질이 아니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멜라민 공포가 지나치다”고도 했다.
상인들은 판매 금지된 제품을 팔면서도 “왜 호들갑이냐”고 했고, 식품업계에서는 “이러면 식품업계가 다 죽는다”고 했다. 원산지를 ‘수입산’으로만 표시한 일, 학교 앞이나 길가 식품은 100% 중국산이라는 사실, 국산 양념을 살짝 섞어 국산이라고 속인 일, 유통기한을 멋대로 정하거나 아예 표시하지도 않는 일, 민간 검사기관의 1/3이 엉터리라는 사실, 중국제 유가공품의 1/2은 단 한 차례도 검사하지 못한 일 등이 한꺼번에 밝혀졌다. 국회에서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적용하는 공식처럼, 멜라민 문제 아니면 무엇으로 호통 치려고 했는지 “너 잘 만났다”는 식으로 ‘강력 질타’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외국산 식품을 먹는 것은, 그 나라 기업이나 상인들이 아니라 우리 정부, 우리 기업을 믿기 때문이다. 엉터리 중국산 식품이 밝혀진 적도 있지만 그래도 또 먹고 사는 것은 그 식품을 수입하는 기업을 믿기 때문이며, 고급식품만 먹을 수도 없고 각자가 농사를 지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학교나 학원을 나서자마자 과자나 꼬치, 어묵 따위를 찾는 아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은 아무리 시끄러워도 어른들을 믿고, 우리 정부 우리 사회를 믿을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과 기업들이 최소한 그들만큼은 교육적, 도덕적인 줄 알기 때문이다.
돈은 교육적으로 벌어야 한다. 돈을 교육적으로 버는 것이 어떤 뜻인지 모른다면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된다. 그것이 바로 도덕이고 윤리다. 경제적으로 말하면 기업의 생명은 ‘이윤창출’일뿐이라고 하고 싶겠지만 ‘이윤창출’과 ‘도덕성’ 두 가지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그것이 경쟁력의 원천임을 깨달아야 하며, 이번 ‘멜라닌 사태’에서 학생들은 그것을 이미 다 배웠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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