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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노는 것을 공부처럼, 공부를 노는 것처럼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96

 

 

 

노는 것을 공부처럼, 공부를 노는 것처럼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문경 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약산 동대 진달래꽃은 한 송이만 피어도 모두 따라 피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나 돌아간다 내가 돌아간다 떨떨거리고 내가 돌아간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치어다보느냐 만학은 천봉 내려굽어보니 백사지로구나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만경창파 둥둥 뜬 저 배야 저기 잠깐 닻 주거라 말 물어 보자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이야기를 하려니까 우리의 '진도아리랑'이 생각납니다. 저는 자라면서 "나는 장차 무엇이 되고 싶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더러 변하기는 했지만 저에게도 해보고 싶은 일에 대한 욕구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걸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고, 그런 '한가한(?)' 이야기를 할 겨를도 없는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드디어 오십이 된 어느 날, 우연히 국악강좌를 들었는데 그 강사가 불러주는 저 '진도아리랑'을 들으며 '아, 나는 다시 태어나면 국악을 하고 싶다!'는 강하고 때늦은 욕심을 느꼈고, 당장 누군가에게 난생 처음 그 말을 해보았습니다. 그걸 하면 삶이 고달프지도 궁색하지도 않고 물처럼 구름처럼 그렇게 흘러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동래학춤을 복원한 문장원 옹(동래야유보존회장)이 국립국악원에서 '노름마치뎐 긔 첫판'을 공연한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 기사는 '노는 게 곧 춤, 춤이 곧 삶, 동래학춤 90세 대가 마지막 춤사위 뽐낸다'는 제목아래, 주름이 많고 깊은 한 노인이 두루마기를 걸치고 춤을 추는 사진의 예사롭지 않은 표정 때문에 눈에 띄었습니다. 그는 동래고등보통학교에 연거푸 두 번을 낙방한 뒤 난봉꾼으로 살다가 외판원, 일본에서의 징용 생활, 세무서 직원, 회사 임원 등으로 전전했지만 끝내 '동래야유東萊野遊(탈을 쓰고 추는 부산 고유의 춤)'를 복원시키고 1965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아 이 춤이 무형문화재 18호로 지정받게 한 장본인이 되었답니다. 그는 또 '동래민속연구회'를 탄생시키고 '동래민속관'을 만들었으며 '동래지신밟기'도 복원했답니다. 시나위 가락에 맞춰 엇박으로 뒤뚱거리는 춤새는 아무도 흉내를 낼 수 없을 정도로 워낙 즉흥 춤의 대가여서 한 평론가는 그를 가리켜 "구순의 텅 비운 몸으로 여백의 공간을 채우는 한 폭의 세한도歲寒圖(註 ; 추사 김정희 선생의 저 세한도!)"라고 극찬한 바 있답니다(중앙일보, 2007. 8. 7. 16).

 

다 짐작하시겠지만, 우리 아이들도 그 문 옹처럼 입시에 실패하거든 한량으로 살더라도 그냥 두자는 이야기는 꿈에라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노는 것을 일처럼, 일을 노는 것처럼' 살아왔다는 그의 생활관 혹은 인생관은 우리가 본받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하는 일의 즐거움을 따지기보다는 한시도 잊지 않고 '내가 이 일을 해야 돈을 받는다.' 혹은 '나는 이 공부를 해야 칭찬 받는다.'며 지낼 수밖에 없다면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하고 한심한 것이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우리 아이들이 공부에 재미를 느끼고 몰입하게 하는 지도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실제로 학부모들이 담임으로부터 듣기 쉬운 말은 대부분 "댁의 자녀는 집중력이 좀 모자란다."는 내용이기 십상이며 학부모들의 하소연도 거의 "우리 집 아이는 끈기가 없어서……."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런 아이들을 잘 다루는 방법이 있다면 교육자들이 전문가 행세를 하기에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왔으며, 그러나 별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에서 우리 교육자의 입장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기야 그렇기 때문에 교육이 어렵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해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그렇기 때문에 교육에 대해서는 누구나 아는 체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집중력이 부족한 아이들의 행동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그 대책을 제시해주는 곳을 찾는 학부모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가 못하는 것을 해결하는 전문가들이 있다는 데 대해 당혹감과 자책감을 느끼지만, 아직은 그들이 제시하는 그 특별한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이라고 별 수야 있겠습니까. 그 전문가들이 제시할 수 있는 대책은 아마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게 하라" 혹은 "해야 할 일이라면 그것을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해주라"는 것 두 가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해줄 수 있다면 집중력을 나타내지 못할 아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행복하지 않은 고위직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있는 여러 분야의 행복한 전문가들이 '뜨는' 세상임을 TV나 신문에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학교에 근무한 적이 있는 행정실 직원이 오랜만에 저를 찾아왔기에 자녀가 잘 지내는지 물었더니 "방학이라고 사 준 5권짜리 역사책을 몇 시간도 좋고, 하루에 한번씩 꼭 읽는다."는 말을 듣고 집중력과 끈기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2007년 8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