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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과정·교과서

학교자율화 단상 Ⅰ

by 답설재 2008. 6. 11.

 

교육과정 운영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있는 L 장학사에게 분당 이우학교(대안학교)에 가보면 좋겠다고 했더니 당장 다녀왔답니다.

장학사 발령을 받으면 처음에는 교육과정과 생활지도 업무를 맡는 경우가 흔합니다. 아마 전국적인 현상일 것입니다. 그분들은 모임에 나가서 누가 “어떤 업무를 맡았습니까?” 하고 물으면 “교육과정을 맡았습니다.” 하기가 좀 부끄러울지도 모릅니다. 교육과정을 맡았다는 것 자체가 아직 ‘애송이’ 장학사라는 것을 의미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또 교육과정 업무를 맡은 장학사들의 회의를 하게 되었을 때 그 자리는 그야말로 ‘애송이판’이므로 그 장학사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아, 저 사람도 아직 애송이구나’ 할지도 모릅니다.

L 장학사는 ‘애송이’가 아닌데 어떤 이유인지는 잘 모르지만 교육장이 특별히 그 업무를 맡겼답니다. 그는 이우학교를 다녀온 보고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우학교는 농촌 기숙학교형이 대부분인 기존 대안학교에 대한 비판으로 도시학교형으로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학교 부적응아를 중심으로 하지 않고 일반 학생들을 모집하여 전인교육을 추구하는 특성화 중․고등학교이다. 특히, ‘붕어빵 교육’을 실시하는 공교육 대신 차별화된 교육을 바라는 학부모들이 자녀를 보내는 곳으로 교육과정에서부터 일반학교와는 차별화된 운영을 하고 있다.학교 규모가 작은 이유로 중학교까지 운영하지는 못하지만 고등학교 2~3학년을 대상으로 무학년 선택중심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매 학기 전에 교수․학습 계획을 공고하면 학생들은 자신의 학습계획에 따라 수강신청을 하고 개인별 시간표를 작성한다. 선택과목 수강신청 시에 연구계획서도 함께 제출한다. 또 학기 시작 후 일정기간을 두고 수강 과목을 변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개인의 흥미와 적성에 맞는 맞춤형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교육내용으로는 국민공통기본과목 외에 학생들의 잠재적 소질과 능력을 계발하는 탐구활동(예 : 공예, 우리 춤 우리 가락, 인문학 연구, 표현예술, 합창합주, 야외활동, 인턴쉽 연구 등)과 ‘더불어 사는 삶’을 익히는 체험활동(예 : 농사, 생태입문, 지역활동과 NGO, 진로탐색, 통합기행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 중 외국으로 가는 통합기행을 위해 학기 중에 수업과 연결하여 1년 동안 꾸준히 준비하는 모습이 일시적인 교육활동으로 끝내는 우리들과는 색다르게 보였다.이우학교는 학생 중심의 자기주도적 탐구중심 수업방식을 비롯하여 기존 교육과정 운영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교육과정 시스템을 운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여 운영한다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인가? 개교 첫해 기존 공립학교의 지식주입식 교육, 교사 중심의 강의식 교육, 질문보다는 답변 중심의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는 학생들을 어떻게 새로운 시스템으로 이끌어갔는지에 대해 질문을 했다. 정광필 교장선생님의 답변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충격적이었다.“학생들은 쉽게 적응합니다. 교사가 문제입니다. 교사가 시스템에 적응하여 마음을 열면 학생들은 쉽게 따라옵니다.”새로운 변화에 대한 적응문제를 교사 자신에게 두지 않고 학생에게 미루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교사가 가르쳐 주어도 못하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시스템 운영을 적용했을 때 발생될 학력 저하는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고 주장하는 교사들은, 이러한 걱정에서 벗어나 그 열정을 마음을 여는 데 바쳐야 할 것이다.

 

L 장학사는 그 보고서에서 이 부분에 대한 소제목을 이우학교 교장의 멘트를 인용하여「학생들은 쉽게 적응한다. 교사가 문제였다」고 붙였습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장학사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학교 자율화가 더 가깝고 쉬워질 것입니다.

