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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저는 이런 책을 읽었습니다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90

 

 

 

저는 이런 책을 읽었습니다

 

 

 

여러 분이 '좋은 책을 소개하는 글도 좀 써라"고 부탁하셨으므로 오늘은 그 답을 써보려고 합니다. 우선 '어떤 책을 읽었느냐?'고 하시면 '어떻게 살아왔느냐?'는 물음과 같고, '어떤 책이 좋은 책이냐?'고 하시면 '너는 어떤 사람이냐?'를 묻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답하기는 영 불가능할 것 같으므로 단편적으로 답하겠습니다. 체계적이지 못하다고 하시겠지만 저는 아무 책이나 읽고, 편협하다고 하시겠지만 대체로 제가 하는 일과 연계하여 해석합니다. 직업을 속이기가 어렵고 나이가 들수록 외길로 가기가 쉬운 것 같기도 합니다. 그것을 말씀드리고 오늘은 20세기 마지막해인 1999년에 읽은 책을 소개하겠습니다.


니시자와의 『암기편중교육에 대한 직언』, 와타나베 쇼이치의 『지적생활의 방법』, 일본에서는 지식주입식교육에 대한 논란이 지속적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논란은 일본에서 찾기가 쉽습니다. E. 라이머의 『학교는 죽었다』, 학교가 정말 죽기야 했겠습니까. 다만 그렇게 보아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이원복의 『나는 공부하러 박물관에 간다』는 음미하였고, 한국역사연구회의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1, 2), 구본형의 『익숙한 것과의 결별』, 매일경제의 『지식혁명보고서』와 『두뇌강국보고서』도 잘 읽었습니다. 『걸리버여행기』, 『로빈손크루소』, 『사랑의학교(쿠오레)』, 아이들은 왜 이런 책을 읽고 있을까요? 『사랑의학교』는 그동안 여러 차례 읽었습니다. 그런 학교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A. 토플러의 『자메리카』, 그의 책은 『제3의물결』처럼 유명한 것도 있고, 일본을 소재로 한 이런 책도 있습니다. 법정의 『무소유』, 꾸준히 팔려서 새로 장정된 책이었습니다. 법정의 책을 읽으려면 겨울이 좋았습니다.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 유익한 내용인 것 같았는데 지금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잘 살라는 것이겠지요. 이 책이 나오자 '몇 가지'라는 제목의 책이 많이 나왔습니다.


『울음이 타는 가을 江』, 박재삼의 시는 쉽습니다. 서울대 필독도서로 선정된 적도 있습니다. 그 시인의 시는 모두 읽었다고 장담합니다. 오탁번의 시도 쉽게 읽혔고, 황인숙의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황지우의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幕에 앉아 있을 거다』는 제목이 멋있어서 읽었습니다. 기형도의 책은 겨울의 기차 안에서 눈시울을 적셨는데, 얼마 전에 그 부분을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움베르트 에코의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 그는 늘 사변적思辨的으로 느껴집니다. 로버트 K. 매시, 『마지막 겨울 궁전』(상, 하), 다른 작가가 쓴 같은 이름의 소설이 있습니다.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스 2세의 이야기인데, 지금도 갖고 있습니다. 다시 읽은 책들 중에는 『史記』(본기, 세가, 열전)도 있고, 성실의 고귀함을 말하는 까뮈의 『시지프의 신화』도 있습니다. 『인현왕후전』은 여러 번 읽었습니다. 다른 출판사에서 그 책을 내면 또 읽을 것입니다. 『페이터의 산문』은 제대로 번역된 책을 찾기가 어려웠고,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내가 사랑하는 여인들』은 국어 교과서에서 조금 읽을 때의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로망 롤랑의 『베토벤의 생애』는 짤막하지만 전기문학의 효시가 되었답니다.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박정희의 『국가와 혁명과 나』도 그때 읽었습니다.


세상에는 재미있는 책도 많습니다. 『접촉』 등 데스몬드 모리스의 책은 인간의 본성을 시시콜콜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의 책을 읽으면 동물과 유사한 몸짓이 혐오스러운데도 왜 우리는 그(그녀)를 사랑하게 되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타우노 일리루시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동행』, 늙고 병들어서 가야만 할 때 그처럼 따뜻하게 가고 싶었습니다. 고미가와 준페이는 무명이지만, 『인간의 조건』(1~5)은 감동적이어서 그동안 두 번 읽었습니다. 아사다 지로(『철도원』) 같은 일본인들은 섬세한 느낌을 주는 소설을 잘 써서 요즘도 우리나라 서점을 풍미합니다. 『로마인이야기』시리즈를 낸 시오노 나나미도 재미있어서 그의 책은 닥치는 대로 다 읽었습니다. 그녀의 책과 함께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戰記』도 읽었습니다. 역사를 소재로 한 재미있는 책은 많습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전쟁 3부작 『콘스탄티노플 함락』등, 크리스티앙 자크의 『람세스』(1~5), 『블랙 파라오』……. 이런 책을 읽은 기억을 더듬어 가면 나에게도 이런 시간이 있었던가 싶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되돌아보면 지금 또한 그렇게 기억될 것입니다. 전기문 형식의 소설,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끝 부분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이제 인생은 내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인생으로부터 더 이상 배울 것이 아무것도 없는지는 잘 모르겠다'.

 

왜 읽는가, 모르겠습니다. 그냥 재미있어서 읽습니다. 글쎄요, 어떤 책에 어떤 길이 있다는 것인지. 좋은 책이 어떤 책인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찾고 있습니다. 한가지 종류만 읽는 것도 싫습니다. 그렇게 읽었다면 저도 무엇이 되었겠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모든 아이를 다 이해하고 싶은 것처럼 모든 것을 다 알고싶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불가능하지만, 모든 책을 다 읽고싶습니다.

 

 

2007년 7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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