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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과정·교과서

「교육부 편수 팀을 교체하라」는 칼럼

by 답설재 2008. 8. 29.

지난 8월 19일 C일보에는「교육부 편수 팀을 교체하라」는 칼럼이 실렸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C일보를 보아왔습니다. 이 반론은 C일보에 대한 비판은 아니며, 단지 그 칼럼 내용이 못마땅했다는 뜻입니다. 인용해보겠습니다.

 

“대한민국 편에서 바라볼 때 ‘건국=분단고착의 계기’라고 보는 젊은이들은 잘못된 역사교육에 반쯤 최면당해 있는 상태다. 반면에 ‘노노데모’ 학생들은 거기서 스스로 체험을 통해 깨어난 상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편 기성세대가 할 일은 자명하다. 일부 젊은이들의 ‘자학사관’을 해독시킬 ‘긍지(矜持)의 사관’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반(反), 비(非)대한민국 역사교과서를 대체할 친(親)대한민국 검인정교과서를 널리 보급해야 한다.”

 

나는 이러한 관점에 대해서는 논의를 할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교육인적자원부 교육과정정책과장을 역임하면서 ‘그런’ 교과서로 인해 국회 상임위원회(교육위원회)에 여러 번 보고도 했고, 수많은 보고서도 썼고, 허구한 날 퇴근도 못하고 시달린 경험이 있어서 -휴일에 모처럼 아내와 함께 시장엘 가도 언론기관으로부터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그렇게 쉬운 '보조역할'조차 제대로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제는 가령『한국근현대사』교과서만 쳐다봐도 절로 겁이 슬슬 날 지경입니다. 다만, 예의 칼럼에서 다음 부분을 읽고 이 블로그에라도 사실을 밝혀놓아야 이 암담한 심정을 가라앉힐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그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위에서 인용한 부분의 다음 부분이기도 하고 그 칼럼의 마지막 부분이기도 합니다. 위의 인용에 연결하여 읽어보십시오.

 

"이를 위해선 지금의 교육부 교과서 편수 담당 팀을 대폭 갈아치워야 한다. 지금의 팀은 노무현 시대의 팀 그대로다. 이들을 놔두고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교육평가원으로 하여금 새 검인정 교과서의 올바른 지침을 만들도록 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그들이 ‘좋은 지침’을 만들어 ‘좋은 집필자’들이 ‘좋은 교과서’를 출판해 ‘좋은 편수팀’이 ‘검인정’을 해주어야 한다. 여기엔 적어도 2년이 필요하다. 이래서 이명박 정부는 내년의 ‘제8차 교육과정’ 결정을 뒤로 미루어야 한다. 그 동안은 현행 교과서를 교정해서 쓰게 해야 한다.

대한민국 진영은 ‘방송 탈환’ 투쟁에 이어 ‘교과서 탈환’ 투쟁으로 돌입해야 한다. ‘촛불’에 겁먹은 이명박 정부가 ‘역사 탈환’을 결행할 수밖에 없게끔.”

 

○ 우선, “지금의 교육부 교과서 편수 담당 팀을 대폭 갈아치워야 한다.”고 했지만, 누구를 내보내야 하는지 전문직 내보내는데 이골이 난 교육과학기술부 인사 관계관이라 하더라도 당혹스러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교육과학기술부 홈페이지 실국 안내를 보면 알 수 있지만, 편수 팀이라고 할 만한 조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 업무로 봐서 ‘학교정책국’의 ‘교육과정기획과’와 ‘교과서선진화팀’을 편수 팀으로 봐줍시다. ‘교육과정기획과’에는 과장(장학관) 외에 장학관 1명, 교육연구관 1명, 교육연구사 5명이 있습니다. 이들은 ‘교육과정 기본정책수립’ ‘수준별 이동수업’ 같은 정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굳이 관련되는 직원을 찾는다면 ‘역사왜곡대책’을 맡은 교육연구사 한 명이 발견되는데, 이 직원을 ‘역사 교과서 편수 팀’으로 부른다면 그건 ‘마녀사냥’처럼 궁색하고 가혹한 처사가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교과서선진화팀’에는 일반직 과장아래에 연구관 1명, 연구사 3명이 있지만 이들도 교과담당자들이 아니고 ‘교과용도서 개발계획’ ‘교과용도서 제도개선’ 같은 업무를 맡고 있는 인력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일본 문부과학성에는 ‘교육과정과’와 ‘교과서과’에 108명의 직원이 있답니다. 칼럼을 쓴 분은 혹 우리도 적어도 일본 정도의 시스템은 갖추고 있을 것으로 착각했거나, 편수직원이 60명은 되던 1990년대 중반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위에서 봤지만 우리는 지금 겨우 12명의 전문직이 배치되어 있으므로 “지금의 교육부 교과서 편수 담당 팀을 대폭 갈아치워야 한다”는 말은 참 공허한 주장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 다음으로, “지금의 팀은 노무현 시대의 팀 그대로다. 이들을 놔두고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입니다. 혹이나 싶어서 개인적인 견해라고 해두고 얘기하겠습니다.

 

정부 관료는 영혼이 없다는 말도 들어보았지만 제 경험으로는 그렇습니다. 어떻게 교육과학기술부 교육연구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정도가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이전 정권에 맞추어 감히 새로운 정책이나 시책을 거스를 수가 있을까 싶습니다. 그들은 학교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사람들입니다. 정치적, 종교적, 지역적 특성을, 적어도 내 견해로는 과감하게 반영할 만한 ‘주제들’이 아니라고 봅니다. 더구나 요즘 세상에 어떤 필자가 단 한 줄이라도 교과서의 원고를 교육과학기술부 관료의 말을 듣고 집필하겠습니까! 그러나 혹이나 싶어서 저의 개인적인 견해라고 해두었습니다.

