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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청소년 부패인식?「너나 잘 하세요!」(20081104)

by 답설재 2008. 11. 4.

 

 

  학교에서 보기엔 우리 국가․사회의 과거와 현재, 예측되는 미래의 모든 현상이 교육의 자료가 된다. 현장교육이 사회현상을 외면할 경우 고학년이라면 그 외면을 당장 눈치 챌 것은 당연하다.

 

  가령 한국과학기술연구원(KAIST)과 포스텍(포항공대) 등의 로봇 기술개발 기사는 과학교육의 훌륭한 소재가 된다.「서비스 로봇기술, 세계 1위 일본 맹추격…간호․순찰․군사용 등 다양화」「관공서 안내 로봇, 내년에 나온다」, 학생들에게 당장 소개해주고 싶은, 얼마나 신선하고 신나는 일인가.

 

  믿고 싶지 않은 일도 있다. 지난 10월 8일 사학재단의 편의와 교직원 인사잡음을 묵인하기로 하고 돈을 받아서 검찰조사를 받은 어느 교육감이 사퇴했다. 이어 10월 13일에는 인사 청탁 대가의 뇌물을 받은 다른 교육감이 또 사퇴했다. 뿐만 아니다. 당선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 교육감이 선거비용을 빌린 문제로 조사를 받게 됐다.

 

  “교육계는 썩었구나” 하겠는가. 그렇지 않다. ‘세상에 저런 분도 있을까’ 싶게 직무에 혼신을 다 바치는 교육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계 부정비리는 교육계이기에 더 부각되는 건지도 모른다. 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로 추천된 어느 인사는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서 토지를 사들였다”고 한 적이 있고, 재산이 아주 많은 한 지도자는 “열심히 살았으므로 이 정도는 모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도 누구보다 자연을 사랑하는데 왜 이럴까?” “나도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럴까?” 한다면, 그러면서 한숨 쉬는 부모를 바라보는 청소년이 있다면, 그들은 자신의 입장을 뭐라고 더 설명해줄 수 있겠는가.

 

  신문만 펴면 어느 기업체 CEO가 몇 억, 몇 십억의 부정을 저질렀다거나, ‘저런 정치가에게 적용되는 법은 없나?’ ‘혹 우리 같은 사람은 모르는, 법보다 더 엄중한 가치의 무엇이 있는가?’ 싶은 정치가들에 관한 기사쯤은 쉽게 찾을 수 있다. “기업의 목적은 오로지 이윤창출”인데도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가 심하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들은 저 고운 아이들 건강도 아랑곳없이 저질 식품을 생산․수입하여 우리를 슬프게 한다.

 

  더 슬픈 기사가 있다. 한국투명성기구란 단체에서 지난 9월 전국 중․고교생 1100명을 대상으로 ‘반부패 인식’ 설문조사를 했더니, “감옥에서 10년을 살아도 10억원을 벌 수 있다면 부패를 저지를 수 있다”고 한 응답이 17.7%였다고 한다.

  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기꺼이 뇌물을 쓸 것”이라는 응답이 20.0%, “내 가족이 권력을 남용하거나 법을 위반해서라도 부자가 되는 것은 괜찮다”는 응답도 17.2%였다고 한다.

 

  이 기사에 대한 사설은, 우리가 보기엔 「아이들 때문에라도 이제는 정신을 차리자」인데, 당연한 듯 「청소년 반부패교육 절실」이었다. 심지어 어느 교육학자는 “외형적 성과주의로 치닫고 있는 우리네 학교교육과 국가 교육정책에 중요한 메시지를 제시해주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엇이 교육내용이 돼야 하는지 일깨워주었으므로 얼마나 잘 가르치는 교사인지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가르치는 교사인지에 대한 관심이 고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처구니없는 주장들이다. 학생들의 그 응답은 차마 사실대로 답하지 못하여 실제보다 낮은 수치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렇게 주장하려면, 넉넉히 가진 사람들, 우러러보기보다 부러워하는 직위의 부정부패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같은 설문을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그것부터 대답해야 한다. 온 사회가 그렇게 가르치더라도 학교에서 그렇지 않다고 가르칠 수 있는 교육내용이 무엇인지 그 물음에도 대답해야 한다.

 

  ‘요놈들이 벌써?’ ‘교사라면 모름지기…’ 같은 논리라면 너무 얕고 치졸하다. 교육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학교와 교사들을 도울 길이라도 찾아야 한다.

  어렵지 않다. 상식대로 살고, 학생들에게 그 상식을 가르치라고 하면 좋은 세상, 이른바 ‘경쟁력 있는 나라’가 된다. 학교에는 적어도 그 응답대로 살아가는 청소년은 단 한 명도 없다. 학교와 학생들, 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우선 우리들 자신의 수준부터 높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