첨언하면 ‘애송이’ 장학사에게 무조건(?) 교육과정을 맡기는 경향은 참으로 한심한 일입니다.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너무나 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L 장학사님께

장학사님께서는 우리의 일제식, 강의식, 지식주입식 교육의 전통과 그 폐단에 공감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 교육에 깊이 물들면 최첨단의 시설․설비와 시청각 기기, 학습자료를 활용하면서도 교묘한 방법으로 그 일제식, 강의식, 지식주입식 교육을 하게 되니 겉으로만 화려하고 찬란한 그 수업, 그 전통, 그 문화가 얼마나 무섭습니까. “내가 이 문제를 가르쳐 주겠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던, 60~70명을 대상으로 가르치던 때의 교사 중심 수업에 물든 교사는 설사 6~7명을 대상으로 가르치게 된다 해도 역시 “내가 이 문제를 가르쳐 주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대답하는 교실’은 영영 ‘질문하는 교실’로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그 6~7명이 빠른 아이나 느린 아이나 획일적으로 무지막지하게 교사가 만든 ‘진도표’라는 문서에 얽매여 지내야 할 것입니다.

L 장학사님.

교장인 저는 그런 교사보다 교장인 제가 더 문제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교장이 있는 Y시 B학교의 어느 교사가 그랬습니다. “초임교사가 많은 학교여서 전통적 수업 행태를 바꾸어나가기가 참 좋아요.” 교사들은 본래 바꿀 준비가 충분한 사람들이라는 뜻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L 장학사님. 장학사님의 그 소주제「학생들은 쉽게 적응한다. 교사가 문제였다」는 「교사들은 쉽게 적응한다. 교장이 문제였다」로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제 저의 소개를 벗어나 장학사님께서 그런 학교를 찾아 한번 더 멋진 보고서를 쓰실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지난 4월 과학의 달에 전일제 과학경진대회를 실시했습니다. 내 생각에는 그게 당연합니다. 온 학생이 그날 하루쯤 마음 놓고 과학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참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운동회도 그렇지 않습니까?

대회를 주관한 N 교사가 그 대회의 평가보고서 끝에 다음과 같이 써서 제게 보여주었습니다.

“학교교육과정 편성 시에 ‘과학행사일’로 잡을 필요가 있음. 학교교육과정 작성 시 좀 더 치밀한 계획이 필요함. ⇒ 학교교육과정 운영에 있어 다양한 행사 운영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하나 현재는 갑작스레 준비하는 경향이 많음. 월별 행사활동과 연계한 교육활동을 할 수 있는 배려가 필요함.”

N 교사는 올해 우리 학교로 전근을 왔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변명했습니다. “N 선생님, 그렇지 않아도 학교교육과정을 그렇게 편성하라고 했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은지 아직 제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자 N 교사가 말했습니다. “학교홈페이지에 올릴 때 이 부분은 삭제하고 올릴까요?”

나는 절대로 그러지 말고 그대로 탑재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내년도 학교교육과정 편성이 제대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대답하며 N 교사의 마음을 헤아려보았습니다. 그가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내가 다 귀찮아지거나 정신이 이상해져서 엉뚱한 반응을 나타낼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N 선생! 도대체 뭐하자는 짓입니까!” 교장인 내가 그런 반응을 보이면 N 교사는 얼마나 낙심하고 움츠리게 되겠습니까. N 교사는 그런 일을 이미 여러 번 당해본 경험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이 학교에 와서 처음 쓴「학교장칼럼」을 읽어본 K 교사가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습니다.

 

여러 교장선생님들을 겪으면서 느낀 점은 누구나 자신만의 착각(?)에 빠져 자신은 민주적이고, 교직원과 아동들을 위해 헌신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교직원이나 아동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시간이 지나면 점차 권위주의적으로 흘러 자신의 아집에 빠져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무시하는 경우를 흔히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학교문화가 경직되고 위계화 되어 관리자와 교사의 관계가 관료주의적으로 흘러가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사실 관리자라는 말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냥 교장선생님이 더 정감 있고 동료애를 느낄 수 있으니까요). 업무처리에 있어서 교사가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의견을 제시한다고 해도 학교장이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면 그 이후의 일은 교장선생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시행될 뿐입니다.

 

교장들은 아무 할 말이 없어야 합니다. 그게 당연합니다. 교장을 하는 사람들부터 변하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크게 변해야 할 사람들이 교사들을 쳐다보고 ‘저 사람들이 왜 변하지 않나?’ 하면 너무나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차라리 우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