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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이런 교과서가 나와야 합니다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98

 

 

 

이런 교과서가 나와야 합니다

 

 

 

저의 교직 생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교육과정 기준과 교과서입니다. 교사 시절에는 교육부의 어떤 편수관이 교과서 내용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에 큰 감동을 받았고, 제가 직접 그 일을 하게 되자 그만 전공까지 바꿀 정도였습니다. 그러므로 교육과정, 교과서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게 되었지만, 남들은 그런 이야기를 별로 듣고 싶어 하지 않으므로 가능하면 자제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한달에 한번 시론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 경기도 어느 지방지에 모처럼 교과서에 관한 글을 보냈기에 그 글을 보여드립니다.

 

 

2007년 8월 21일

 

 

교육혁신 방향정립을 위한 논의

 

 

지난 2월 28일, 우리 정부가 제7차 교육과정을 수정 보완한 ‘2007 개정 교육과정’을 고시한데 이어 일본의 중앙교육심의회(문부과학성 자문기관)는 지난 8월 17일에 이르러 학력신장과 공교육 개조를 핵심으로 하는 새 ‘학습지도요령(일본의 교육과정기준)’을 발표하였다.

 

이처럼 일본과 우리는 교육과정 개정에서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상호간의 경쟁과 발전의 계기가 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교과서 편찬에 있어서는, 일본은 학습지도요령 개정시기와 무관하게 학년별 4년 주기로 검정하는데 비해 우리는 수시-부분 개편체제를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지난 6월 20일에 초‧중등학교 교과용도서의 국정‧검인정 구분 고시를 단행하고 2012년까지 개발을 완료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이번에도 일시-전면 개편을 하게 되었다. 다만, 초등학교 일부 교과와 중등학교 국어, 도덕, 국사 등 일부 교과서까지 국정을 검정으로 바꾼 것을 달라진 점으로 내세울 수 있을 뿐이므로 과연 교육 현장의 개선을 유도하는 교과서가 나올 수 있을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여러 나라 교과서들을 비교해보면 각각 그 나라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 예를 들어 미국 교과서는 내용이 구체적이고 크기도 대규모여서 학생들이 휴대하거나 다 읽고 외우기는 불가능할 것이 당연해보이고, 일본은 비교적 얇지만 아주 정교하고 빈틈이 보이지 않으며, 중동의 교과서는 편집은 단순하지만 재질이 좋고 화려해 보인다. 한편, 이들 교과서와 나란히 놓인 우리 교과서는 다양한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지만 어딘지 모르게 획일적, 천편일률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처럼 교육과정‧교과서 제도가 중앙집권형인 나라는 국정이든 검인정이든 교과서가 교육의 실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며, 교육부 스스로 ‘교과서는 교육과정 운영을 위한 교수‧학습자료일 뿐’이라는 걸 아무리 강조해도 그러한 선언을 그대로 믿는 국민은 거의 없고 교과서를 소중한 원전(原典)으로 생각하고 천자문 외우듯 그 내용을 잘 암기하는 것이 교육이라는 인식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우리 교육의 특징이자 맹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지식기반사회가 무르익고 지식의 획득은 암기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지 오래 되었지만, 그것은 이론일 뿐 교육 현장은 그대로이므로 우리 교육을 ‘붕어빵 교육’이라고 비웃는데도 우리는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교육과정이 바뀔 때마다 “이번에는 지식전달형 교과서를 탈피하여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학습을 유도하는 교과서, 참고서가 필요 없는 탐구형 교과서, 사고력과 창의력을 기르는 교과서를 만들자”고 주장하지만, 매번 그 방향설정은 유명무실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책의 크기, 지질, 색도 등 그 외형체제는 발전했지만, 그것은 형식일 뿐이고 실제로는 학생들이 잘 읽고 암기하면 그만인 교과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주소가 되고 있으므로, 이론적으로는 학생들에게 사고력과 창의력을 길러주어야 한다는 것을 얼마든지 인정하면서 실제로는 교과서의 내용을 잘 암기하면 시험을 잘 보고 좋은 성적을 얻는 이원적인 구조의 질곡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교과서의 내용대로만 배우면 그만이며, 교과서 밖의 것은 배울 필요도 없고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는 교육을 받고 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하여 “그럼에도 학생들은 잘 배워서 우리나라가 발전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한 교육의 결과가 아직은 드러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병폐는 분명히 곧 드러날 것이며, 그날 우리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안타까운 것은, 학자나 교원들은 또 학생들이 읽고 암기해야 할 내용을 담은 교과서를 만들어낼 것이 분명하지만 사실은 그들의 힘만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지식의 전달‧암기 교육은 그 뿌리가 견고하여 어느 한 부분을 고친다고 해결될 수 없고 교육의 전체구조를 바꾸어야 해결될 수 있는 본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교육부나 교육혁신위원회와 같이 그렇게 답습되는 폐단을 개선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기관은 다른 일에 골몰하고 있다. 한국의 교원들이나 교육행정가들이 주변적인 일, 지엽적인 일에 매달리게 하는 것이 조직을 관리‧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데 착안하고 있거나 우리 교육을 혁신할 수 있는 지름길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지도 못하는 것은 아니라면, 교육의 본질추구는 투자와 노력에 비해 성과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