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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과정·교과서

이른바 ‘학교행사교육’

by 답설재 2008. 6. 24.

 

 

 

  최근에 영종도에 있는 인천교육연수원에 다녀왔습니다. 연수원 교학부에는 어떻게 그렇게 좋은 분들만 계시는가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한결같이 친절하고 밝고 적극적인 분들로 보여서 갈 때마다 그 연수원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지나가다 들여다보면 그 옆방에서 교학부장의 모습도 볼 수 있는데 그분 역시 적극적이고 친절한 분입니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뭐하겠다고 아첨까지 하며 살겠습니까. ‘정말 그런가?’ 싶은 분은 가보시면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들을 보면서『이갈리아의 딸들』이란 소설을 떠올린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영어로는 남성을 ‘맨(man)’, 여성을 ‘우먼(woman)’이라고 하지만, 그 가상소설에서는 여성이 세상을 지배하여 여성을 ‘움(wom)’, 남성을 ‘맨움(manwom)’이라 부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왜 그 소설을 떠올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저는 「교육정책의 변화와 우리의 대응방안」이란, 감당하기에 벅차고 거창한 제목으로 강의를 했는데, 그것은 그 연수원 측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 원고 중에는 「이른바 ‘학교행사교육’」이란 부분이 있어서 그 부분만 떼어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워낙 거친 원고여서 일부 윤문을 해보았지만 그래도 한 차례도 다듬지 않은 원고 같아서 싣기가 망설여졌으나 ‘새 원고가 실렸는가?’ 하고 방문하실 독자들을 생각하며 성급하게 탑재합니다.

 

 

 

이른바 ‘학교행사교육’

 

 

 

  우리 교육의 문제점은, 우선 만약 교과서가 없어진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듯한 교과서 내용 전달 중심의 지식주입식 교실, “학교행사가 많아서 공부에 지장이 많다”고 비난하면서도 아무도 그 폐단을 고치려는 시도(試圖)를 하지 않는 데서 찾을 수도 있다.

 

  ‘학교행사’는 각 학교별로 전통적으로 실시해오는 것과 교육청의 요청(혹은 지시)에 의해 실시되는 것으로 나누어볼 수 있고, ‘교육과정 기준’ 혹은 ‘학교교육과정’에 연계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어볼 수도 있다.

  흔히 교과서의 내용을 전달하는 교육에 대해서는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지만, ‘학교행사’에 대해서는 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면 큰 지장이 없으나 너무 많으면 교육과정 운영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 혹은 귀찮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또 각 행사별로 지난해의 계획을 보고 특별한 오류가 없으면 그대로 답습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해서 결재를 받아 시행하게 된다. 이러한 행사교육이라면 ‘학교자율화’는 아무런 의미를 지닐 수 없다.

 

  우리는 ‘학교행사’라는 용어의 사용부터 재고해야 한다. 그것은 학교마다 ‘연간학사일정’에 포함시키고 있는 그 ‘학교행사(行事)’의 대부분이 실제로는 범교과적(凡敎科的)인 교육활동이기 때문이다(그래서 필자는 우선 ‘주요교육활동’이라고 부르면서 더 적절한 용어를 찾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특별활동’의 ‘행사활동’에 대해서도 별도의 심층적인 논의가 필요하고, 교과서에 의존하여 전개되는 우리 교육의 현실적인 문제점을 감안한다면 차라리 각 교과․영역별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학교행사’의 비중을 높여야 할 것이라는 논의도 필요하다.

 

  학교행사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혹은 학교행사교육의 수준을 높이려면 각 학교가 절대적인 권한과 책임을 가지는 ‘학교교육과정’에 학교행사활동을 합리적으로 편성해 넣어야 할 것이라는 데 착안할 수 있다. 가령, ‘전교어린이회 임원선거’라면 학사일정에는 분명하게 나타내면서 교육과정진도표에 그 활동에 대한 계획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비합리적이다. 또 어린이회 활동은 자치활동이므로 어린이회 임원선거에 투입되는 시간(가령 3시간)을 모두 특별활동 시간으로 편성하는 것도 비합리적이다.

  이렇게 할 수도 있다. 즉 1교시에는 대체로 입후보자들의 마지막 연설을 듣게 되므로 각 교실에서는 그 연설을 듣는 요령을 지도한 뒤 개인별로 ‘입후보자 연설 평가표’를 만들어 그 연설들을 들으며 점수를 기록하게 하고, 그 기록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후보에게 투표하게 하는 ‘국어과 듣기 시간’을 편성할 수 있다. 대체로 교사가 읽어주는 글을 듣고 그 내용을 암기하는 활동에 치중하는 듣기에 비해 실제적인 듣기 공부가 이루어질 것이 틀림없다.

