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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화장실에서 만난 아이 - 학부모 여러분께 -

by 답설재 2008. 8. 7.

 

연합뉴스에서 버섯을 들여다보는 아이들의 아름다운 사진을 보았습니다(2008.07.29).

이런 사진을 신문에 올리는 걸 보면서 ‘아직은 세상이 괜찮다’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사진 제목도 참 좋습니다. 설명과 함께 보십시오. “「버섯 숲에 빠지다」: 수원농촌진흥청 농업과학관에서 7월 29일 열린 ‘신비의 버섯 전시회’를 찾은 어린이들이 형형색색의 버섯을 살펴보며 신비로운 버섯의 세계에 빠지고 있다.”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방학하기 며칠 전 화장실에서 만난 아이가 생각났습니다. 나는 비좁고 어두컴컴한 직원용 화장실이 싫습니다. 그래서 아이들 화장실을 자주 이용하게 되니까 더러 우스개가 될 만한 일이 생깁니다.

좀 난처하므로 둘러서 얘기하면, 화장실은 머리가 허연 ‘우리 나이 63세의 인격(人格)’이 ‘최고로 귀엽고 천진난만한, 아직은 강아지만한 인격’과 만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학년 그 아이 역시 그랬습니다. 수많은 자리 다 두고 하필 바로 내 바로 옆으로 오더니 볼일을 보기 시작하며 ‘힐끔’ 제 쪽을 건너보았습니다.

'이놈이?' 싶었는데, "학교 앞에서 독개구리를 봤어요!" 하는 게 아닙니까? 1학년에서 학교 둘레의 환경을 둘러보는 공부를 했던 모양입니다.

"어떻게 생겼는데?"

"등에 초록 무늬가 있어요."

그러면 참개구리일 거라고 하자, 참개구리는 높이 뛰는데 그 독개구리는 높이 뛰지 않더랍니다. 그 애는 아직 확인(검증)되지 않은 그 개구리를 말끝마다 기어이 "독개구리, 독개구리" 했습니다. 내가 독개구리는 그렇게 흔치 않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독개구리가 틀림없다며 거의 동시에 볼일을 마치고 나왔습니다.

 

3학년에서는 7월초에 오남천 현장학습을 했습니다. 나로서도 ‘오남천이 뭐 별 볼일 있겠나?’ 싶었는데, 다녀와서는 교사들이 더 의기양양했습니다. 보고서를 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내용도 들어 있었습니다.

 

▷ 사전답사를 통해 체험할 순서와 계획대로 학습이 잘 이루어졌다.

▷ 학교와 가까워서 걸어갈 수 있고 필요한 경비도 없었다.

▷ 직접 들어가 보니 물이 맑고 깨끗하였다.

▷ 소금쟁이, 장구애비, 송사리, 붕어, 미꾸라지, 다슬기, 우렁이, 잠자리 애벌레, 녹조류를 비롯한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다.

▷ 두산아파트 다리 밑에서 잠자리 우화 과정을 관찰할 수 있었다.

▷ 오남천에 살고 있는 생물들이 많아 모든 아이들이 관찰할 수 있었다.

▷ 사전에 준비물과 안전에 관한 지도를 잘 실시하여 행복한 체험활동이었다.

▷ 체험학습 도우미 학부모들이 학급별로 2명 이상 참석하여 안전한 체험활동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주고 사진 촬영도 해 주었다.

▷ 너무 재미있어서 다음에 한번 더 갔으면 좋겠다는 아이들이 많았다.

▷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마음을 북돋아주었다.

▷ 가까운 곳이라도 사전답사를 꼭 해야 할 필요가 있다.

▷ 3학년 체험학습 장소는 내 고장을 먼저 찾아보는 활동이 바람직하다.

 

인용이 좀 지루했습니까? 나는 지루하지 않습니다. 선생님들도 즐거워했고 잘 했다고 자평(自評)한 체험학습이었습니다. J 선생님은 학교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서문을 달고 위에 인용한 보고서를 실었습니다.

