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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1

학교행사와 청소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초등학교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학교행사와 청소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

 

 

 

교장이 되어 지내다보니 학교의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혼자 안고 가는 듯한 외로움 같은 걸 느끼기도 합니다. 그 어려움을 다 말씀드리는 건 도리도 체면도 아닐 것 같아서 그만두겠습니다만,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예만 들어보겠습니다.


우선, 어떤 교육활동을 새로 시작하거나 좀 수준 높게 바꾸고싶어도 예산이 부족하여 뜻 같지 않습니다. 학부모님들께서 많이 성원해주시기는 하지만, 가령 새로운 스타일의 '학년별 체육대회'나 '성복골 축제'를 한다고 하면 대부분 아이들의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해도 아무래도 예산이 뒤따라야 할 것은 물론입니다. 우리 학교 같으면 국가에서 주는 예산이 연간 약 2억원인데 전기료만 해도 2400만원이나 되고, 게다가 올해는 기본예산의 10%를 절감하게 되었으므로 웬만한 일은 엄두가 나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주어진 예산을 집행하는 데는 요모조모 지혜를 발휘한다 해도 다른 어려움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학교 강당은, 사실은 비가 올 때 체육교육을 하기 위한 시설이므로 그곳에서 행사를 치르기에는 너무 좁습니다. 그래서 입학식이나 축제, 졸업식 같은 것을 하려면 아이들을 일부만 들여보내는데도 정작 손님으로 초대된 학부모 여러분께서는 대부분 강당 앞 복도에서 서성거려야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지난 해 축제 때는 어떤 분이 "이르려면 왜 초청했나?" 불쾌감을 표시하셨다는 말을 전해듣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예산을 확보하여 강당을 지으면 되지 않겠나' 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건물을 더 지을 만한 터조차 없는 것이 우리 학교 실정입니다. 그래서 어떤 선생님은 "아예 다음 행사 때는 한 집에 한 분만 오시도록 티켓이라도 만들어 배부하자"는 기발한 안을 내기도 했고, 수지 시내의 널따란 시설을 빌려 행사를 하자는 안도 나왔지만 그것도 그리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번 그럴 수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행사를 마친 아이들이 나가고 학부모님께서도 돌아가신 강당이나 복도를 둘러보면 흙먼지가 휘날리고 있으니 이 또한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나서서 "이제부터 실내화를 내놓아 학부모님들께서 신발을 갈아 신고 들어가시게 하자"고 했는데, 이번에는 실내화 당번으로 서 있던 아이들이 그 신통치 않은 실내화를 아무도 갈아 신지 않는다고 울상을 하여 "할 수 없다. 그냥 두자."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하자니 공중목욕탕 생각이 납니다. 여러분도 그 밀폐된 탈의실에서 속옷을 훌훌 터는 사람을 보신 적이 있으시겠지요. 저 자신도 별로 깔끔하지는 못한 사람이지만 그런 장면을 보면 분통이 터져 참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때는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여보세요. 그렇게 하시면 그 먼지를 누가 마십니까? 당신도 마실 수밖에 없잖아요!" 마음 같아서는 이렇게 쏘아붙이고 싶기도 했습니다. "댁에서도 옷 입을 때 그렇게 하십니까? 그럼, 댁에서나 실컷 그렇게 하세요, 이 한심한 양반아!"


이런 이야기까지 하고 나니까 이야기를 이어가기가 좀 어렵게 되었지만, 사실은 학부모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어쩌다가 한번 학교에 가고, 간단히 벗을 수 있거나 아무데나 벗어 놓을 수 없는 신발을 신고 가는데 그걸 가지고 문제삼나?" 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일로 하루에도 여러 분이 오시는데, 모두들 신발을 갈아 신지 않고 그대로 오가시니 제가 보기에는 민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은 특히 1학년 학부모님들께서 자주 창문 너머로 교실을 들여다보시고 있습니다. 그 마음이야 짐작하고도 남지만, 신발을 신은 채 복도에 서 계시는 그 모습은 보기에 그리 좋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누가 보거나말거나 춥거나말거나 비가 오거나말거나 실내화로 갈아 신으며 출입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어른이 되면 실내화 신지 않아도 되겠지요?" 그렇게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그래서 학부모님께서도 실천하시도록 본관 뒤쪽 입구에 신발장을 비치해두었습니다. 아이들을 생각하셔서 한번 실천해보시면 어떨까요. 학교에 오실 때는 간편한 신발을 신고 오시면 갈아 신기에도 좋지 않을까요.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내 아이는 청소나 하고 살 아이가 아니다. 청소지도는 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학부모가 계시다는데, 그것은 정말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는 청소조차도 하나의 전문적인 업무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우리를 따라다니며 청소나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높은 직위에 있어도, 아무리 전문적인 일을 한다 해도 언제나 자신의 주변을 스스로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좋을 사람이 그렇게 할 때 그는 더욱 빛날 것입니다.

 


2006년 3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