 

○ 이번에는 “교육평가원으로 하여금 새 검인정 교과서의 올바른 지침을 만들도록 하는 것도 필수적”이라는 주장입니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교육과정 개정에 맞추어 ‘교과서 편찬방향’과 ‘편찬상의 유의점’, ‘각 교과별 편찬상의 유의점’ 및 ‘검정기준’을 마련하여 발표합니다. 이러한 유의점과 기준은 당연히 정부가 만들어야 합니다. 민간기관에서 이 유의점과 기준을 마련하는 나라는 이 세상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칼럼을 쓰신 분은 이러한 지침을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만들 것이 아니라 교육평가원(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이 아니고, 종전의 지침대로 교과서를 검정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이 그렇게 표현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그러므로 그 다음의 내용, 즉 “그들이 ‘좋은 지침’을 만들어 ‘좋은 집필자’들이 ‘좋은 교과서’를 출판해 ‘좋은 편수팀’이 ‘검인정’을 해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앞뒤가 맞지를 않습니다.

 

그들(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좋은 지침을 만들면 좋은 집필자들이 좋은 교과서를 출판하고 교육과학기술부의 ‘대폭 교체될’ ‘좋은 편수 팀’이 검정을 해준다는 뜻인데,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좋은 지침’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만들어야 하고, ‘검인정’(‘검인정’이라 하면 ‘검정’과 ‘인정’을 합친 말이므로 ‘검정’이라고만 해야 함)은 이른바 ‘편수 팀’이 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권한의 위임 및 위탁에 관한 규정’(일부개정 2008.7.3 대통령령 제20897호) 제44조 (교육인적자원부소관 <개정 2001.1.29>) 제4항 제3호에 따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주장은 본의 아니게 사실을 왜곡함으로써 주장하는 바가 명쾌하지 않다고 해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 다음은 “여기엔 적어도 2년이 필요하다. 이래서 이명박 정부는 내년의 ‘제8차 교육과정’ 결정을 뒤로 미루어야 한다. 그 동안은 현행 교과서를 교정해서 쓰게 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2년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논의에서 제외하겠습니다. 교육과정 기준을 개정하고 교과서 편찬상의 유의점 및 검정기준을 마련하는 데는 그 이상의 기간이 소요될 수도 있고, 서두르면 그 기간에 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칼럼을 쓰신 분은 자연스럽게 ‘내년의 제8차 교육과정 결정’이라고 했는데 그건 아시다시피 ‘제8차 교육과정’이 아니고 ‘제7차 교육과정’을 수정․보완한 ‘2007년 개정 교육과정’이라고 부릅니다. 또 ‘2007년 개정 교육과정’은 이미 2007년 2월 28일에 고시(告示)되었으므로 ‘결정된’ 교육과정입니다. 다만, 2009년 3월에 초등학교 1, 2학년을 시작으로 연차적으로 적용될 예정입니다.

끝으로 “그 동안은 현행 교과서를 교정해서 쓰게 해야 한다”고 했는데, 현행 교과서를 교정해서 써도 만족할 수 있다면 굳이 새 교과서를 편찬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덧붙이면 국정교과서는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직권으로 ‘교정’(수정)할 수 있고, 검정교과서는 대체로 편찬기관의 수정의견을 받아 수정하며 특별한 경우에만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수정지시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재 교육과학기술부에는 교과목별 담당 편수관이 없기 때문에 그러한 수정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과장이고 뭐고 모두 달라붙어 추리소설 읽듯 건성으로 검토한다 해도 약 2300종의 교과용도서를 무슨 수로 다 읽겠습니까.

‘편수’에 관한 한 세상에 이런 나라가 있겠습니까.

 

<사족> 그 칼럼을 읽고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생각도 했습니다.

 

○ 우선, 우리나라 굴지의 신문, 그것도 유명 칼럼니스트(columnist)가「교육부 편수 팀을 교체하라」고 했으니, 사람들이 “그래? 그렇다면 당장 교체해버리지 뭐하고 있어!” 하며 사실을 알아보고는 “뭐, 교체할 편수 팀이라는 게 있지도 않잖아?” 할 테니까 한때 그 업무를 목숨으로 (‘목숨처럼’) 알고 지낸 사람으로서는 ‘그 참 잘 됐다. 국민들이 현실을 제대로 알기라도 하면 그건 오히려 잘 된 일이다.’ 싶었습니다.

 

내가 처음 ‘교육부’ ‘편수국’ 교육연구사로 들어갈 때만 해도 60명이던 직원이 정부조직개편 때마다 차츰차츰, 야금야금 줄어들어 이제 겨우 12명이 남았으니(그동안 교육부 전체 직원은 줄었답니까, 오히려 늘었답니까?) 다음 번 조직개편 때는 그 12명을 또 없애버리면 되겠지만 또 그 다음 조직개편 때는 어떻게 할는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 다음으로, 그처럼 사실과 다른 표현이 이어진 글이 버젓한 칼럼으로 실리고 있으니 하루하루의 신문기사 중에는 오류가 얼마나 많을까, 그런 기사 때문에 직접적인 피해를 보거나 잘못된 지식을 갖게 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혹 “신문기사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는데 그 칼럼의 마지막 부분에는 사실과 다른 오류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