 

“야, 우리 오늘 오남천에 간다~.” 서쪽 현관에서 뜰채를 의기양양하게 들고 1학년쯤 되어보이는 동생들에게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교실에도 일찍 등교한 아이들이 뜰채와 채집도구들을 자랑하며 오남천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도 덩달아 신바람이 난다. “고기를 잡으러 오남천 갈까요?” 노래를 부르며 행복한 얼굴로 돌아온 오남천 체험학습 평가보고서입니다.“

 

‘오남천은 맑고 깨끗하다는 것’, ‘소금쟁이, 장구애비, 송사리, 붕어, 미꾸라지, 다슬기, 우렁이, 잠자리 애벌레, 녹조류를 비롯한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다는 것’ 등 나로서는 전혀 예상도 못한 기록도 눈에 띄었습니다.

“그게 뭐 중요한가?” 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묻는다면 내가 “3학년 과학 교과서에는「물에 사는 생물」이라는 단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남천 현장학습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대답할 것 같습니까?

 

그것도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그러나 교과서에 나오건 나오지 않건, 3학년 얘기만 하기보다 가령 1학년 아이들이 입장료와 차비, 점심값을 내고 부천까지 가서, 그 수영장 라카룸(locker room)에 들어가 제 번호를 찾아 옷가지를 넣었다가 다시 찾아 입고 돌아온 것만도 너무나 값진 체험일 것입니다. 중요한 조건은 부모와 함께 가지는 않았다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보고, 듣고, 읽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 늘 해야 하는 일입니다. 나는 그것을 40년에 이르도록 교육자로서 살아온 결과로써 알게 되었고, 연전(年前)에는 그런 이야기를 쓴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여담(餘談)이지만 나는 그 책의 이름을『가르쳐보고 알게 된 것들』이라고 정했는데, 그 책을 만들어서 판매할 출판사 사장이『보고 읽고 생각하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는 참 순진하고 직설적인 제목으로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못마땅했지만 힘들여 만들고 판매할 사람이 그렇게 하겠다니 어쩔 수 없어 승낙하면서도 다행히 책을 쓴 뜻은 그릇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세상만사를 다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그저 이렇게 배우는 거라고 안내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다 가르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럴 생각이라면 신문에 난 것처럼「헬리콥터 맘」이 되어 아이를 로봇으로 바꾸는 게 더 쉬울지도 모릅니다.

 

방학을 앞두고 어느 어머님과 대화한 적이 있습니다.

“덥지만 아이와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세요.”

그랬더니 대뜸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괜~찮아요. 이 학원 저 학원, 방학해도 아이는 바쁘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받았습니다. “그래도 어디 좀 데리고 다니셔야지요.”

 

다른 글에도 썼지만, 우리 오남의 주거조건 중에는 좋은 점도 많지만 아이들이 볼 만한 것, 교육적으로 이용할 만한 시설은 아주 적습니다. 그러므로 주말이나 방학 같은 때 더러 체험학습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면 ‘서울’을 부러워해야 할 이유도 그리 없습니다.

 

예를 들면 용산에 있는「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가 이용하기에 참 좋은 문화․교육시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도농역에 가서 시원한 열차를 타고 이촌역에 내리면 거기가 바로 국립중앙박물관 앞이니까 차를 여러 번 가라 탈 필요가 없는 곳입니다.

국립박물관은 요즘 입장료도 없습니다. 그 많은, 소중하고 진기한 문화재들을 공짜로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인터넷으로 사전에 신청해야 하지만. www.museum.go.kr/child) 저학년 아이들이 좋아할 체험 중심의「어린이박물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곳도 물론 무료입니다.

「용산가족공원」도 바로 거기여서 음식을 준비해 갈 수도 있지만 어렵다면 그곳 한식당과 양식당 음식 값이 그리 비싸지도 않은 것 같았습니다.

아, 참 중요한 이유가 또 한 가지 있습니다. 박물관에 가면 단시간에 그 문화재들을 다 살펴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얼마든지 다시 가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건성으로 많이 보는 것보다 한 점이라도 자세히 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한군데 붙어 서 있는 아이가 못마땅해서 “왜 거기만 서 있니!” 애가 타지만, 그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저기쯤 가서 한군데 붙어 서 있는 아이는 장차 무언가 큰일을 할 아이라는 걸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덧붙이면 박물관은 월요일에 휴관이므로 주말을 이용하여 견학하기에도 좋습니다. 긴 방학 동안 큰돈 들이지 않고 딱 한번이라도 기억에 남을 만한 가족 단위 현장학습 장소로는 제격이지 않습니까?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제가 잘 아는 사람이라는 건 이유가 되지 않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