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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강의를 하려고 더러 출장을 다니며

by 답설재 2007. 11. 2.

 

저는 오랫동안 교육부의 교육과정․교과서 정책, 역사왜곡대책 등을 맡아서 자주 출장을 다녔습니다. 대체로 교원들에게 강의를 하거나 담당자들이 모인 회의를 주관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습니다.

 

그런 경력 때문인지 교육부를 떠난 지 3년이 훨씬 넘은 요즘까지도 더러 강의를 하러 다니고 있습니다. 때로는 ‘이제 그만둘까?’ 싶기도 하고, 거절할 수 있으면 거절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교육현실이 정체적이라고 판단되는 점을 생각하면 ‘그래, 내 생각을 알려주자’ 싶어서 용기를 낼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경우의 대부분은 학교교육과정의 구성과 운영, 교과서 편찬방향이나 제도개선 등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좀 주제넘지만 제가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출장을 다녀본 경험에 의하면, 강사를 맞이하고 보내는 스타일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아주 적극적인 스타일을 이야기해보면, 미리 몇 시에 어디에 도착하는가를 귀찮을 정도로 물어보고 공항이나 역에 도착하면 쏜살같이 달려와 납치하듯 승용차로 데리고 가고, 강의가 끝나면 식당이나 어디로 에스코트하여 가며, 배웅할 때도 마중할 때처럼 대하므로 결국 종일을 함께해도 몇 걸음 걷지 못하게 하는 아주 극성스러운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출장일 경우 제 승용차를 가지고 간 날은 그들이 실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그런 경우에는 그들이 마중을 나온 장소나 강의 장소, 혹은 식당에서 그 기관의 고위층을 만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런 대접을 받아도 돌아와서 보면 참으로 피곤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이 쓰이고, 그렇게 접대하는 사람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실수를 하지 않게 되니까 그런 하루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주겠습니까.

 

다음으로는, 혹 강사가 ‘부도’를 내면 큰일이므로 몇 시까지 어디에 도착해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전화를 하고 정확한 도착 사실을 확인하며, 돌아올 때는 하급직원이 문간에서 배웅해주는 경우입니다. 더러 배웅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직장이나 집에 돌아와서 아무리 기다려도 잘 도착했느냐는 전화조차 없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이 필요해서 나를 불렀는데 그렇기야 하겠나.’ 싶었지만 그러한 대접이 아주 자연스럽다는 것을 지난 3년간 여러 번의 경험으로 잘 알게 되었으며, 그러므로 이제는 별로 섭섭하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다니면서 요즘은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하여 시간이 아직 좀 남아 있으면 무슨 구경할 만한 데가 없나 살피면서 시간을 맞추게 되었고, 강의를 마친 시간에도 절대로 식사는 함께 하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것은, 그렇게 하여 혼자 있는 시간에 여러 가지로 마음을 정리하고 금명간 해야 할 일에 대한 구상도 해보는 데 즐거움을 느끼는 제 성격 때문이기도 하고, 행사를 주관하는 이들은 늘 분주하다는 것을 잘 인식하게 된 경험을 떠올리는 습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보다는, 그들은 이제 시골 초등학교 교장인 저를 대단하게 여기지 않아서 제가 그들과 식사까지 함께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매우 귀찮은 일만 되고, 그날 그 시간의 강의 외에 제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다른 도움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저 자신이 잘 알고 있다는 것이 더 분명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제 입장에서 유념할 만한 것으로, 제가 아니어도 강의를 할 만한 인사가 충분히 있겠다 싶은 데는 완곡하게 거절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걸 깨닫지 못하면 결국 설 자리도 판단하지 못한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거절하는 경우가 자꾸 늘어나고 있습니다.

강사를 적극적으로 맞이하고 보내는 그 경우는 교육부나 교육청 같은 기관에 근무하는 경우도 눈에 띄는 특징입니다. 또 교육부의 위탁사업을 수행하는 연구소의 막강한(?) 학자들 쯤이 되겠군요. 그것을 저는 저의 모든 경우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현재의 저에 대한 그들의 대접에 섭섭함을 느낀다면 저는 생각이 짧은 참 한심한 사람일 것입니다. 하나마나한 객쩍은 한마디도 한다면, 저의 이 이야기가 정말인지 아닌지 보고 싶다면 교육부나 교육청에 한번 근무해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도 이렇게 다니면서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들으며,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고 - 그들은 진정성을 지닌 교원들일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며, 가고 싶은 길을 가고 있으므로 아주 자유롭고 낭만적이며 참으로 괜찮은 신세라는 느낌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그처럼 진정성을 지닌 사람들 중에는 제가 그곳에 가서 강의를 한지 오래 되었는데도 두고두고 연락을 하고, 이 블로그도 찾아와 댓글도 남겨서 무덤덤하게 지내는 저에게 인간이 지닌 본성으로서의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며, 그러다가 어느 곳에서 다시 만나면 오랜 친구처럼, 철없던 시절의 옛 연인처럼 따뜻한 눈길을 주고받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