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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과정·교과서

독도(2) - 교과서와 독도

by 답설재 2008. 7. 18.

독도에 관한 시론(2008.7.17.경기신문)을 쓰면서 12년 전, 교육부 편수국(교육과정, 교과서, 한국역사왜곡문제 등에 관한 업무를 하던 기구)에 근무하면서 독도에 관한 글을 쓴 기억이 새로워서 그 글을 찾아보았습니다. 요즘은 한국교과서연구재단에서 발행하고 있지만, 그때는 사단법인 한국2종교과서협회에서 발행하던『교과서연구』라는 저널 제25호(1996.7.25.)에 실은 글입니다. 좀 고치고 싶은 부분이 있지만 그때의 정서나 제 수준이 그와 같았으므로 그대로 소개합니다.

 

 

교과서와 독도

 

 

 

□ 1996년 2월

 

1996년 2월에 들어,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이케다 일본 외상의 망언에 따라 한국과 일본 간에 극한 감정 대립 양상으로까지 치달았던 독도 영유권 문제가 요즘에는 또 조용해졌다.

그때는 온 신문에 꼭 독도 문제 관련 기사가 실렸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을 비롯한 여러 기관, 단체에서 독도가 역사적으로나 법적으로 우리의 영토임을 재확인하고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배경도 검토하여 우리의 대응 자세를 진지하게 토론하는 학술적 모임도 자주 개최되었다. 또 대학생, 노인 단체 등등 각계각층이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도 줄을 이었다.

그 후로 일본 정부가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발표를 한 것이 아니므로, 시위대는 그렇다 치더라도 전문 학자들은 이 문제를 계속 연구하고 있는지, 그들도 시위성(示威性) 학술회의를 한 것인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이 글에서는 독도에 관한 이와 같은 우리 국민들의 애정이 우리가 만든 교과서에 미친 영향을 소개하고, 교과서를 그 무엇보다 소중히 다루고 있는 영예로운 한 사람으로서의 소견을 덧붙이고자 하였다.

 

□ ‘초등 교과서에 독도 내용 늘린다’고 한 기사들

 

독도 문제가 한참 언론의 각광을 받고 있던 지난 2월 17일, 서울에서 발행되는 웬만한 신문에는 초등학교 4학년 2학기『사회과 탐구』실험용 교과서에 실린 독도에 관한 기사가 일제히 게재되었다. 그 제목만 살펴보면, ‘가요「독도는 우리 땅」초등 교과서에 수록’(C일보), ‘초등교 교과서에 독도 내용 늘린다’(D일보), ‘「독도는 우리 땅」가사 초등 교과서에 수록’(J일보), ‘「독도는 우리 땅」교과서에 실린다-초등 4학년 지리 등 다뤄…금지곡설 한때 긴장’(H신문), ‘가요「독도는 우리 땅」교과서에 싣는다…초등학생 영유권 인식 높이게’(K신문), ‘초등 교과서 독도 내용 확대-3쪽 걸쳐 사진과 함께 소개, 「우리 땅」노랫말도 모두 실어’(S신문) 등이다.

이런 경우 신문 기사를 쓰는 입장에서는 독도에 관한 내용은 교과서에 실릴 만한 것도 아닌데, 일본 외상이 망언을 했으므로 우리 국민의 감정을 감안하여 대대적으로 싣게 되었다고 하면 더욱 좋아했을 것이다. 그것은, 이 실험용 교과서가 나온 것이 1995년 9월 1일자였는데, 반년이 지나 독도 문제가 관심의 초점이 되자 일제히 이를 보도한 것이 잘 말해 주고 있다.

교과서가 이런 관점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교과서는, 특히 초등학교 교과서는 마음 내키는 대로 바꾸고 고쳐서는 안 되는 믿음직한 것이어야 한다. 여러 교과서 중 교과의 성격에서부터 시사성을 중시하여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사회사상(社會事象)을 적절히 반영해야 하는 - 그러므로 그만큼 신중해야 하는 - 사회과 교과서야말로 그만큼 확실한 것을 실어야 한다.

 

□ 실험본 게재 가요「독도는 우리 땅」의 전말

 

 

독도는 우리 땅 / 박인호 작사․작곡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이백리,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독도는 우리 땅.
경상북도 울릉군 도동 산 63, 동경 132 북위 37,평균기온 12도, 강수량은 1300,독도는 우리 땅.
오징어, 꼴뚜기, 대구, 명태, 거북이, 연어알, 물새알,해녀 대합실, 17만 평방미터, 우물 하나, 분화구독도는 우리 땅.
지증왕 13년 섬나라 우산국,세종실록 지리지 50페이지 셋째 줄,하와이는 미국 땅, 대마도는 일본 땅,독도는 우리 땅.
노일 전쟁 직후에 임자 없는 땅이라고억지로 우기면 정말 곤란해.신라 장군 이사부 지하에서 웃는다.독도는 우리 땅.

 

리듬과 가락이 단조로우면서도 흥겹고 신나고 당당한 이 노래의 가사를, 우리는 4학년 2학기『사회과 탐구』실험용 교과서에 천연색 독도 사진을 바탕으로 아름답게 구며 실어 놓고 좋은 반응이 있기를 기다렸다.

