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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1

"너 혼자 갈 수 있겠니?"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초등학교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너 혼자 갈 수 있겠니?"

 

 

 

시詩 한편 소개합니다. 왠지 조금 쓸쓸한 것 같지만 그 쓸쓸함을 보여드리고 싶은 건 아니고 '너 혼자'라는 낱말의 이미지가 간절하여 보여드리고 싶어졌습니다. 1, 2, 3 번호가 붙는 시는 흔하지 않지만 몇 번 보면 이상할 것 없게 됩니다.

 

 

너 혼자 - 박상순(1961∼ )

 

1. 너 혼자 올 수 있겠니

2. 너 혼자 올라올 수 있겠니

3. 너 혼자 여기까지 올 수 있겠니

 

안개가 자욱한데, 내 모습을 볼 수 있겠니. 하지만 다행이구나, 오랜 가뭄 끝에 강물이 말라 건너기는 쉽겠구나. 발 밑을 조심하렴. 밤새 쌓인 적막이 네 옷자락을 잡을지도 모르니 조심해서 건너렴 (중략)

 

1. 너 혼자 내려갈 수 있겠니

2. 너 혼자 눈물 닦을 수 있겠니

3. 너 혼자 이 자욱한 안개나무의 둘레를 재어볼 수 있겠니

 

 

지난 22일 총회날은 참 감사했습니다. 강당이 좁아서 다 들어가지 못했는데도 불평하지 않으셨고, 모두 학교에서 준비한 실내화를 신거나 아예 댁에서 실내화를 준비해오시기도 했습니다. 우리 선생님들의 촌평을 전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감동적!"이라고 했습니다. 준비도 미흡한 채로 부탁을 드려 오히려 송구스러울 지경이었습니다. 사정이 있으면 그냥 출입하시라고 부탁드리고 싶기까지 했습니다. 그 이후, 개별로 방문하시는 분들도 실내화를 잘 활용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학교 아이들처럼 우리 학부모님들도 참 특별한 분들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학교는 특별한 학교'라는 제 인식을 들어 "역사는 짧지만 그 인식이 전통이 되게 하자"는 운영위원장님(이화경)의 말씀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사실은 그렇습니다. 이 학교는 이른바 교육의 수요자인 여러분의 학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날은 여러분 중의 당번이 학교에 먼저 나오셔서 실내화를 점검하신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일쯤은 우리가 할 테니 그 시간에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치거나 가르칠 준비를 하세요."

 

그 날 저희가 마련한 프로그램에는 아직 미흡한 부분이 많았겠지만, 한 가지만 예시해보면 '교육 활동 소개 영상 자료'를 들 수 있습니다. 학부모님들은 일반 교과 시간의 활동 모습을 더 많이 보고 싶었겠지만, 그 날 보여드린 사진들은 거의 대부분 특별활동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하기야 그런 사진을 많이 찍어두기가 쉽지는 않지만, 앞으로는 교과별 학습 과정, 학습 결과물들도 많이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들에게도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그 영상 자료 시작 페이지가 생각나십니까? 우리 학교 건물의 일부가 보이고 아이들 몇 명이 교문 쪽에서 무얼 쳐다보고 있는 사진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런 사진에서 주인공은 보이지 않고 조용하기만 한 교정을 찍은 '죽은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이들이나 아이들이 공부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사진이라면 그건 흡사 아름다운 경치를 찍어서 만든 달력처럼 '죽은 사진'일 뿐입니다. 저희는 우리 학교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장면에서 아이들을 가운데에 두고 계획하고 실천하고 평가하려 합니다. 이걸 저희는 '학생 중심 교육과정 운영'이라고 이름 붙이고 있습니다.

 

학생 중심 교육과정 운영에서는 아이들의 자기 주도적 활동을 중시합니다. 우리가 학교에 다니던 옛날에는 지식知識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일치된 견해로 확인될 수 있는인 것이었으나, 지금 세상은 워낙 변화가 많고 빨라서 그 지식을 다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없지 않습니까. 또 얼마든지 새롭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 지식이며, 그러한 지식은 그러므로 너무나 전문적인 것이어서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창조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날 교육자들은 아이들로 하여금 해결해야 할 문제를 스스로 인식하도록 안내하고,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한, 말하자면 고뇌에 찬 개별적인 학습 여행을 잘 시키는 것이 훌륭한 교육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그러한 학습 여행을 계속하면서 문제 해결력, 사고력, 창조력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하나 다 가르쳐주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어쩌면 쓸데없는 짓이므로 자기 주도적으로 그 길을 가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교육이 될 것입니다.

 

'너 혼자 갈 수 있겠니?' '너 혼자서라도 길고 긴 여행을 할 수 있겠니?' '눈물 닦으면서도 갈 수 있겠니?' '어떠한 어려움도 이기며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겠니?' 저는 제가 맡은 이 아이들을 그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2006년 3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