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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선생이라는 작자가 아이를…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97

 

 

 

  선생이라는 작자가 아이를… 

 

 

 

 

  학력이라야 초졸, 중졸, 잘해야 고졸인 초등학교 동기생 모임에 나가면 친구들이 대뜸 이렇게 나온다. "야 인마! 교육부, 왜 그래, 응?" 사실은 물음도 아닌 그 불평·비난에 "만나자마자 또 왜 이래?" 하면 그때마다 불평·비난거리가 달라진다. "선생이라는 작자가 아이를 두들겨 패서 또 신문에 났잖아!"

 

  그럴 때 나는 있는 지식 없는 지식 총동원하여 변호하고 설명하고 설득하던 그 작전을 다 팽개치고 아무 말도 않는다. 대답해봤자 신통한 반응을 얻기가 어렵다. 어떤 장소에서, 몇 센티미터짜리 회초리로, 어느 부위를, 몇 대 때려주라는 규칙을 정하게 했다거나 이번에는 대법원까지 나서서 교사의 체벌이 어떤 경우에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지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고 하면 "그 참 잘했네." 하고 물러설 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제가 쓴 책 『보고 읽고 생각하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의 서문에서 옮겨보았습니다. 사실은 저는 체벌의 긍정적 혹은 부정적 효과에 관한 신념이나 교육철학 같은 걸 갖고 있지 않습니다. 때로는 좀 때려주는 게 나은지 어떤지를 모른다는 뜻입니다. 다만, 좀 때려주어야 할 만큼 절실하다면, 그만큼 속상하다면, 실컷 때려주고는 그 아이와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면 때려도 좋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새로 우리 학교에 오는 선생님들 중에는 아이들은 좀 잡아놓고 가르쳐야 한다느니 어떠니 하다가 이내 제 생각이 그렇지 않은 걸 확인하고는 그 생각을 버리는 걸 보며 '학교문화'라는 건 참 중요하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최근에 온 그 선생님들께 우리 학교에서 받은 인상이 어떤 것이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제가 직접 물었으므로 저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경우가 있는 걸 양해하여 주십시오.

 

"협의회를 통해서 의사결정을 한다. 그 협의회에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한다 해도 학교 교육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K 교사)

 

"오랜만에 아이들에게 전념할 수 있는 학교에 온 것을 고마워하고 있다."(위의 K 교사)

 

"교육과정 운영을 제대로 하다보니 교사와 학생, 모두 늘 바쁘다."(W 교사)

 

"위로부터 지시 전달을 일삼지 않고, 교장이 교사들을 믿고 맡기는 것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L 교사)

 

"교실이 조립식이고, 창문도 안전 문제로 일부가 폐쇄되어 있고, 에어컨 가동이 어려워서 너무 덥다."(위의 L 교사)

 

"형식적이고 보여주기 위한 교육을 하지 않고 어린이를 위한 교육을 하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하고 그만큼 더 열심히 가르칠 수 있다."(위의 L 교사)

 

"개성을 존중하고 창의성을 키우는 교육, 보여주기 위한 것보다 내실을 기하는 교육,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마음껏 제공하는 교육, 학부모들의 참여 기회가 많은 교육, 교직원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학교생활이 즐거운 교육을 하고 있다."(C 교사)

 

"교장을 만나면 만날 때마다 정이 드는 것 같고 그에게 의지하고 싶어진다. 그는 아이들을 친손자 다루듯 하여 그런 장면에서 가슴이 뭉클해진다."(K 교사)

 

"아이들이 마음 편하게 교장의 옆에 가도 괜찮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다른 K 교사)

 

"어린이들이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고 있으므로 자신감이 넘치고 활기차다"(S 교사)

 

"어린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고 창의적이다. 토론을 하면 대립되는 의견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의견을 적절히 통합하는 창의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또 음악시간 같으면 가야금과 바이올린 등으로 퓨전음악을 발표하기도 하고 작곡을 하여 선보이는가 하면, 더 놀라운 것은 교과서에 있는 노래를 부르면서도 발표하는 어린이나 듣는 어린이들이나 부끄럽다거나 잘 못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어느 학부모는, 전학 오기 전의 학교에서는 한글도 잘 못 읽는다고 따돌림을 당했는데, 여기 와서는 그런 일이 없다고 했다.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사고가 어린이들에게 '다름을 인정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P 교사)

 

"나는 행정직이니까 법규에 비추어 문제가 없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일했으나 이 학교에 와서 비로소 교사들과의 의사소통, 아이들을 생각하게 되었다."(행정실 L) 

 

전에도 말했지만, 제가 자랑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이러한 분위기, 우리 아이들의 이러한 모습입니다. 배움과 생활에 적극적이고 사고와 활동이 자유롭고 창의적인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사는 걸 좋아하는 선생님들, 그러면 됐는데 무얼 두들겨주고말고 하겠습니까.

 

우리 학교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빼면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는 학교입니다. 그러나 무슨 평가와 대회는 수없이 많이 실시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직까지는 그것을 자랑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습니다.

 

방학중이라 하도 심심하여 교무실에 올라갔다가, 미국에서 살다가 귀국하여 우리 학교에 자녀 둘을 3년간 취학시킨 적이 있는 어느 어머님을 만났습니다. 애들 아빠의 직장이 일산이라서 지금은 여의도의 Y초등학교에 다니는데 '그 학교는 아이들이 질문을 하지 않는 학교'라고 묻지도 않는 걸 이야기해주며 이 학교를 떠난 걸 못내 아쉬워하였습니다.

 

딱 한 가지만 말하면, 우리나라 학교는 아직도 '정답을 찾아 그것만을 대답하는 훈련'에 치중하고 있지만, 하루속히 '의견을 말하고 질문하는 학교'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우리는 다른 건 다 집어치우고 그것에 온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2007년 8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