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진로지도가 무색한 대학입시
대학입학 전형 경향을 보면 우리 교육에서 추구하는 인간상이 어떤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고력, 창의력 같은 수준 높은 능력들이 현실적으로 초․중등교육에서 강조돼야 하는가? 개성․적성에 따른 진로지도는 필요한 교육일까?
공연한 우려라면, 미국의 주요 대학으로 유학한 우리나라 학생들은 다른 나라 유학생들과 달리 왜 겨우 54% 정도만 졸업하게 되는가? 문제풀이에만 익숙해서 그 대학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중도탈락하고 만다는 분석이 부끄럽지 않은가?
전국 200개 4년제 대학의 2009학년도 신입생 정시모집 원서접수가 시작되었다. 모집인원은 16만4천 명이지만 사실은 수십만 명이 대학별 입학전형요강을 살피고 있다.
이 대학 저 대학, 입학원서를 접수시켜보지 않고는 그 고뇌를 짐작할 수 없는 갈림길에서 그들은 초조하고 불안한 시간을 보낸다.
2009학년도 대입전형의 특징은 수능비중 확대, 학생부 실질 반영률 축소, 주요 대학 논술 폐지 등이다. 더 요약하면 수능성적 반영비율이 크게 높아졌다.
실제로 수능성적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대학이 지난해엔 11개 대학이었지만 올해는 무려 71개 대학으로 대폭 늘었다. 신문들은 기다렸다는 듯 대서특필했다.「71개大 수능만으로 뽑는다」「71개大 수능 100% 반영」「확 크진 수능 비중, 1점도 변별력」
올해 수능성적 반영비율을 높인 대학들까지 감안하면 수능의 위력은 그야말로 막강하다. 더구나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2010학년도 대학입학전형 발표에 의하면 80개 대학이 정시모집에서 수능성적만으로 선발할 예정이고 수능 50% 이상 반영 대학도 126곳으로 늘어나게 된다.
대교협은 수시모집을 위한 입학사정관제를 들어 학과성적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방면에서 우수한 인재도 뽑겠다는 대학들의 의도가 반영됐다고 강조했다. 덩달아 언론은 ‘수시는 논술’ ‘정시는 수능’으로 그 경향을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수능의 경우 단 1점이 모든 것을 결정하며, 논술의 경우 올해는 서울대, 서울교대 등 13곳에서만 실시하여 작년보다 그 비중이 줄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없다.
대학들은 표준점수․백분위점수 공개로 수능의 변별력이 커지면 그 성적을 적극적으로 반영할 것은 당연하다. 또한 이처럼 대학입학전형이 수능성적 중심으로 굳어지면 ‘수능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는 아니라는 격려’는 오히려 무책임한 일이 된다. 또 어릴 때부터 개성과 적성에 맞춰 진로지도를 해야 한다는 이론은 거의 소용없는 공염불이 된다.
그렇지 않은가. 신문들은 입시학원들이 예측한 대학별 합격선이라며 어느 대학 의과대학이나 경영, 한의예, 자유전공을 선택하려면 수능성적이 몇 점 이상이어야 하고, 어느 대학 미디어영상, 언론정보, 과학교육, 영어교육, 간호학과는 몇 점짜리가 지원하라는, 너무나 미안하고 속상한 기사를 버젓이 싣고 있다.
“얘야, 간호학을 공부하려면 수능성적이 낮아도 된단다.” 교사들이 그렇게 가르쳐도 좋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도대체 어떤 논리로 교사들에게 진로지도를 요청할 수 있는가.
다만 사교육비와 학생들의 부담이 문제라면 지금까지의 온갖 정책,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사교육비가 왜 끝없이 증가하는지, 학생들의 공부시간은 왜 다른 나라보다 턱없이 많은지 그것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교육의 본질추구에 바탕을 둔 방향이 아니라면 올바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은 당연하고 분명하다. 그러므로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워도 “이제는 성적중심 학생선발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들어야 한다. 교육정책 입안자들은 우리 교육의 비전부터 설정하고, 그 비전에 맞는 정책, 그 정책에 맞는 변화를 관리해야 한다. 그것은 지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꼭 실현돼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평준화교육의 당위성을 설명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수월성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식이라면 그건 교육적 논리가 아니다. 사고력, 창의력 같은 고급의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는 것은 바꿀 수 없는 논리이기 때문에 이 논리로 학생을 선발해야 앞서가는 인재가 나오고 우리나라가 앞서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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