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 교사는 재능과 관심의 영역이 넓습니다. 함께 지낸지 반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 조금밖에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그분에게 그 영역을 좁히면 어떻겠느냐고 했습니다. 능력에는 한계가 있고, 어쩌면 그 능력은 똑같은데 관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의 생활모습이나 진로, 재산, 인간관계 등 모든 운명이 결정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사실은 그 범위를 극도로 좁혀서 ‘박사(博士)’라는 단어를 이루는 글자의 의미와는 영 달리 그 좁은 분야를 깊이 연구한 사람이 바로 ‘박사학위’를 받는 것 아닌가 싶다고 했습니다. 또 ‘인생’이란 이 길을 잘못 걸어가면 일류 사기꾼이 되기도 하는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N 교사는 ‘이 사람이 내게 심술을 부리나?’ ‘훼방을 놓고 싶은가?’ 아니면 ‘내 능력을 깔보는 건가?’ 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교사생활을 할 때 욕심이 참 많았습니다. 우리 반을 최고 반으로 가꾸어 공부도 생활도 최고인 반이 되게 하고 싶었고, 저 자신으로 말하면 잘 가르칠 뿐만 아니라 연구도 잘 하고 일도 잘 해서 제가 없으면 그야말로 ‘올 스톱’이 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온 학교의 ‘환경구성’(요즘은 돈을 주고 맞추어 붙이는 그 글씨 써서 붙이기, 온갖 디자인, 화단 가꾸기 등)은 제가 다 했습니다. 페인트 통과 붓을 들고 옥상에 올라가 글자 한 자가 제 키보다 더 크게 가령 ‘주체성이 뚜렷한 한국인 육성’도 제가 썼고, 운동회 때는 ‘가을 대운동회’도 제가 썼고, 부채춤은 못 가르쳤지만 ‘덤블링(기계체조)’도 제가 가르쳤습니다. 하다못해 아이들은 물론 교원들 사이에서도 ‘인기 짱’인 교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또 있습니다. 퇴근 후에는 술도 제일 많이 마시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지쳐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G 선배께서 이젠 어느 한 교과에 매진하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시작하더니 한 시간 이상을 이야기했습니다. 요점은, 야간에 사범대학을 거쳐 교육대학원에서 사회과교육을 전공하고 있으니 사회과교육 연구에만 전념하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근무는 충실히 하라고 했으니 듣기에 따라서는 결국 ‘그게 그거’ 같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그 당시에는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심술을 부리나?’ ‘훼방을 놓으려나?’ ‘내 능력을 깔보는 건가?’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분이 교감으로 있는 국립사범대학부설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저를 불렀던 것입니다. 맘 놓고 ‘실컷 부려먹으려고’(좋게 이야기하면 함께 지내려고) 저를 불렀기 때문에 그 유명한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고, 아예 담임(수업)도 맡지 않고 일만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미 변해 있었습니다. 물론 학교 일에 무관심하거나 소홀한 건 아니지만 마음속에는 사회과교육밖에 없는 교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수업조차 하지 않았으므로 학교 일을 수없이 많이 하긴 했지만 시간만 나면 사회과에 관한 생각을 했고, 책도 그런 책만 보았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교육부 사회과 편수관의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딴에는 한국사회과교육학회나 한국지리교육학회 학술대회에서 논문도 발표하고, 제5차 교육과정에 따른 사회과 교과서 개편을 도와주게 된 것입니다. 가령 당시의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지도들이 성인용 지도나 다름없었는데 제가 그림지도를 도입하자고 했고, 일반지도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직접 그려 넣었습니다. 당시에는 지도를 아직 컴퓨터로 그리지 않고 모두들 여러 장의 트레이싱페이퍼(tracing paper)에 독일제나 일본제 로터링펜으로 그려서 제작했는데 전문적인 지도제작자가 하는 일을, 대학원에서 배웠다며 제가 작업하는 걸 본 편수관과 출판사 직원은 ‘참 희한한 교사도 있구나’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았습니다(요즘은 잘 모르지만 당시에는 대학원을 나왔다고 지도를 그릴 줄 아는 사람은 지도학 전공자 중에도 잘 없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저는 윤문도 제법 잘 해서 국어교육과 전공자나 다름없었습니다(국어교육과 전공자 중에서 윤문을 저만큼 할 줄 아는 사람을 저는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교과서의 삽화도 많이 고쳤습니다. 한 가지만 이야기하면, 가령 무늬가 찬란한 구리거울 사진의 설명을 ‘구리거울(뒷면)’이라고 고치거나 구리거울 앞면과 뒷면 사진 두 가지를 다 실어주는 식입니다. 어쨌든 나중에 교육부 사회과 편수관으로 들어가 직접 그 일을 담당하기 전까지 저는 사회과교육에서는 전국적인 인물로 등장해 있었습니다. 거짓말이지 싶으면 1990년대에 각 지역에서 사회과교육에 관심을 가졌던 인물을 찾아서 제 이름을 한번 대어보십시오.
