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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어디가 대한민국입니까? 누가 대한민국입니까?

by 답설재 2008. 7. 11.

덥습니다. 지난해 여름에도 그 무더위를 참느라고 용을 썼습니다. 그럴 때는 “우리나라는 사철이 있어 참 좋다”는 말에 공감하고 싶은 마음까지 사라집니다. 옛날 그 좋던 여름날을 그리워하면서 ‘내년엔 이렇진 않겠지. 그렇지 않으면 아내가 뭐라 하든지 집에도 꼭 에어컨을 달아야지.’ 그런 생각이 절실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는 선풍기도 돌리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너무 더울 때는 사위가 갖다 준 에어컨을 다른 사람에게 주고만 것이 후회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무더위가 올해는 더 일찍 시작되었습니다. 밤이 깊어도 바람 한 점 불어주지 않으니 지난해보다 외려 더 혹독합니다. 그래서 올해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평년기온? 좋아할 것 없다. 인간들이 보다 편안한 생활, 보다 편리한 생활을 추구하려는 욕심을 멈추지 않는 한 이 현상은 얼마든지 심화되어갈 것이다. 두고 보라. 언젠가 다시는 되돌릴 수 없게 된 날에 이르러 진정으로 눈물 흘리며 후회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저는 환경문제에 관한 한 좀 비관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비관적이냐 하면, 앞선 나라에서는 대체에너지 개발 연구를 서두르고 있다는데 그 대체에너지도 예상치 못한 또 다른 환경문제를 유발할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을 느낄 정도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기적적인 다행(多幸)일 것입니다.

 

6월 어느 날, 아직 이처럼은 덥지 않던 그날, 복도에서 만난 6학년 애가 말했습니다. “교장선생님, 에어컨 좀 털어주시면 안 될까요?” 그 애는 에어컨도 교장인 제 마음대로 트는 줄 알았겠지요. 그래서 저는 좀 으스대는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응, 그래. 이보다 조금만 더 더워지면 틀어줄게.” 며칠 후, 조회 때 그 애를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즘 좀 덥습니다. 나에게 에어컨을 틀어주면 좋겠다고 한 사람도 만났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조금만 더 참기 바랍니다. 최근 세계적으로 원유 가격이 하도 올라서 야단입니다. 이럴 때는 우리도 좀 참고 묵묵히 공부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훈화가 너무 짧습니까? 이것보다 길면 더 재미있고, 더 유익하고, 그래서 아이들도 더 귀 기울여 들어줄까요?

 

그러던 것이 요즘은 아침부터 에어컨을 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부가 안 될 지경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혼자 앉아 있는 교장실이 면구스러워서 25℃로 맞추어 놓습니다. 그보다 낮은 온도로는 도저히 손이 가지 않습니다. 그만 해도 견딜 만은 합니다. 볼일이 있어 들어온 직원이 나가면서 몇 도 더 낮추어 놓고 나갑니다. ‘에이, 답답해.’ 그랬을까요? 아니면 ‘교장선생님 방이 이렇게 후텁지근해서 되나? 더 낮추어 드려야지.’ 그랬을까요. 그 직원이 나가자마자 얼른 다시 25℃로 올려놓습니다. 그 직원의 마음씀씀이를 고마워하는 마음이야 없을 리 없습니다. 돌아와 앉아서 생각합니다.

 

‘기름 값이야 오르건 말건 탁! 정전이 되거나 기름 공급이 끊어지는 날까지는 편안히 살고보자는 생각이라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겠나?’

‘아, 일본은 GNP가 5배가 된 기간에 에너지 소비 율은 오히려 15%가 줄었다는데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려고 이러나?’

‘나는, 우리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이 나라의 운명을 위해 누군가 큰 걱정을 하고 있고, 누군가 무슨 수를 강구하고 있겠지, 모두들 그런 생각이라면 도대체 그 누군가가 어디의 누구인가?’

 

저는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이 바로 대한민국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모두들 “글쎄요, 제가 뭐 대한민국이기야 하겠습니까?” 한다면 도대체 그 ‘대한민국(大韓民國)’이 누구겠습니까.

 

저는 제가 근무하는 이 교장실이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이 방이 대한민국이 아니라면 그럼 어디가 ‘대한민국(大韓民國)’입니까?

 

그러므로 이 방에서 누군가와 면담하고 책을 보며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고 서장에 다가가 자료를 찾고 잠시 신문도 보고 아이들의 작품이나 교사들이 만든 문서를 들여다보는 일 등 이 방에서 이루어지는 저의 모든 행동, 활동이 바로 ‘대한민국(大韓民國)’과 직결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미소, 저의 기쁨과 즐거움, 한숨, 고뇌, 두통, 후회, 반성, 가슴, 진실 …… 말하자면 저의 모든 것이 ‘대한민국(大韓民國)’이며, 그것은 여러분도 마찬가지이고 1500명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까? 그렇다면 어디가 대한민국이고 누가 대한민국인지 한번 대어보십시오. 아니면 제가 꼭 선생 같은 소리를 하고 있습니까? ‘선생이니 하는 말도 그런 꼴’이라고 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것은 저에게는 또 하나의 위안(慰安)입니다.

 

덥고 참 더워서 에너지를 그야말로 ‘물 쓰듯’ 펑펑 쓰는 모습들을 보며 ‘대한민국(大韓民國)’이 어디 있는지, ‘대한민국(大韓民國)’이 누군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어느 신문을 보았더니 한 면 가득 에너지 소비 이야기입니다. “연간 에너지 수입(949억 달러; 95조원), 3대(반도체·자동차·기계) 수출액과 맞먹어” “에너지 분야 무역적자 메우려면 쏘나타 350만대 팔아야” “1인당 소비량 日·獨의 거의 2배… 15년 전엔 절반 수준” “에너지 효율 세계 1위 일본에선 33년간 제조업 생산 2배 돼도 에너지 소비는 비슷” 다른 면에도 눈여겨봐야 할 내용이 또 있습니다. “온난화 대재앙의 서막?… 한겨울에 무너져버린 아르헨티나 빙하”(남반구인 아르헨티나는 7월이 한겨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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