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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한자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20080120)

by 답설재 2009. 1. 20.

 

 

 

한자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자교육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또 제기되었다. 1998년 국한문(國漢文) 혼용과 한자교육의 부활을 실현하기 위한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가 결성된 이후 한글학회와 대립각을 세우며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주장이다.

 

  한자는 ‘한글전용원칙’에 따라 1970년부터 교과서에서 사라졌다. 그러다가 1975년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만 다시 등장했지만, 그것은 한자 혼용이 아니라 괄호 안에 넣는 병용이었다. 초등학교에서는 정규교과시간에는 가르치지 않고 있는 그 한자교육을 다시 시작하자며 대한민국 역대 국무총리의 서명을 받은 한자교육 촉구 건의서가 청와대에 제출된 것이다.

 

  사단법인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의 이 문서는 ‘대통령께 드리는 역대 전 국무총리의 초등학교 정규 교육과정에서 한자교육을 촉구하는 건의서’라고 한다. 21명의 생존 인물 중 한 명은 서명하지 않았지만, 와병중인 그는 이 단체의 고문이므로 사실상 전직 총리 모두가 이념이나 정치적 입장과 무관하게 한자교육 문제에 대한 이해와 의지를 같이한 셈이다.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는 이 건의서에서 “반세기 동안 ‘한글전용’의 잘못된 문자정책으로 인해 오늘날 우리의 문화생활은 IMF 경제위기보다도 더욱 위급한 문화위기에 처해 있다”고 하고,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정규 교육과정에서 한자를 단계별로 학습시키되, 외국어가 아니라 국어생활의 정상화를 위해 한글과 더불어 국자(國字․나라 글자)로서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한자교육을 주장하는 측의 설명이나 주장을 들어보면 그 효용성은 무궁무진하고, 한자교육을 하지 않은데 따른 부작용이나 병폐는 심각하다. 즉, 초등학교 국어책이나 한글학회 ‘큰 사전’의 어휘 중 반 이상이 한자어(漢字語)고, 의학이나 철학 등의 전문용어는 거의 전부가 한자여서 한자를 모르고선 국어실력의 기본인 어휘력과 학습능력을 높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반세기간 한자교육을 등한시한 결과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반문맹(半文盲)으로 심지어 서울대 학생들도 ‘남북통일’조차 한자로 쓰지 못하는 것은 물론, ‘문화’ ‘학교’ 같은 아주 쉬운 한자도 쓰지 못하며, 전국 도서관의 수많은 책들이 거의 사장(死藏)돼 있다는 것이다.

 

  그 주장을 더 들어보면, ‘글자란 학문이 아니라 도구여서 초등 6년간 단계별로 한자 900자를 가르치면 전혀 부담 없이 배울 수 있는데도 가장 글자를 잘 익힐 수 있는 6~13세 때를 다 놓치고 대학에 가서 한자교육을 받게 하는 것은 다 커서 구구단을 외우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혹은 초․중․고등학교 단계에서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은 한자 말고도 많다. 그러한 민원을 접수하고 있는 교육과학기술부 담당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아마 수십 가지는 될 것이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 자신의 관심 분야가 학교 교육과정으로 다루어지고, 더 비중 높게 다루어지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한 요구들을 해결하는 방법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을 배우게 하거나,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렵다면 현재 배우고 있는 내용 중에서 배우지 않아도 좋을 내용을 삭제하면 된다. 다만, 구체적인 견해를 들어보면 현재 배우고 있는 국어, 도덕, 사회, 수학, 과학, 영어, 체육, 음악, 미술, 실과 등 10개 교과의 어느 것도 덜 중요한 것이 없으며, 주당 2시간 정도의 ‘재량활동’ 시간에 가르쳐야 할 내용은 그야말로 넘쳐나고 있다. 그것은 이미 ‘재량(裁量)’이 아니라 수많은 요구사항을 어떻게 해야 모두 수용할 수 있을지 난처한 시간이 되고 있다.

 

  교육과정의 결정을 의사결정이라는 관점에서 ‘일종의 정치적 과정’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것도 정치구나!’ 한다면 우스운 일이다. 그것은 교육적 논리만을 바탕으로 한 가장 교육적인 의사결정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다음과 같은 말도 끔찍하다. “두뇌형성기야말로 승부를 걸만한 곳이다. 그 기간에 어떤 종류의 공기를 충분히 마시게 해두면 나중에는 걱정이 없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진짜 세뇌공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