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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엄마 책임 아빠 책임 - 온 세상에 흩어져 있을 우리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95

 

 

 

엄마 책임 아빠 책임
- 온 세상에 흩어져 있을 우리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

 

 

 

더러 휴가를 내어 자녀와 함께 이곳저곳 돌아다니실 학부모님들이 생각나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어린이박물관에는 모니터 화면 버튼으로 조작하는 전시물이 있는데, 한 아이가 20분이 넘게 작동하고 있자 순서를 기다리던 다른 아이의 엄마가 "웬만하면 그만 좀 하라"고 채근하였고, 그러자 그때까지 작동하고 있던 아이의 엄마가 "체험학습인데 충분히 해야 맞는 거 아니냐?"고 맞서 결국은 서로 "자식 교육 똑바로 시켜라!"고 얼굴을 붉히며 다투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박물관 직원이 싸움을 말리자 "당신은 지금 누구 편을 드느냐?"며 억지를 부리기도 하더랍니다(조선일보, 2007. 8. 8, 20, 곽신숙, '똑같은 엄마 마음… 남의 아이도 내 아이처럼'). 그쯤 되면 시쳇말로 '갈 데까지 간 것'이며 교육이고 뭐고 엉망이 되고 만 것이 아닐까요? 그런 부모는, 미안하지만, 앞으로는 자녀를 데리고 다니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입니다(제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우리 학교 학부모 중에는 '당연히' 그런 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앉아서 이야기만 들으면 우습지만 실제로는 언제 어느 곳에서나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그 자리에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① 이쪽이 쉬운 상대로 보이지 않도록 처음부터 '쎄게' 나가 당장 양보하게 만든다. ② 그 박물관 관장이나, 관장이 없으면 고위층을 찾아가 이런 일로 돈을 벌려면 당장 관람 방법을 개선하고 앞으로 주의하라고 닦달한다. ③ 기분이 상했을 것이므로 집어치우고 집으로 돌아온다. ④ 아이싸움이 어른싸움이 되므로 자녀를 시켜 그놈과 한번 끝까지 대결해보게 한다. ⑤ 그렇게 애를 태우고 있다가 기어이 그 체험을 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그 아이의 행동에 대한 내 아이의 의견을 물어보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훌륭한지 이야기해본다. ⑥ 기타(나에게는 김 교장이 생각하지 못한 다른 방법이 있다.)


일전에 어떤 전광판에서 '여드름은 병균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도 다 유전'이라는 판정이 났다는 걸 보았습니다. 의학이 발달할수록 질병이나 행위, 태도 등은 유전에 의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으므로 좋은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유전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사실은 (이러한 생각은 비과학적이므로 믿을 만한 근거는 하나도 없지만) 여드름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 거의 모든 것에 크건 작건 유전적인 요인이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유전의 힘을 무서워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가령 우리가 자녀의 어떤 이상행동 때문에 의사나 학자를 찾아가 해법을 찾는다고 가정할 때 '도대체 이놈에게 어떤 단점이 있나 알아보자'는 생각을 가지면 참 건방진 일이므로 '도대체 나는 어떤 단점을 가지고 있어 내 자녀가 이런 행동을 하나?'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단언합니다. 그리고 내 자녀의 많은 부분이 유전에 의해 결정되고, 그것보다는 훨씬 적지만 알게 모르게 그 자녀에게 보여주는 나의 모든 것에 의해 내 자녀가 결정되며, 또한 그것보다는 더욱 적은 부분이 학교나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을 통하여 결정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그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 박물관에서 다투었다는 분들은 이미 유전적으로 그 날 그곳에서 싸우게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처구니없는 결론입니까?


유전에 대한 의학적 소양은 없지만 교육적으로는 저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그 요인을 찾는 것이 오히려 비과학적이며 거의 모든 요인이 바로 그 부모에게서 결정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내 자녀를 잘 가르치면 그 다음 세대에는 훨씬 훌륭한 요인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고, 그것은 또한 내가 내 자녀를 잘 가르치면 나의 그 자녀는 출발에 비해 훨씬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며, 교육이란 결국 좋은 유전요인을 조장해주거나 좋지 않은 유전요인을 억제할 수 있는 참으로 소중한 일이어서 사실은 세상의 어떤 요술보다 신기하고 놀라운 결과를 나타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저러나 유전적으로 싸우게 되어 있었던, 그리고 그러한 사고방식이나 태도를 그들의 자녀들에게도 잘 전해준 그날 그 두 학부모의 싸움은 어떻게 결말이 났을지 궁금합니다. 세상에 못 고치는 게 없을 정도로 성형술도 발달하고 어떤 학원에서는 단기간에 실력을 올려주는 방법도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당장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내 자녀의 인간관계에 대한 태도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다른 건 몰라도 절대로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유치원에서부터 철저히 가르친다고 합니다. 그들의 어떤 책에는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무사도는 지식을 위한 지식을 경시했다. 지식은 최종 목적이 아니라 지혜를 얻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이 목적에 도달하기를 포기한 자는 타인의 요구에 따라 시나 격언을 지어주는 편리한 기계에 불과하다고 여겼다."(니토베 이나조, 양경미·권만규 역, 『사무라이』, 생각의나무, 2004, 27). 그렇기에 사마광은 덕과 재주를 모두 갖춘 사람을 '성인'이라 하고, 재주만 갖추어 나쁜 짓을 할 소질을 갖춘 사람을 '소인'이라고 했답니다.

 

 

 

2007년 8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