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우리에게 충분한 자격이 있을까요? - 2007학년도 여름방학을 시작하며 -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93

 

 

 

우리에게 충분한 자격이 있을까요?
- 2007학년도 여름방학을 시작하며 -

 

 

 

  오늘은 개학날입니다. 시골에서 보낸 석 달간의 방학은 정말 꿈처럼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아침 어머니는 바렛띠 학교에 나를 데려가 4 학년에 등록시켜 주셨습니다. 난 시골 생각 때문에 학교에 가는 것이 별로 즐겁지 않았습니다. 길마다 아이들이 북적댔습니다. 책가방과 보조 가방, 공책 등을 사려는 부모님들로 두 개의 문방구는 북새통을 이루었고, 학교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수위 아저씨와 경찰관 아저씨는 교문을 가로막지 못하게 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교문 근처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쳤습니다. 3 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었습니다. 빨간 곱슬머리의 선생님은 언제나 명랑하셨습니다.

  "엔리코, 이제 영원히 이별하는 건가?"

  그렇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막상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슬퍼졌습니다.

 

 

  E. 데 아미치스가 지은 『사랑의 학교』는 이렇게 시작됩니다(이현경 옮김, 창작과비평사, 1997). 풍경이 많이 다르지만 지난 3월에 우리도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여름방학식을 하게 되었고, 이 방학을 마치면 2학기가 시작됩니다.


  지금 아이들은 방학식을 앞두고 잠시 담임선생님의 마지막 부탁말씀을 듣고 있는 시간입니다. 그동안 아이들이 드나들던 저 교문, 웬만한 비쯤은 아랑곳 않고 즐겁게 뛰어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저 운동장, 이곳저곳의 계단, 현관, 교실들, ……, 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어느 곳도 정겹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모퉁이를 돌아가면 금방이라도 어떤 애가 "어? 교장선생님이다!"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 학교에 와서 이제 3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한 일을 되돌아보면 아무래도 무슨 큰일을 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돌아다녀 봐도 '이것은 내가 이루어냈구나' 싶은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라도 대어보라 하면 이렇게 대답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의 학창 시절 그 선생님들처럼 아이들을 꽉 잡아 꼼짝 못하도록 해야 교육이 제대로 된다고 생각하는 교사가 우리 학교에는 전혀 없게 했습니다. 잘 살펴보면,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가진 교사, 그런 생각으로 운영되는 학교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잡아야 합니까! 우리가 왜 아이들을 잡아야 합니까! 꼭 그렇게 해야 한다면, 차라리 우리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잡혀야 할 것입니다."


  그런 눈으로 보면, 우리 학교 860명 아이들은 860가지 유형의 개성으로 구분할 수 있고, 그래서 그 860명 중에 한심한 아이는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강압적으로, 혹은 획일적으로 가르쳐야 할 것은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방학이므로 부모님들께서도 한번 잘 살펴보십시오. 제 눈에는 그렇게 사랑스럽지만 부모로서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면 부모님의 그 관점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십시오. 그렇다고 방학동안 이 아이들의 응석을 잘 받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아닙니다. 엄하게 하실 때는 철저히 엄하게 하시고, 언제나 안전한 생활을 하게 하시고, 밖에 나가서나 집에서나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게 하시고, 게으름이 습관이 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좀더 이야기하면, 담임들이 제시한 과제를 충실히 하면서도 이 여름을 통하여 무언가 한가지씩은 자랑할 만한 공부를 꾸준히 하여 그 일에서만큼은 '박사님'이 되게 해주십시오. 오늘 당장 그 계획을 구체화하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하시면서, '나는 부모로서 아이를 제대로 돌보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우리 교사들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우선 사흘 간은 함께 모여 1학기간의 교육활동을 평가, 반성해보고, 그런 다음에는 좀 자유로운 개별활동을 하면서 2학기 계획도 세울 것입니다. 아, 곧 방학식을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사랑의 학교』마지막 부분은 이렇습니다. 저는 오늘 전교생에게 그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안녕, 가르로네." "안녕, 다시 만나자."
  친구들은 가르로네를 만지거나 손을 잡았고, 용감하고 착한 가르로네를 기쁘게 해주었습니다. 가르로네 아버지는 몹시 놀란 채 그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나는 가장 마지막으로 가르로네를 껴안았습니다. 그 애와 포옹하면서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습니다. 그 애가 내 이마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런 다음 난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버지가 내게 물으셨습니다.
  "친구들과 작별 인사 나누었니?"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네가 누군가에게 잘못한 일이 있으면 그 애에게 가서 용서를 구하고 잊어 달라고 말하렴. 그런 아이 없니?"
  "없어요."
  "그러면 이제 작별이구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학교를 한번 쳐다보시더니 감동 어린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도 "안녕!"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2007년 7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