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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이 나라 교육자로서 가장 한탄스러운 일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91

 

 

 

이 나라 교육자로서 가장 한탄스러운 일

 

 

 

2008학년도 대입 내신반영비율에 대한 교육부와 대학들 간의 의견 차이로 인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처음에 교육부에서 올해 당장 50%까지 높이라고 했을 때는, 이것은 복잡한 논리를 내포한 매우 수준 높은 교육정책문제이려니 했는데,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는 의견이 나오고 '그럼 올해는 우선 30%까지는 반영해야 한다'는 교육부의 발표를 보게 되자, '이제 매우 단순한 수치 문제가 되었구나.' 싶은 느낌을 주기도 했습니다. 대학 측에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을 9등급으로만 매기겠다는 정책은 이미 확고하게 결정된 사항이므로 대학 자체의 학생 선발 방법에 의한 평가의 비중을 높이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을 지켜보며 참으로 민망하고 답답하였습니다. 그것은, 교육의 발전이 이러한 제도로써 좌우될 수 있다는 교육부나 대학들의 논리가 그렇습니다. 제가 오히려 답답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도 그 수능이나 내신의 본질 문제는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지난번 수능에 출제된 이러저러한 문항은 수준이 높다, 이러한 문항이 우리 교육현장을 변화시킬 수 있다', '반면 이러한 문항은 여전히 지식주입식교육을 유도한다'는 논의도 없고, '내신은 이러한 방법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학교의 학생평가문항은 그 수준을 이러저러하게 높여나가야 한다'는 논의도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루만의 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하기보다는 평소 성적을 보자는 방법은 분명히 바람직합니다. 만약 그 내신이라는 것의 취지가 제대로 실현된다면 30%, 50%가 아니라 그 내신만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해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혹 그런 문제는 이야기해봐야 뾰족한 수가 없으므로 아예 포기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럴수록 그것은 중요한 과제일 것입니다.


이웃 일본이나 중국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도 지금 우리처럼 시끄러우면 다행이겠지만, 우리만 이러고 있다면 그들이 속으로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그들이 이러한 문제를 이미 극복했다면, 우리는 그 요인을 교육방법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들은 이미 지식주입식교육의 폐단을 극복했으므로 이러한 문제 또한 극복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고 있을 것입니다.


초라한 수준이지만, 그러나, 일생을 교육만 생각하며 살아온 이 나라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가장 한탄스러운 일은, 우리는 말로는 창의성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실제로는 아직도 기억에 의존하는 암기교육에 매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컴퓨터와 각종 기기의 보급에 의해 수업의 형태만 다양해지고 실제로는 시험에 출제될 내용을 강조하고 외우게 하는 고답적인 일에 치중하여 아이들의 저 교실은 아직도 '질문하는 교실'이 아니라 교사의 물음에 정답을 찾아 '대답하는 교실'로 남아 있습니다. 국가·사회적으로도 충분히 용인되고 있는, 특히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한 입시위주의 교육은 이러한 현상의 극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식주입식교육' 하면 당장 떠오르는 것이 저의 초기 교사시절입니다. 그때는 모든 것을 참 열심히 가르쳤지만 우리 반 아이들의 일제고사 성적은 '죽어라' 하고 오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아챈 사실은, 선배교사들은 그런 것은 아예 가르치지도 않고 오로지 시험에 출제될 만한 요점만 외우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탐구수업' '창의성교육'의 중요성이나 필요성을 알게 되었지만, 우리 교육은 그런 수업이론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런 수업이 거의 불필요한 체제여서 평생을 이론과 실제의 차이 속에서 갈등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교과서의 내용을 잘 암기하면 시험을 잘 보는 현실에서는 거의 소용이 없는데도 이 아이들, 이 나라의 장래는 사고력, 창의력 같은 고급스런 능력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는 확신만 갖고 살아온 것입니다.


E. H. 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육은 개인의 능력과 기회의 확장을 촉진시키고 따라서 개별화를 증대시키는 필수적이고도 강력한 하나의 도구이지만, 동시에 이익집단의 손아귀 안에서는 사회적인 획일성을 촉진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역사란 무엇인가』, 까치, 1997, 214쪽). 그러나 우리의 지식주입식교육은 그런 의도를 가진 것도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는 이미 200년 전에 피히테가 암기교육의 폐해를 지적한 것이 절실한 호소가 될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전혀 관계도 없고 거의 흥미도 없는 사물과 그 특성을 가르치는 것은 그들의 고뇌에 대한 대가로서는 결코 유익하지 않다."(『독일국민에게 고함』, 범우사, 1994, 128쪽). 그러므로 저는 우리가 아무런 의지도 없는 상태에서 이처럼 끈질기게 지식주입식교육을 유지하고 있는 까닭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며, 이러한 교육방법이 변화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제 곧 교육자로서의 길에서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이 한탄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가수 '비'를 스타로 키운 박진영은 "비를 키우며 딱 한가지 후회되는 일은 1년만 영어공부를 시켜 데뷔시킬 걸 하는 점"이었다고 했고, "예술분야에서 미래를 향해 투자하라면 학교가 아니라 소년원을 선택하겠다."고 했습니다. 학교와 학원에서 획일적으로 똑같은 것을 배운 아이들에게서는 기대할 게 없다는 뜻입니다(조선일보, 2007. 7. 2. 37면 등). 오죽하면 그렇게 말했겠습니까. 우리 장관이나 대학총장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로서는, 스스로 한심하고 부끄럽습니다.

 

 

2007년 7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