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아무도 보는 이 없는『경기신문』「시론」란에 실린 32번 째의 제 원고입니다. "경기신문에 한 달에 두 번씩 제 시론이 실리고 있습니다." 하면 상대방은 금방 들어놓고도『경기신문』이 아니라 "경기일보요?" 합니다. 그가 기억력이 형편없어서 그렇게 되물었을까요? 당연히 아니겠지요. 어쨌든 중앙의 일간지도 많은데, 지방신문을 누가 그리 보겠습니까. 그 메아리 없는 시론을 제가 쓰고 있으니 저도 참 답답하고 한심한 사람이지만, 딱 한 가지 이유, 그래야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게 된다는 것, 그것 때문입니다. 신문사와 필자가 공동으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원고료도 없습니다. 그래서 추석에는 신문사에서 고맙다고 선물세트를 보냈는데, 열어보았더니 치약 몇 개, 비누 몇 개, 샴푸 몇 개였습니다. 치약은 수준이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샴푸는 제가 쓰지도 않으니 모르겠고, 세수비누는 참 한심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요즘 그 비누를 쓰고 있습니다.
방치․유폐된 듯 지내는 비만 어린이들
‘즐겁고 신나는 가을대운동회’ ‘온 마을이 함께하는 지역축제’인 초등학교 운동회 시즌이 지났다. 달리기, 큰공굴리기, 줄당기기, 늘 봐도 정겹고 흥미로운 프로그램에 이어 콩주머니로 바구니를 터뜨리면 이날만큼은 학교 구석구석 아무 곳에나 자리 깔고 김밥과 통닭튀김을 나눠먹어도 흉허물 없는 점심시간, 부채춤, 학부모달리기, 낚시로 상품을 낚는 노인경기, 어느 것 하나 즐겁지 않은 프로그램이 없다.
그러나 즐겁거나 신나지 않은 어린이들이 있다. 비만 어린이들이다. 허약한 어린이가 꼴찌를 하던 옛날과 달리 요즘은 비만 어린이가 저만큼 떨어져 허우적거린다. 당연한 듯 꼴찌를 맡는다. 그조차 고학년 여자 어린이들은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운동회가 신나거나 즐거울 리 없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런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복도에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
의학 저널(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의하면 소아․청소년 비만은 73~79%가 성인비만으로 이어진다. 그 소아․청소년 비만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의하면 1997년에 5.8%였던 어린이 비만율이 2005년에는 9.7%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또 남자 10세는 그 비율이 17.6%, 여자 17세는 14.8%이다. 어느 학교에서는 과체중인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3∼4배는 더 많다. '다이어트'를 여성의 전유물로 여기거나 남성에게는 관대한 경향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소아비만에 대해 식습관이 좋지 않고 운동량이 부족한 것을 주요원인으로 지적한다. 칼로리만 높고 영양소는 적은 패스트푸드(인스턴트식품) 섭취량이 늘고 TV 시청이나 컴퓨터 오락으로 보내는 시간이 많으므로 그럴 수밖에 없다. TV 시청 시간이 하루 1시간일 때의 비만 유병률이 6%인데 비해 4시간이면 13%로 상승한다는 건보공단의 자료는 이런 현상을 잘 설명하고 있다.
동국대 일산병원에 의하면 우리나라 비만 인구는 매년 40만 명씩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식이요법, 규칙적 운동 등 체계적 체중관리가 힘든 저소득층 맞벌이 가정의 여성과 어린이들에게 비만율이 높다. 이러한 특징은 미국 등 선진국 구조를 닮아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비만=부자병’이라는 인식에 따른 사회적 무관심 속에 계속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병원의 2005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보면 월 소득 400만원 이상인 가구의 여성 비만율은 19.9%인데 비해 100만원 이하인 경우 무려 35.4%였다.
비만은 심장병, 당뇨병, 뇌졸중, 고혈압, 고지혈증 같은 성인병의 원인이 되고 수면무호흡증, 담석증, 우울증, 척추장애는 물론 대장암, 유방암 등 암 발생 위험도도 높다는 것은 상식이다. 오죽하면 지난 2006년 영국은 처음으로 피트니스 장관(Minister for Fitness)을 임명하고, 그 자리에 앉은 캐럴린 플린트는 "2012년 런던 올림픽 이전까지 전 국민의 군살을 빼고 체력을 기르는 캠페인을 전개하겠다"고 선언했을까. 그는 당장 생활습관을 바꿔 질병을 예방하자는 운동(Small Change Big Difference Initiative)을 펼쳤고, 총리는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이용하기, 야채와 과일 많이 먹기 등을 강조했다.
학교에서는 비만 어린이들이 정서적 불안을 느끼고, 자발성․적극성이 부족하게 되며, 열등감을 느끼거나 내향성으로 변하기 쉽다는 점도 걱정스럽고 부담스럽다. ‘몸짱’ ‘얼짱’이라는 용어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요즘에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모두 자존심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를 성적도 아니고 사회적 수용도나 품행, 운동기능도 아닌 신체외모로 꼽더라는 조사결과도 있었다.
체육시간 확대, 학교급식 관리 등 당장 실현하기 어렵거나 이미 실천되고 있는 방안들을 상투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비만 예방․치료를 위한 검사, 비만아 관리 특별 프로그램, 비만아 지도를 위한 학생․학부모 식습관 및 생활지도 프로그램, 비만 관리 홍보 프로그램 개발․보급 등 실천적이고 실효성 있는 신선한 시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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