그리하여 교육부 직원이 되었고 10여년을, 파견기간을 합하면 14년간을 제가 맡은 일에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에 대해 생각합니다. 하루 이틀이야 누가 못하겠습니까. 한두 가지 일이야 누가 못하겠습니까. 그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으면, 탄탄한 이론으로 무장한 학자들이 나서주지 않으면, 누구 하나 곁에 있어 주지 않으면 ‘그래, 그만두자’해버릴 수 있으면, 그게 무슨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겠습니까.
그 십 몇 년을 저 자신을, 아니 모든 걸 잊고 지냈습니다. 단 6개월 교감으로 나가 있다가 다시 불려가 제7차 敎育課程 시행 준비와 적용(사람들은 ‘탈도 많고 말도 많은 교육과정’이라고 했고 부분적으로는 미흡한 점도 많지만, 축소되거나 유야무야가 되기도 한 교육부의 다른 허다한 정책들처럼 그 교육과정의 시행을 포기했다면 우리 교육의 혼란이 어디까지 갔을까요. 저는 다른 정책은 몰라도 교사의 봉급을 주는 일과 교육과정을 적용하는 일은 멈출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돈희 전 장관은 부임 셋째 날 저를 불러 “하루하루 나와 함께 전쟁터의 지휘관처럼 일하자”고 했습니다), 초․중․고 2300책의 國定圖書와 檢定圖書 편찬․관리(‘한국근현대사’와 ‘경제’ 교과서는 그때도 지금도, 두고두고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國定圖書 發行權 配分(‘허위서류로 거액의 발행권 취득’이라는 제목의 신문기사를 보셨습니까? 재판결과를 봐야 확실히 알 일이지만 지난해에 실시한 조달청 입찰심사에 허점이 드러났다는 기사입니다. 교과부의 어느 고위층이 한 출판사 직원에게 지난번에도 그렇게 심사한 것 아니냐고 했다는데, 지난번에는 어떻게 해서 검찰의 기소 같은 일이 없었는지 먼저 서류라도 제대로 살펴봤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 심사를 하는 동안 뼈만 남아도 눈은 감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日本의 歷史歪曲에 대응하기 위한 제1기 ‘韓․日歷史共同硏究委員會’ 설치․운영(오늘 일본수상은 저들의 ‘학습지도요령해설서’에 독도문제를 어떻게 하겠다고 언급했습니까? 어떻게 일본하고는 좋은 일은커녕 껄끄러운 일만 생긴답니까?), 中國의 歷史歪曲(東北工程)에 대응하기 위한 ‘高句麗硏究財團’ 설립․운영(그때의 장관은 은퇴하여 속초에, 그때의 이사장은 한국학중앙연구원장실에, 그때의 상임이사는 국립중앙박물관장실에 가 있고, 담당관이었던 저는 이 학교에 와 있습니다)……. 사실은, 이 형편없는 신체로 그런 일들을 감당해냈다는 걸 생각해준다면 아무도 저를 동정해주지 않고는 못 배길 것입니다. 무슨 훈장이나 표창장이라도 하나 받았느냐고 물어봐야 할 것입니다. 요즘엔 때로 상태가 좋지 않아서 ‘이런 꼴로 시내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면 되겠나?’ 싶을 때도, 사람들은 “교육부 일할 때보다 얼굴이 확 폈네!” 합니다. 그런데도 저는 처자식들에게는 몹쓸 가장(家長)이 되어 있을 거라는 자책감을 벗을 수 없으며, 그러한 평가는 이제는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한 달에 두어 번 저녁식사를 같이 하며 ‘손님’ 취급을 받은 사람이 무슨 수로 ‘제대로 된 가장’이겠습니까. 그러나 저에게 그 세월이 회한(悔恨)으로 남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쩔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제가 그렇게 지낸 것에 의미가 있다면, 그 의미는 그 G 선배의 말 한마디에 연유한 건 아닐까 싶습니다. 그 G 선배는 인정할까요? 자신이 저를 그 길로 안내한 걸 알고 있을까요?
N 교사에게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N 선생님, 젊음은 어느 날 갑자기 가버렸습니다. 참 어처구니없는 사람들은 ‘구구팔팔’이니 인생은 사십부터니, 육십이면 아직 멀었느니 합니다. 동정이거나 위로, 혹은 자위겠지요. 젊음이 사라진 걸 느껴야 하는 날 꿈도 사라집니다. 그러면 끝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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