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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톨스토이 『크로이체르 소나타』

by 답설재 2008. 8. 14.

톨스토이 『크로이체르 소나타』

-그 여인의 영혼을 사로잡은 협주곡-

 

그리고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제9번

Beethoven,ViolinSonatas No.9

 

 

 

 

 

 

 

 

 

‘크로이쩌’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1999년 9월부터 6개월간 서울 Y초등학교 교감으로 지낼 때입니다. 교장선생님은 내가 교육부에서 나왔다고 나에게 ‘교무교감(수석교감)’을 시키고 나보다 5년이나 연장인 여성 K교감을 ‘생활교감’으로 지명했습니다. 예를 들면 70여 명의 교사들이 매주 제출하는 ‘지도안’ 검사는 내 담당이었습니다.

 

학교에서 하는 일들이 교육부에서 하던 일에 비해 무겁지도 않고, 지도안을 잘 쓰면 수업이 잘 될 것이라는 보장도 별로 없는 것 같고, 이러나저러나 큰 착오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송구스런 말씀이긴 하지만) 좀 싱겁다고나 할까,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읽어볼 생각도 않고(교사들은 그 지도안에 결국 잘 가르치겠다는 생각만을 나타내고 있었으므로) 도장을 꾹꾹 찍어대는 걸 바라본 K교감이 당장 “그렇게 해선 안 된다”고 제동을 걸었습니다. 말하자면 어떤 점은 고치고 어떤 점은 더 잘하라는 식으로 붉은 펜으로 한 가지씩이라도 적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무슨 수로 그 70여 명의 교사들이 깨알같이 써낸 지도안을 일일이 읽어보고 주서(朱書)를 달아준단 말입니까. 기가 막혀서 “내가 보기에는 다 잘 쓴 것 같다”고 하다가 “그럼, 우리가 맡은 업무를 서로 바꾸자”고 했더니, 그건 안 될 말이라고 했습니다. 할 수 없이 “그럼, 비공식적으로 교사들의 지도안에 주서를 달아주는 일을 해주면 내가 민원을 다 처리하겠다.”고 해서 합의를 보았습니다. 어쨌든 나는 그 K교감으로부터 신용을 잃은 것은 분명했습니다.

 

K교감은 음악에 조예가 깊은 분 같았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따님이 음악을 전공한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교무실 책상 위에 FM 라디오를 켜놓고 살았는데, 그 가을날 어느 오후,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이 들려서 혼잣말로 “9번이네.” 하자, 흘낏 쳐다보더니 그 긴 연주가 끝나고 다시 한번 나오는 곡목 소개를 듣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진짜네요?”

그 후로 K교감은 나에게 참 잘 대해주어 지내기가 좋아졌고, 음악을 좋아하는 교사들과 함께 ‘예술의전당’에도 다녀왔습니다.

 

 

 

음악에 대한 레비 스트로스의 언급도 옮기고 싶습니다. 그는 브라질 밀림 속의 ‘미신’의 의미(미개인들의 상징)를 강조하여 이렇게 썼습니다(C. 레비 스트로스, 박옥줄 옮김, 『슬픈 열대 Tristes Tropiques』 한길사, 1998, 266~ 267). 그가 ‘슬픈 열대’를 이야기하기 위해 써놓은 글을 이렇게 다른 의도로 인용하는 것이 미안한 일이기는 합니다.

 

“화가, 시인 또는 음악가의 작품과 신화 그리고 미개인들의 상징은, 우수한 형태로서는 아니더라도 가장 근본적이며 또 우리가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것으로는 유일한 지식으로서 우리 앞에 나타나야만 한다.”

 

내가 그 9번을 '척' 하면 알게 된 건 자주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 않고 나 같은 사람이 무슨 수로 그걸 알아맞힐 수 있겠습니까?

도대체 음악가들은 이 곡을 어떻게 언급하고 있을까요? 이 글을 쓰기 위해 갖고 있는 책을 찾아보았습니다(안동림, 『이 한 장의 명반』,현암사, 1997, 351쪽).

