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복초등학교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아이들의 눈, 아이들을 보는 눈
고속도로가 한산한 날은 좀 일찍 출근하게 되고 그런 날 아침에 몇몇 교실에 가보면 참 좋습니다. 한가하게 아이들의 눈동자를 살펴볼 수 있어서 제가 살아가는 의미가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을 실컷 보면서 지낼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 아니라면 세상에 또 무엇이 행운이겠습니까.
지난 겨울은 참 쓸쓸했습니다. 학교에 와봐도 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이곳저곳 잔설(殘雪)이 을씨년스럽고, 우리 학교가 위치한 환경 때문인지 새삼스레 자꾸 제 어린 시절의 구차했던 그 시골 일들도 생각나고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개학이 되자마자 정든 6학년 아이들이 졸업을 하고 교문을 나서더니 재학생들마저 봄방학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고 나니까 학교는 또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여러 선생님들이 다른 학교로 간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또 섭섭하고 허전해졌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3월 2일, 새 학년 시업식과 유치원·1학년 입학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학교로 가신 선생님보다 더 많은 선생님들이 우리 학교로 왔습니다. 학교가 갑자기 부산해지고 생기가 돌게 된 것이지요.
올 입학식날은 날씨가 쌀쌀함을 느끼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부모님들께서 한 집에 한 명씩만 오셔도 좋을텐데 서너 명씩은 오신 것 같았습니다. 강당에서 입학식을 하고 운동장으로 나가서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장래에 대한 부모님들의 소망을 쓴 테이프를 매달아 풍선을 날렸습니다. 그 일은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여러 부모님께서 자녀들에게 그 풍선을 맨 끈을 한번 잡아보라고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분들이 자녀들에게 그렇게 부탁하신 그 마음을 여러분은 충분히 아시겠지요. 그 끈을 한번 잡아보면 그 테이프에 새긴 소원이 다 이루어질 것 같고, 그 아이가 학교생활을 훌륭하게 해낼 것은 물론 장래 자랑스런 인물이 될 것은 '따놓은 당상'이거나 최소한 무언가 정서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 같은 심정이었겠지요.
구체적으로, 어떤 기원, 어떤 축하와 기대를 담은 것인지를 보려면 지금이라도 1학년 교실 복도에 가보면 됩니다. '아이를 학교에 입학시키는 부모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궁금해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만큼 뻔합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한결같이 본심을 털어놓은 메시지들이기 때문입니다. "축하한다" "너무나 기쁘고 자랑스럽다"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밝고 건강하게 자라라" "즐겁게 지내라" "씩씩하게 생활해라" "무럭무럭 자라라" "학교는 즐겁고 신나는 곳이다" "좋은 친구들 많이 사귀어라" "늘 행복하고 즐겁게 지내라"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해라" "공부도 중요하지만 친구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라" "화이팅!" "알라뷰" …….
각 반별로 소망을 담은 세 무더기의 풍선은 멀리멀리 날아갔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그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기원하신 것들은 잘 이루어질 것입니다. 선생님들도 날아가는 풍선을 지켜보며 다 그렇게 기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학교는 특별한 학교입니다. 저는 그것을 이번에야 알았습니다. 우선, 이렇게 3월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을 통하여 확인했습니다. "새 담임선생님, 어때?" 아이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참 좋아요." 그러나 그렇게 대답할 때, 우리는 그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눈을 봐야 겉으로만 그렇게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슴속에 담겨 있는 느낌이 그대로 대답이 되어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새로 오신 선생님 몇 분에게 질문해보았습니다. 사실은, 이 질문을 하면서 제 가슴은 두근거렸습니다. 아이들이 아무리 제 담임선생님을 좋아한다고 해도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을 그렇게 보고 있지 않다면 모두 헛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일단 안심할 수 있게 되었고, '우리 학교는 특별한 학교'라는 생각이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선생님들도 우리 아이들을 '좋은 아이들'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하나가 밝고, 씩씩하고, 이쁘고, 귀엽고, 게다가 제 할 일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아이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사를 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답니다. 아이들은 으레 "안녕하십니까?" "안녕히 계십시오"만 외기가 일쑤인데, 이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진지 맛있게 드세요" "죄송해요" "그렇게 할게요" "선생님, 오늘은 멋쟁이 옷을 입고 오셨네요?" 혹은 "선생님, 어디 편찮으세요?" …… 때와 장소, 상황에 맞추어 제 머리와 가슴속에 자리잡고 있는 선생님에 대한 느낌이 인삿말이 되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특별한 학교는 아이들과 부모님, 아이들과 선생님, 그리고 드디어 부모님과 선생님의 생각과 느낌이 일치하는 학교입니다. 말하자면 아이들을 보는 어른의 눈과 아이들의 눈이 일치하는 학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학교의 교장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살아가는 것이 따뜻한 것임을 느낍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함께 명심할 것은, 이 아이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는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알아주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2006년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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