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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만약 교육부 장차관직 제의를 받게 되면

by 답설재 2007. 11. 6.

 

 

‘국민이 대통령’이라던 참여정부 노무현 정권은 이제 몇 달 남지 않았으므로 이 정부의 제의를 받기는 이미 다 틀린 것 같고, 2008년 초에 새 정부가 들어서서 내가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나 차관직 제의를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우선 그 제의를 받아들이려면 내 행적부터 잘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부정․비리를 저지른 일은 없는가, 말하자면 학교를 경영하면서 예를 들어 급식 자재를 공급하는 회사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은 적은 없는가, 혹은 재산을 관리하면서 탈세를 했거나 누구에게 받은 현금 다발을 사과상자나 굴비상자 같은 데 담아서 창고나 자동차 트렁크에 넣어 두지는 않았는가, 국민건강보험료를 내지 않은 적은 없는가, 아들이 군대에 간다고 나가서 가수 생활을 하거나 외국에 가서 지내지는 않았는가, 오래 전에 그만두었지만 그 때까지 쓴 몇 편의 시시껄렁한 글들은 표절한 것은 아닌가, ……

 

신문이나 방송에서 챙겨야 할 일들에 관한 뉴스를 수없이 보아왔지만 다 생각나지는 않는군요. 어쨌든 그런 사실이 없어야 국회의원들에게 걸려들어 단 사흘이나 며칠 만에 쫓겨나는 일은 없게 될 것입니다. 결코 웃을 일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웬만한 인물은 정무직 제의를 받고 이런 일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으며, 그 경우에 간단히 “예, 잘못했습니다. 장관할 생각을 접겠습니다.” 하고 순순히 물러난 인물은 보지 못한 것 같고 거의 모든 인물이 ‘참 억울하다’는 태도로 물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부터 걱정할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인지 모르지만, 그런 일을 꿈꾸는 사람들은 어디에 가서 서는지 모르겠으나 줄을 서고 있다는 이야기를 살아오면서 수없이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지금까지 교육인적자원부 정무직은 모조리 대학교수이거나 정치인, 혹은 현직 고위 간부들이었으며, 초․중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원이나 전문직이 장차관으로 임명된 사실이 없으니 미리부터 걱정할 일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나로 말하면 우리 경기도 교육계에서도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어서 교육청 본청이나 지역교육청에서 근무하며 우리 경기도나 어느 시․군의 교육행정을 맡아 제대로 한번 일해 보겠다고 나서봐야 “너 같은 입장인 사람이 어디 한둘이냐?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이곳에 첫 발령을 받아 그야말로 경기도 교육을 위해 일생을 헌신한 인물은 부지기수다. 그러니 공연한 생각마라.”는 핀잔이나 듣기 일쑤인데다가, 지난 9월 1일자로 이 남양주양지초등학교 교장으로 발령받아 와서 이 학교 구성원들에게조차 아직 어느 정도의 점수를 받으려면 하세월일 테고 어쩌면 약 2년이 남은 정년까지 그것조차 영영 불가능한 일이 될지도 모르니,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이나 그것이 어렵다면 차관이라도 되어 볼까 하는 생각은 참 어처구니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생각하고 계산해 보아도 탈세니 돈뭉치니 그런 걸 걱정할 게 아니라 남은 세월이나 그럭저럭 잘 보낼 궁리를 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나는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교원정년을 65세에서 62세로 단축했을 때 전국적으로 아우성을 쳤지만, 사실은 내게 남은 2년여 세월이 교장으로서는 적당한 것 아닐까? 건강이나 교육철학이나 혹은 이것도 신념이라고 할 수 있다면 내 그 알량한 교육철학, 신념 같은 것은 앞으로 2년 정도를 버티기에는 큰 무리가 없다 하더라도 더 긴 세월을 버티라고 한다면 그것도 그리 자신만만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만약 내게 어느 눈먼 대통령이 “김 교장,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나 차관을 맡아 우리나라 교육을 위해 한번 멋진 일을 해보시오.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은 제 임기와 함께할 것입니다.”하고 멋진 제의를 해왔을 때 나는 당연히 얼른 거절해야 할 것입니다. 평생을 연구하여 심오한 논리가 가득한 저서로써 추앙을 받아온 학자도 그 자리에 앉으면 ‘내가 언제?’ 하듯이 논리 ABC에도 막혀 한심한 수준의 교육문제에 묶여 허둥대는 꼴을 보면서도, 그런 분 가까이 가기는커녕 걸음마 수준에도 못 미치는 내가 그 자리에 앉으면 아직 할일 많은 이 나라 교육을 어떤 꼴로 만들겠습니까. 그러므로 대통령의 그 전화를 받는 그 순간 나는 어떤 말로 거절하는 것이 멋진 거절이 될까요. 그런 생각이라면 좀 해봐도 괜찮은 일 아닐까요?

 

“제가 그 일을 감당해낼 수 있겠습니까?”

“능력이 부족하므로 잠깐만 해보는 건 몰라도 대통령님 임기까지는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부정비리나 뭐 그런 데 걸리면 저는 도저히 요리조리 빠져나갈 수 있는 설명을 할 자신이 없습니다.”

“초등학교 교장이 맡으면 대학교수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

 

수많은 대답이 예상되는 그런 경우를 당하여 이렇게 거절한 인물이 있습니다.

“정부(내각)에 들어가 나를 희생할 시간이 없어요.”

 

올해 29세인 프랑스 여성 탐험가 모 퐁트누아MaudFontenoy가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으로부터 청소년 담당 정무직(어떤 신문은 장관이라고 보도하고, 어떤 신문은 차관이라고 보도하였으나 사실은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요) 제의를 받고 그렇게 거절한 것입니다. 퐁트누아는 2003년에 노를 저어 대서양을 횡단한 것을 시작으로, 2년 뒤 역시 같은 방법으로 태평양 횡단에 성공했으며, 올해에는 151일 만에 남반구 일주 기록을 세운 탐험가로, 지난 7월 사르코지 대통령으로부터 레종 드뇌르 슈발리에 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답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러한 퐁트누아가 청소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여 그러한 제안을 한 것인데 나라 일을 맡을 시간이 없다고 거절하였고, 르 파리지앵과의 인터뷰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들을 했답니다.

 

“내 삶의 비망록은 자서전 출간과 나의 전 세계 탐험기록을 담은 다큐멘터리 제작, 방송 프로그램 등으로 이미 꽉 차 있다.”

“정무직을 맡지 않고도 청소년에 대한 나의 관심과 관련 업무에 대한 참여는 계속될 것이다. 그것은 헤드라이트가 나를 향하지 않더라도 계속될 것이다.”

“21세기 이래로 나는 어려움에 처한 청소년을 돕는 단체를 통해 활동해 왔다. 그리고 나에겐 (정무직보다) 우선 순위가 다른 데 있다.”

 

장차관을 지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일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사는 프랑스는 참 희한한 나라인 것 같습니다. 그런 일이라면 어떠한 수모를 당해도 좋을 텐데……. 프랑스 사람들도 다 그런 게 아니라면 퐁트누아는 참 바보 같은 여성이군요. 줄을 선 다른 사람들이 기다릴 테니까 사르코지의 임기와 함께하지 않더라도 아직 방년 29세이니 잠깐만 맡으면 죽을 때까지 수십 년을 평생 “장관님!” 소리 들으며 연금 받아 떵떵거리고 살 수 있을 텐데……. 또 물러난 후에도 어느 대학 총장도 맡을 수 있고, 얼마든지 대접 받으며 잘 살 수 있을 텐데……. 에이 한심한 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