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복초등학교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아이들 하나하나에 대한 이해
미국의 저널리스트 핼 볼랜드는 '가을은 이해의 계절 Autumm is for understanding'이라고 표현했답니다(장영희 에세이, 『내 생애 단 한번』, 샘터, 2000에서 인용). 그렇겠지요. 봄에는 약동, 희망, 기대 같은 걸 느끼게 되고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면 누구나 삶의 의미를 포함하여 무언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해석하는 시간을 가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생활하면 저 아이들과의 인연 때문에 그 보편적인 감정, 정서와 다른 감정, 정서를 느끼게 마련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새 학년이 되어 새 담임선생님, 새 친구들을 만난 아이들은 자기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저마다 아우성입니다. "선생님, 선생님! 제발 저 좀 보세요. 저 좀 쳐다보아 주세요." "저는 이런 아이예요. 저를 제대로 파악해주세요." "저는 여기 있어요." "저요, 저요!" 그런가하면, 그런 아이들 속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아이도 우리의 눈길을 끌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35명 중 34명을 잘 돌보고 가르친다해도 나머지 한 명을 놓친다면, 그 한 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제대로 된 교육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학교에서 생활하는 저로서는 「봄은 이해의 계절 Spring is for understanding」이라는 표현을 하고싶습니다.
이해는 교육의 출발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무수한 사물을 보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잡다한 일들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러한 사물과 그러한 사람, 그러한 일들 중에서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에만 이해가 깊어지며, 그처럼 이해가 깊어지는 것들에 대해 애착을 느끼게 되고 드디어 그것을 사랑하게 되며, 사랑하는 사람과 사물, 일들에 나의 모든 것을 주고싶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돌보고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가령 어떤 교사가 '어떠어떠한 아이만 사랑스런 아이'라는 관점을 뚜렷이 해놓는다면 그러한 아이말고는 모두 사랑스럽지 않은 아이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생님들은 어떻게 모든 아이를 다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알고 보면 아주 간단한 이치에 따른 것입니다. 아이들은 모두 개성을 가지고 있고 그 개성이야말로 우리가 그대로 인정해주어야 하는 것이며(우리들 중 아무도 다른 사람의 개성을 무시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오히려 그 개성을 잘 살려주어야 그 아이만의 장점을 살리는 것이고, 드디어 그 아이만이 할 수 있는 일로써 이 세상을 더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실로 모든 사람이 다 제 할 일에서 자기만의 보람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생활을 할 때 정말로 살기 좋은 세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이런 교육을 하려면 교사와 학생간의 상호작용이 자주, 많이 일어나야 하며, 이런 교육을 제대로 하기 위해 우리 교육자들은 학급당 인원수를 더 줄이는 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학교교육을 통하여 '전인적 성장을 기반으로 하여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을 우리가 그리는 인간상의 하나로 제시하고 있습니다(김만곤 외, 『초등학교 교육과정 해설⑴』,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8). 말하자면 이 시대, 이 사회에 잘 적응하고 이 시대, 이 사회의 흐름을 주도 主導할 수 있는 사람이란 우선 지·덕·체 智德體의 조화로운 발달을 추구하되, 동시에 자신만의 독특한 삶의 스타일도 형성할 수 있는 사람,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당장 학부모님 자신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도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자기다움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을 살리고자 스스로 노력하는,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어떠한 상황에서도 독자적인 판단에 의해 자신의 삶을 용기 있게 꾸려나가는 개성 있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개성도 없이 무미건조하고 흐리멍덩한 생활을 하는 사람을 차라리 혐오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아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다른 아이와 비교하여 "너는 어떻게 그것을 못하느냐?"며 꾸중하거나 비웃거나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럴 때, 자기만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 아이들은 얼마나 억울하고, 기가 막히고, 화가 나겠습니까. 그 순간을 참는 것이 얼마나 힘들기에 마음의 상처가 되기까지 하겠습니까. 올해는 우리의 이 아이들 하나 하나가 모두 자기의 개성을 찾아 살려나가는 그야말로 보람 있는 학교생활을 해나갈 수 있기를, 저는 마음을 모아 기원하고 있습니다.
2006년 3월 24일
2006년 3월을 맞아 세 번째의 편지를 보냅니다. 사실은 지난 겨울방학 중에도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서 편지를 보내고 싶었으나,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새 학년도가 시작되고 몇몇 학부모님께서 "파란편지"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씀을 듣고 그 몇 분의 격려에 힘을 얻어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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