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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우리의 영재교육에 대하여 - 행복한 삶에서 영재가 나오지 않을까요? -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94

 

 

 

우리의 영재교육에 대하여
- 행복한 삶에서 영재가 나오지 않을까요? -

 

 

 

우리 학교는 해마다 네 번씩 학업성취도평가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성가시고 분주하기는 해도 선생님들이 출제한 문항을 살펴보면서 그 시험지를 받아든 아이의 입장으로 답을 해봅니다. '난이도가 유지되고 있는가?' '품위 있는 질문인가?' '답하기 좋은가?' 같은 여러 가지 관점으로 분석해야 하므로 딱딱한 일이기는 하지만 출제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서 재미있기도 하고, 문제가 영 풀리지 않아 답답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슬쩍 정답지를 보고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갑니다.


때로 마음에 들지 않는 문항이 있으면 "이 문제는 이러저러한 단점이 있으므로 새로 출제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예를 들면, "다음 중 실뿌리가 가장 많은 식물은 어느 것입니까? ① 질경이, ② 강아지풀, ③ 민들레, ④ 쑥부쟁이, ⑤ 봉숭아"와 같은 문제입니다. 저는 이런 문제를 보고, "그러지 말고 뿌리까지 잘 그려진 그 식물들의 그림을 제시해주는 것이 차라리 더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렇게 해주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꼭 그렇게 해주라는 뜻도 아닙니다. 말하자면 단순한 기억을 테스트하는 문제는 출제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기억력이 좋은 사람은 분명히 더 편리하기는 할 것입니다. 그러나 공부라는 것이 기억력을 강화하는 활동일 뿐이라면 공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이겠습니까. 또한 우리가 교육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입시에 물든 영재교육… 제 역할 못해」라는 제목의 신문기사를 보았습니다. 그 기사는 '국내 영재교육이 입시교육에 물들면서 정작 필요한 창의력 교육은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현재의 영재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교사들에게 물어본 결과 '문제해결력'은 길러주지만(응답률 58%), '창의력'은 길러주지 못한다(67%)는 반응을 보였는데 그 까닭은 영재교육이 위 학년에서 배워야 할 문제들을 미리 푸는, 이른바 '선행교육' 위주로 진행되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조선일보, 2007. 7. 25., 12면).


저는 그 기사를 보면서, 그렇다면 굳이 우리 아이들을 영재교육기관에 보내기 위한 궁리나 노력을 할 필요 없이 어디 인근 학원에 보내어 일찌감치 선행교육이나 실컷 시키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영재교육이란, 제대로 된 판단에 의하면 결국 문제해결력보다는 창의력을 기르는 데 그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겠지요. 영재가 문제나 척척 풀어내는 인물이라면 그에게 이 세상을 바꾸어 가는 일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창의력을 길러주어야 한다는 명제는 그리 간단한 과제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우리 교육계의 커다란 숙제가 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각 교육기관이나 학교에서는 해마다 창의력을 기르기 위한 교육계획을 세우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계획이라는 것이 대체로 각 교과 학습과는 무관한 프로그램의 개발에 치우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한심한 일입니다. 아이들은 아침에 등교하여 1교시부터 마지막 시간까지 각 교과 공부나 재량활동, 특별활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마련인데, 그러한 프로그램을 언제 지도하자는 것인지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런 프로그램이 필요한 곳은 아마 시중의 학원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제 생각은 각 교과 공부를 창의적으로 하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교실에 들어가서 초파리의 모습을 관찰하는 과학 시간을 지켜보다가 초파리의 모습이 대충 그려진 위에 아이들이 세세한 부분을 그리도록 되어 있는 교과서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흡사 중학교 학생들이 문방구점에서 팔고 있는 앞치마 만들기 재료를 사다가 그 재료들을 이어주기만 하면 앞치마가 되는 그 한심한 행위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도대체 교과서가 다 이렇게 되어 있다면 우리는 창의력 교육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초파리의 모양을 현미경으로 자세히 관찰한 아이들이 자신이 관찰한 결과를 마음대로 그릴 수 있게 해 주어야 제대로 된 과학 교육, 창의력 교육이 이루어질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창의력 교육을 제대로 하려면 우선 각 교과별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창의적으로 생각하게 할까, 고민하면서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하자면 교과서도 지금보다 더 잘 만들어야 하고, 선생님들도 좀 느긋한 마음으로 아이들이 생각할 시간을 넉넉하게 주고 그 생각을 마음놓고 발표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주어야 합니다.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조바심 내지 말고 내 아이의 개성이 발휘되도록 지켜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어머님께서 요즘은 부모가 대신해주어야 하는 과제를 내지 않아서 참 좋다고 했습니다. 더 편해졌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어른이 대신해주고, 일일이 독촉하고, 다른 아이와 비교하면서 쫓아가게 하면 우선은 보기 좋고 안심이 될지 모르지만 아이의 삶이 행복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불행한 생활 속에서 영재가 나오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지금도 잘 지내는 것입니다.

 

 

2007년 7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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