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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퇴근길에 만난 졸업생들

by 답설재 2008. 6. 25.

 

 

 

퇴근하는 길이었습니다. 중학교 남학생 예닐곱 명이 길바닥에서 무언가를 찾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굵직굵직하게 생긴 아이들이 인물도 좋아서 보기에 좋았습니다. 앞으로 실력을 쌓아 각자 ‘한가락’ 할 수 있는 인물들로 성장해갈 것입니다.

 

그들 옆으로 조심스레 지나갔습니다. 중고등학생들은 일부러 도로 한가운데를 때를 지어 지나가며 차가 다가가도 모른 채한다며 짜증을 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게 잘하는 일은 아니고 일종의 만용(蠻勇)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때 그런 짓 해보지 않으면 언제 해보겠습니까. 사실은 그런 행동을 비난하는 자기네도 학창시절에 일쑤 그런 짓을 했지 않습니까. 저도 그런 짓을 해보았고, 게다가 괜한 교모(校帽)와 가방을 찢고 희한한 색칠도 해서 다녔습니다. 그런 짓이 장한 줄 알았습니다.

 

농협 앞 오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얼른 뒤따라와서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희들 8회 졸업생이에요.” 그들이 인사를 하지 않으면 저는 그들이 누군지 도저히 모를 것입니다. 한 해 사이에 어떻게 그만큼 자랐을까요?

 

헤어져 돌아가며 이제 저는 내년 한 해만 지나면 정년(停年)이지만 이 학교를 위해 더욱 노력하고 더 좋은 학교로 가꾸어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교장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려면 10년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제 나이 73세가 됩니다. 더 늙는 것이 정말 싫지만 그들이 그렇게 성장한 걸 보려면 얼른 세월이 가야할 것입니다. 그때도 그들이 저를 알아보고 인사를 해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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