  ‘듣기’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우리는 예를 들어 ‘영어말하기대회’나 ‘학예발표회’, ‘음악발표회’ 같은 행사 때 청중석의 아이들에게 아무런 활동을 시키지 않고 그냥 조용히 앉아서 박수나 하라는 ‘따분한’ 교육을 하고 있다. 그러한 장면이 바로 엘리트 중심, 선발 중심, 교사 중심 혹은 공급자 중심 교육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간단한 양식의 메모지에 감명 깊은 발표, 내가 제일 좋아한 발표, 내가 제일 잘 들은 발표를 적어내게 하고 경품을 주는 기회를 가진다면 아이들은 보다 흥미롭게 듣고 보고 감상하며 그 시간에 ‘듣기공부’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엘리트’를 선망하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시 ‘어린이회 임원선거’ 이야기로 돌아가서 투․개표에 두 시간 동안 참여하는 학년이라면 그 시간에 이루어지는 활동의 성격을 분석하여 그 두 시간을 ‘사회’나 ‘특별활동’에 편성해 넣을 수 있다. 아이들은 그러한 활동에서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생생하고 실제적인 공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학교는 일반적으로 학교행사에 대해서 교육청의 요청․지시사항에 매우 단편적으로 대응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가령 항공과학, 로봇과학, 전자과학, 기계과학, 로켓과학 등 교육청에서 과학교육시책에 적합한 종목을 구상해서 ‘과학의 달’ 행사 종목을 제시(예시)하면 각 학교에서는 그러한 종목의 적합성(학년별 적합성)을 따지지 않고 당연한 듯 획일적으로 그 종목의 행사를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과학의 달’ 행사를 실시하면 일부 학생만 참여할 수 있게 되거나, 흔히 가정학습과제로 돌려 때로는 학부모의 과제가 되고, 고학년만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비정상적인 행사에 그치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과학도서 읽기, 식물의 생김새 그리기, 개미의 모습 자세히 그리기, 과학적인 생각의 글쓰기, 만화그리기 같은, 저학년도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고, 누구나 쉽고 흥미롭게 할 수 있고, 각자 수준에 맞는 종목을 선택할 수 있고, 특별한 준비 없이도 참여할 수 있는 종목들을 추가해서 전교생이 참여할 수 있는 그야말로 ‘과학축제’(체육과에서 나온 ‘운동회’를 생각해보아도 좋을 것이다.)를 전개할 수 있는데도 무미건조해지기 쉬운 그 행사를 의심 없이 반복하고 있다.

 

  교육청의 요청․지시사항에 대해서는 다른 예를 들 수도 있다. 가령 학교폭력(혹은 성폭력)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작품을 공모하는 행사를 실시하고 우수작을 제출하라는 연락을 받으면 어느 학년을 ‘동원’하거나 차례로 한 반씩 배정하여 비교육적인 행사를 실시하기도 한다.

  그런 학교에서는 학교교육과정이 그런 행사를 포괄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성격의 주제를 모으고 통합하여 어느 학년이나 모두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여러 가지 주제를 제시하여 각자 관심 있는 분야를 선택할 수 있게 하고, 글짓기뿐만 아니라 만화그리기, 포스터그리기, 표어만들기 등 여러 가지 형태의 작품을 제출할 수 있게 한다면 아이들이 즐겁고 유익하게 참여할 수 있는 하나의 문예행사가 될 수 있고, 교육청의 요구가 빈번하다는 불평을 할 필요가 없게 된다.

  시책에 의한 행사들이 교사들의 불평과 비난을 불러일으킨다면, 그리하여 학생들이 ‘동원’되는 행사가 된다면, 그러한 교육활동은 절대로 교육적, 효과적일 수 없다는 판단을 해야 한다. 잘 된 작품을 뽑아 교육청이나 소방서에 제출하기 위한 불조심 포스터그리기는 아이들이 집에 가져가 부엌에 붙이기 위한 실제적인 불조심 포스터그리기로 바꾸어야 한다.

 

  행사활동의 편성과 운영을 살펴보았으므로 이제 평가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필자는 이른바 ‘학교행사’에 대한 문제점은 그러한 교육활동을 평가하는 우리의 관점이 바르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흔히 학교교육과정 편성․운영의 결과평가는 학기말이나 학년도말에 이루어지는 활동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평가가 그렇듯이 평가는 학습활동의 과정(過程)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교육적이며, 활동이 일어난 즉시 이루어지는 것이 효과적이다.

  따라서 ‘전교어린이회 임원선거’가 이루어졌다면 당선자 명단만을 결재하고 임명장을 주면 그만이라고 보는 관점을 바꾸어 그 교육활동의 실태와 문제점, 개선방안을 제시하는 보고서 제출로써 차기 선거가 보다 수준 높게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게 하면 필자가 이 글에서 예시한 사례들도 더욱 수준 높은 사례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활동이 ‘학교교육과정’이라는 문서의 개념 속에 포함되어야 한다. ‘학교행사’라고 불리는 범교과 교육이 모두 학교교육과정 속에 편성된다면, ‘교육과정진도표’는 교과서 단원을 소요시간 수에 따라 늘어놓은 단순한 문서가 아니고 학교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한 실제적인 일정표가 될 것이다.

  따라서 교재는 재구성되어야 하고, 학교교육과정 중심의 동학년회의가 이루어져야 하고, 연간교육활동을 구상하고 운영하기 위한 학교교육과정위원회가 구성․운영되어야 하고, 학교교육과정은 일련의 과정에 따라 적합한 절차를 거쳐 편성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절로 확실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