 

초등학교 4학년이면 겨우 열 살짜리인데, 이 노래의 가사를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의식을 철두철미하게 심어 놓겠다는 의도로 실었다면, 그건 교육을 너무나 간단하게 보는 것이거나 각박한 생각일 수도 있다. 교육은 훈련과 다른 것이며, 머릿속이 아니라 가슴속에 넣어주자면, 그냥 신나게 불러보게 하고, 세종실록 지리지의 어디에 실렸는지, 대마도는 어느 나라 땅인지, 러일전쟁 직후에 일본이 어떻게 했는지는 중학교(교육부,1996,중학교『국사』하권,115~116쪽), 고등학교(교육부,1996,고등학교『국사』하권,23쪽), 대학교에 가서 따져보아도 좋을 것이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면, 치밀하게, 침착하게, 끈질기게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저들 앞에 “아니다, 한국 땅이다!”란 고함 소리나 시위 몇 번만으로 맞설 수는 없는 일이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은, 우산국이 신라에 복속되었다는 내용을 기록한 512년의『삼국사기』를 비롯하여『세종실록』권 153「지리지」의 10~11쪽 강원도 울진현조 중 관계 기사,『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동국지도』(영조 때 정상기),『해좌전도』(1822년),『조선전도』(1846년 김대건)를 보면 확실하고, 일본 문헌 중에서도 독도(松島)와 울릉도(竹島)를 고려 영토로 기록한 일본 최초(1667년)의 독도 관련 문헌『隱州視聽合記』와 하야시 시헤이(林子平)의『三國接壤圖』(1785년), 외무성의『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1870년), 육군성 참모국의『조선전도』(1875년), 해군성 수로국의『조선동해안도』(1876년) 등을 보아도 충분하게 고증되고 있다.

 

다만, 일본이 독도를 그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러일전쟁 당시(1905년) 이 섬을 ‘無主地’라고 하며 마음대로 그들의 땅으로 편입하고, 러시아 군함의 감시를 위한 망루를 설치한 데 연유하고 있을 뿐이다. 그 후 저들은 발 빠르게 독도를 그들의 영토 속에 넣어 그린 지도들을 세계 여러 나라, 여러 기관에 뿌리는 등 집요한 노력을 다해왔기 때문에 오늘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실제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지도에는 흔히 독도가 일본 땅으로 표시되고 있다(이런 관점에서 우리나라 건설교통부와 각 언론사에서는 줄기차게 ‘황해’를 ‘서해’라 하고 ‘서해안’ ‘서해안고속도로’라 하여 교육부나 국립지리원의 견해와 다르게 표기하고 있는 것은 심각하게 재고되어야 한다. 또, 일본이 ‘대한해협’을 근래에 이르러 ‘쓰시마해협’으로 바꾸고 대마도를 경계로 우리나라 쪽 바다를 ‘서수도(조선해협)’, 일본 쪽 바다를 ‘동수도’로 표시하고 있는 것도 독도 문제에 버금가는 문제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한때 골목골목에서 신나게 부르던 이 노래를 지난 시절에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제대로 부르지도 못한 때도 있었고(그 이유는 중앙일보 1996.2.14.46쪽 및 조선일보 1996.2.17.29쪽, 한겨레신문 1996.2.17. 17쪽 등을 보면 알 수 있음), 이제 가사 내용에 ‘흠집’이 있어 또 마음 놓고 부르지 못하게 되었다. 그 흠집은 지리적, 역사적 사실을 고증하는 데 밝은 학자들이 밝혀내어 “세종실록 지리지 50페이지 셋째 줄이 아니다. 이걸 봐라.”, “대마도는 일본 땅이라니, 그 섬도 알고 보면 우리 땅이다.”…와 같이 여러 경로를 통하여 알려 주었고, 신문에 교과서 게재 관련 기사가 난 그즈음에는 방방곡곡, 산골짜기의 한학자(漢學者)까지 열성을 보여 하루에 몇 번씩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해명을 하는 데 진력하였다. 어째서 이 노래가 유행할 때는 가만히 있었고, 가사를 바로잡도록 하지 않았고, 대마도도 우리 땅인데 왜 참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우리가 가요「독도는 우리 땅」을 1996년 9월 1일에 발행될 정본 교과서에 싣지 못하게 된 또 하나의 요인은 작사․작곡자에게도 있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밝힐 필요가 없겠지만, 그것은 그분의 본명 및 저작권료에 관한 요구였다.

 

이러한 상황에 따라 우리는 결국「독도는 우리 땅」대신「독도 의용 수비대」이야기를 싣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것으로, 1995년 1월『월간 조선』부록『한국인의 성적표』(단행본)에도 자세히 소개되었다. 우리 경찰과 해군은, 40여 년 전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수많은 악조건 속에서도 독도를 지킨 의용 수비대언들의 그 정신을 기려 오늘도 독도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우리 아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는 예화일 것으로 확신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독도는 우리 땅」, 그 노래를 잊을 수 없으며, 그 노래를 교과서에 싣고자 한 우리의 의도에 공감을 표시한 한국일보 1996.2.22일의 칼럼(메아리)「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를 써주신 분에게는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