 

“그 시대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단지 바이올린을 돋보이기 위해 피아노 반주가 붙거나 아니면 반대로 피아노 소나타에 바이올린 반주가 붙는 정도가 상식이었다. 그러한 전통적 양식을 깨뜨리고 베토벤의 이 곡들은 두 개의 악기를 대등하게 활약시켜 서로 협주하도록 만들어 보다 충실한 음악, 화려하고 우람한 성격의 곡을 창조하는 길잡이가 되었다.”

 

나는 40분 가까이 듣게 되는 이 곡을 오며가며 들었고, 가령 비 내리는 한적한 길가에 차를 세우고 차창에 내려앉는 빗방울을 헤아리며,

‘참으로 아름다운’,

그렇게밖에 표현할 길 없는 것이 안타깝도록 아름다운,

때로는 서정적이고, 때로는 날카롭고 격렬하고 정열적이고 그러다가 고요해지고 어쨌든 아름답고 터지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의 열정이 어느새 순화되어 강물처럼 흐르는

어쩌면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그렇게 어우러질 수 있을까 도저히 알 길이 없는

두 가지 악기를 잘 연주할 수 있는 기능만 익히게 되면, 만약 그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연주하는 두 사람이 남녀(男女)라 해도 서로 죽도록 사랑하지 않고도 그렇게 연주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운

그 제1악장과 제2악장, 제3악장을

빗속에 세운 차안에 홀로 앉아 다 듣고 다시 가던 길을 가기도 했습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연주하는 두 사람이 남녀(男女)라 하면 아무래도 깊은 관계이기가 쉬울 거라는 내 생각을 보여주는 소설이 톨스토이의 저 『크로이체르 소나타』입니다(레프 톨스토이,이기주 옮김, 『크로이체르 소나타』, 임프린트펭귄클래식코리아,2008).

 

“……. 당시 제가 특히 괴로워한 이유는 저에 대한 그녀의 감정은, 드물게나마 의례적인 육욕 덕에 잠시 사라지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분노밖에 없었다는 점과 그의 외모의 우아함과 새로움, 출중한 음악적 소양, 같이 연주하면서 생긴 친밀감, 음악, 특히 바이올린으로 아내의 감성을 자극했다는 점, 그리고 이 남자가 아내의 맘에 들었다기보다 이미 그가 제 아내를 하고 싶은 대로 쥐었다 폈다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262~263쪽)

 

“그들은 베토벤의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연주했습니다. 처음 나오는 프레스토를 아세요? 아시냐고요?” 그는 소리쳤다. “으……! 이 소나타는 정말 무시무시한 음악입니다. 특히 이 부분은 더욱 그렇습니다. 아니 음악은 정말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그게 도대체 뭔가요?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음악이 도대체 뭐지요? 음악이 하는 일이 뭡니까? 왜 그런 일을 하는 겁니까? 음악이 영혼을 고양시킨다고 하는 말은 모두 헛소리이고 거짓입니다! 음악은 무서운 작용을 합니다. 어쨌든 제게는 그랬지요. 음악은 영혼을 고양시키지 않습니다. 음악은 영혼을 고양시키지도 천박하게 하지도 않습니다. 음악은 영혼을 자극시킬 뿐입니다. 어떻게 설명하면 될까요? …….”(273~274쪽)

 

“……그런데 그런 무시무시한 수단이 아무 수중에나 들어간 겁니다.「크로이체르 소나타」의 첫 번째 프레스토를 예로 들어보지요. 정말 이 프레스토를 가슴 위를 노출시킨 옷을 입은 부인들 앞에서 연주할 만합니까? …(중략)… 시간과 장소에 걸맞지 않은 음악을 사용하여 에너지와 감정을 돋우게 되면 바로 파멸로 이어지게 됩니다. 적어도 저한테는 이 소나타가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275쪽)

 

내가 가진 음반의 표지에는 그 곡이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연주자들이 남녀(男女)가 아닌 것이 유감스럽습니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Violin Sonatas No.9 in A major,op.47('Kreutzer')

ITZHAK PERLMAN violin

VLADIMIR ASHKENAZY piano

Ⅰ Adagio sostenuto-PrestoAdagio 11.50

Ⅱ Andante con variazioni 16.26

Ⅲ Finale: Presto 8.50

 

주의를 촉구합니다.

