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99
마지막 편지 ⑴
우리는 구름에게, 그 덧없는 풍부함에 대해
어떻게 고마움을 표시할까?
- 정현종,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 『질문의 책』읽기」(현대문학, 2007년 7월호)에서 -
이제 마지막 편지입니다. 2학기 시업식을 마치고 현관이나 복도에서, 교실에서 '고물고물' 아이들이 오고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화창한 날의 바지런한 개미 떼 혹은 외포리 그 해안의 자유로운 갈매기들처럼 보이기도 하고, 전선 위에 모여 앉아 재재거리는 새떼처럼 정다운 모습들이기도 합니다. 무얼 그렇게 즐거워할까요, 저는 가야 하는데…….
이 더위가 물러가면 곧 저 '해오름길'의 가로수나 교정의 활엽수들이 하루가 다르게 다시 다른 고운 빛깔로 그 싱그러움을 바꾸어가겠지요. 그러고 보니 새로 심은 저 단풍나무가 붉었던 지난 가을 그 아래에서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둘 걸 그랬습니다. 아이들은, 잎 떨어진 날에도 교문 언저리나 운동장 건너편에 심어놓은 상록수들을 바라보며 지내면 될 것입니다.
이 학교에서 지낸 3년은, 이제는 별일도 일어나지 않을, 그래서 쳐다보는 사람도 없을 제게 지워지지 않는 노스탤지어가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함께한 시간에 대해 혹 관심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은 끝없는 사연이 있을 것 같은 가슴으로 혼자서 이곳을 이야기하며 지내게 될 것입니다.
고백하건대, 여러분께서 저를 한없이 믿어주시는 걸 모르는 척하고 지냈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저곳에 김만곤 교장이 있으니까' 하시며 자녀를 맡겨놓으신 그 마음을 제가 왜 몰랐겠습니까. 멀리 다른 나라에서, 강남에서, 분당에서, 남녘의 어느 곳에서…… 자녀를 데리고 찾아오신 학부모님께도 특별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 학교에 대한 소문을 들으며 예상하셨던 것보다는 훨씬 초라해 보였을 저의 모습을 대하여 "그 교장선생님 맞으세요?" 하신 그 어머님, "첫새벽에 만난 대리운전사가 '아, 성복동요? 그 동네 초등학교가 요즘 강남에서 유명하던데요?' 하여 자부심을 느꼈다."고 하신 그 아버님, 저의 팬이라며 '오빠' '완소남' 같은 천만 뜻밖의 이름으로 불러주시던 고운 분들께도 감사 드립니다.
좀 말씀드린다면, 이 학교에 올 때는 자칫하면 정신적 공황恐慌에 빠질 뻔했습니다. 10여 년을 광화문의 그 정부중앙청사에서 지내며 한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유치원, 특수학교에서 '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평가할 것인가'의 기준을 정하고 관리하는 교육과정 정책, 그 모든 학교의 학생들이 배울 교과서를 만들어 공급하거나 선택하게 하는 교과서 정책, 중국·일본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는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왜곡을 바로잡는 정책을 담당하여 전국의 교육청, 연구소, 대학, 출판사, 관련 정부기관·단체 등을 상대로 일하면서 밤낮 없이 그곳 광화문의 차량행렬이 쏟아내는 소음을 파도소리처럼 들으며 지냈기 때문에, 성복동 이 골짜기와 구릉은 지나치게 조용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진달래, 개나리가 피거나말거나 폭우가 쏟아지거나 눈 내리는 날에도, 온 서울 시민이 해운대로 몰려가도, 설악산 단풍이 신문 1면과 저녁 9시 뉴스 화면을 물들여도, 벚꽃 지는 밤이나 안개 낀 밤, 달빛 가득한 밤에도 그 사무실을 지켰으므로, 이곳에 와서 맞이한 송화松花가루 날리던 그 아침나절의 뻐꾸기 울음이나, 가을날 아침 제가 출근한 줄도 모르고 그때까지도 울어대던 귀뚜라미는 참으로 새삼스러웠습니다. 내다보면 제가 참견할 일도 없는 물품조달용 차량이나 다녀가고 창 너머로 할 일 없는 고추잠자리만 날아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저 낭랑한 웃음소리들, 동동 떠서 날아다니는 재잘거림, 책걸상 바로 놓는 정겨운 소음,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그 미소와 그 순수가 아니었으면, 또한 저들에 대한 저의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사랑, 저로서는 어쩔 수 없고 숨길 수도 없는 그 사랑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제가 참고 살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제가 만약 시인이라면 이 아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시를 바쳐야 할 것입니다.
천지무획(天地無劃)
박재삼(1933~1997)
나를 하염없이 눈물나게 하는, 풀잎 촉트는 것, 햇병아리 뜰에 노는 것, 아지랑이 하늘 오르는 그런 것들은 호리(註 ; 毫釐, '매우 적은 분량’을 비유)만치도 저승을 생각하랴. 그리고 이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아주 이들을 눈물나게 사랑하는 나를 문득 저승에 보내 버리기야 하랴.
그렇다면 이 연연(戀戀)한 상관(相關)은 어느 훗날, 가사(假使) 일러 도도(滔滔)한 강물의, 눈물겨운 햇빛에 반짝이는 사실이 되어도 무방한 것이 아닌가. 얼마 동안은 내 뼈 녹은 목숨 한 조각이, 얼마 동안은 이들의 변모한 목숨 한 조각이, 반짝인다 하여도 좋다. 혹은 나와 이들이 다 함께 반짝인다 하여도 좋다.
그리하여 머언 먼 훗날엔 그러한 반짝이는 사실을 훨씬 넘어선 높은 하늘의, 땅기운 아득한 그런 데서 나와 이들의 기막힌 분신(分身)이, 또는 변모(變貌)가 용하게 함께 되어 이루어진, 구름으로 흐른다 하여도 좋을 일이 아닌가.
- 민음사, 1998, 『박재삼 시선집 ①』에서 -
2007년 8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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