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개혁, ‘흐지부지’한 이유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교육정책을 주시해온 언론들은 현재까지의 상황을 ‘흐지부지’ ‘용두사미’ ‘갈팡질팡’ 같은 민망한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2013학년도 대학입시부터 수능 영어 과목을 없애고 토플형 영어능력평가로 대체함으로써 학교의 실용영어교육을 강화하고 이를 평가하는 시스템도 바꾸겠다던 계획은 보류됐다고 한다. 입시정책을 잘못 바꾸면 사교육시장만 키우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지필고사형 수능 영어시험을 계속 치르게 된 것이다. 학생들의 입시부담과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2012학년도부터 5개 과목으로 축소하기로 한 수능 과목(현재 7~8과목)도, 국․영․수 사교육이 늘어나고 없어지는 과목 교사들의 반발을 고려해 단 한 과목만 축소하기로 했다.
올 연말까지 발표하기로 한 자사고 100개교 설립계획, 영어전문교사 선발계획은 아직 논의 중이고, 지역교육청을 교수․학습지원센터로 개편해 교사들의 수업개선을 돕는 기관으로 바꾸겠다던 논의는 사실상 중단됐다.
또 교육의 분권화․자율화 차원에서 교육과학기술부와 국립대․교육청 간 인사교류를 중단하도록 하겠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여전히 그러한 인사교류가 실시되고 있다. 교원평가제에 대해서도 교육과학기술부가 전교조 눈치를 보느라고 뒷짐만 지고 있고 의원 입법으로 추진한다지만 이번 국회에서 통과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한탄하는 언론도 있다.
교육개혁 또는 교육공약의 이와 같은 추진 상황에 대해 “교육개혁은 미래를 위한 일이므로 당장은 인기가 없고 반대가 많더라도 꼭 해야 할 일이라면 밀고 나가는 것이 옳다”는 시각도 있다.
교육개혁이 이처럼 지지부진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설명할 정부 입장을 두둔하거나 옹호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그러나 우선 그동안 허다하게 시도된 교육개혁의 취지와 그 성과를 평가해보고 무엇이 문제였는가부터 따져봐야 한다.
역대 정부의 교육개혁 주도 세력은 대부분 처음엔 행정력으로 밀어붙이면서도 논리적으로는 “개혁의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바로 초․중등 교사 여러분”이라고 했다. 특히 구체적 사업의 실천은 현장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드러나면 그러한 설명을 강화했다. 또 이전의 실패한 교육개혁 정책에 대해서는 언제나 교사를 개혁의 주체로 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가 발표한 교육개혁 사업들은 왜 추진력이 약화되고 있는가? 개혁을 위한 논리가 정연하지 못한가? 사교육시장의 세력 때문인가? 교사들이 방관적이거나 비협조적인가?
특이하게도 이번의 교육개혁에서는 ‘큰 그림’을 찾기가 어렵다. 각 정책별로는 모두 타당하고 현실적일 수 있지만 그러한 정책들이 추구하는 일관된 방향, 비전을 분명하게 그려보기가 어렵다.
지난 11월 26일, 한국교총과 한국교육개발원, 한국교육학회는 ‘한국교육 60년 성과와 과제’를 주제로 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주제발표(곽병선, 경인여대학장)의 핵심은, 대입 자율화나 교육의 다양화․자율화, 학교선택제 확대 등 그 무엇보다 우선해야 하고 정권을 초월하여 추진돼야 할 과제는, 단순하게도 “교육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며 그것은 바로 ‘교육과정 리더십’을 확립하자는 것이었다. “학교교육을 교육과정 중심으로 정렬시켜 본령에 충실하게 하고, 학교에서 생성되는 자료가 가장 중요한 정보가 되게 하는 학교교육 정상화를 도모하는 길 이외에는 교육경쟁력을 확립하는 일이나 사교육 부담을 줄이는 대안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의 ‘교육공동체 대토론회’는 그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전혀 각광을 받지 못하고 이른바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고 말았다. 우리 교육은 이처럼 기본에 취약하다. 기본에 약한 행정은 언젠가 그 빚을 한꺼번에 갚아야 한다.
오죽하면, 우리나라를 자주 찾아오는 앨빈 토플러가 지난해에는 “풀빵 찍듯 하는 학교, 경제를 망친다”고 하더니 올해에 또 와서는 “밤 11시까지 공부하는 교육으론 미래 없다” “한국은 현 교육제도를 잘라내버려야 한다(Chop off your education system)"고 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는 늘 그렇게 얘기하는 미친 학자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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