사랑하는 그(혹은 그녀)가 이성(異性)의 연주자와 이 곡을 협연(協演)하고 싶어하거든 교양이고 뭐고, 돈이고 뭐고 다 부질없는 것이 됩니다.

모든 걸 다 걸고 '무조건' 안 된다고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 '모든 걸' 다 잃고 말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Ⅳ(덧붙임)

 

이 글은 2008년 8월 14일, 그러니까 재작년의 한여름에 썼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신문에서 이차크 펄만 리사이틀 소식을 봤습니다(조선일보, 2010.10.28. A23면). 내가 듣고 있는 그 음반의 ITZHAK PERLMAN이 어떤 분인가 했더니 보십시오. 네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서 평생 불편한 다리로 살아왔답니다. 그래서 나는 그 기사를 아래에 다 옮겨놓기로 했습니다.

 

 

[리뷰] 바이올리니스트 이차크 펄만 리사이틀

 

 

 

거장의 가식 없는 絃…

 날선 소리 한번 없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차크 펄만(65·Perlman)은 전동휠체어를 몰고 미끄러지듯 무대 위로 빠르게 달려나왔다. 피아니스트 로한 디 실바는 두어 걸음 뒤에서 그를 따랐다. 26일 서울 예술의전당을 찾은 펄만은 19년 만의 내한 공연을 기다려온 애호가들의 갈증을 남김없이 풀어줬다.

부드럽고 따뜻한 음색으로 이름난 이 거장은 모차르트·베토벤·브람스·슈만 등 고전·낭만파 음악가들의 작품을 골고루 연주하면서 날 선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모차르트 소나타 F장조는 반짝거렸고, 베토벤 소나타 '크로이처'에선 영롱한 소리를 빚어냈다. 슈만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3개의 환상소품' 중 마지막 '불과 같이 맹렬하게'에서조차 현(絃)은 가식 없이 부드러웠다. 네살 때 소아마비를 앓은 뒤 평생 불편한 다리로 살아왔으면서도, 삶과 음악에 대한 넉넉한 태도에서만 나올 법한 자연스러움이었다.

연주에 탄력이 붙은 펄만은 슈만까지 끝낸 뒤 무대에서 일단 물러났다가 다시 나왔다. 악보 뭉치를 뒤적거리며 즉석에서 작품을 골라낸 펄만은 크라이슬러, 브람스부터 거슈윈까지 종횡무진이었다. 백미는 영화음악 거장 존 윌리엄스의 '쉰들러 리스트' 삽입곡이었다. 유대인 학살의 비극을 담은 이 영화에서 펄만은 바이올린 솔로를 직접 연주했었다. 시대의 아픔과 비애가 물씬 밴 선율이 흘러나오자 청중들은 숨소리를 죽였고, 열정적인 박수로 화답했다.

기립박수까지 이끌어낸 당대 최고 바이올리니스트의 호연(好演)에 비해, 주최측의 세련되지 못한 공연장 밖 진행은 눈에 걸렸다.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시리즈로 초청된 펄만은 공연 전날 입국하자마자 서울 여의도 현대카드 본사로 직행, 기자회견에 나섰다. 회견장의 펄만은 현대카드 로고 숲에 둘러싸인 상품처럼 보였다. 최고의 아티스트를 내세운 문화 마케팅으로 브랜드 인지도와 시장 점유율을 높여온 기업답지 않게, 예술가들을 시장 좌판의 싸구려 물건처럼 다루는 것 같아 아쉬웠다. 펄만은 27일 저녁에는 서울 정동의 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 열린 현대카드 특별회원을 위한 프로모션 연주회 무대에도 섰다. 김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