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기상청보다 나으면 좋을 교장의 기상관측능력

by 답설재 2007. 10. 12.

10월 9일 우리 학교 운동회 날에는 모처럼 일찍 일어났습니다. 새벽하늘에서 반짝이는 금성(金星)이 아름답고 다행스러웠습니다. 서양에서는 금성을 사랑과 미의 여신의 이름을 따서 ‘비너스’라고 부른답니다. 그 별이 지구와 태양의 사이에 있을 때에는 약 4,000만 km 이내까지 접근하므로 달 다음으로 밝게 빛나는 별입니다. 자주 보셨겠지요. 제법 쌀쌀한 듯한 새벽 공기가 못마땅하기는 했으나 비가 내리는데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 개회식을 진행할 때만 해도 한기(寒氣)를 느꼈으나 이내 포근해졌고 운동장을 달리는 아이들은 더위를 느낄 것 같았습니다. 종일 높고 푸른 우리의 전형적인 가을 날씨여서 저 아득한 기억 속의 어린 시절 그 시골 운동회 날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내빈의 자격으로 우리 학교를 찾은 사람들은 모두들 날씨 이야기를 했으므로 내게는 축복으로 들렸습니다. 오죽하면 인근 어느 학교에서는 기상청의 예보를 믿고 운동회를 강행했다가 중도에 그치기도 곤란하여 비가 오는데도 그냥 진행했겠습니까. 비가 오는데도 강행한 그 학교는 아마 이제는 기상청의 예보도 믿을 수 없으니 그냥 하고 말자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위원장이어서 그 자리가 빈 채 회의가 진행되었을 ‘슬기로운생활’ 교과서 원고 심의회에 참석하지 못한 것도 전혀 안타깝지 않았습니다.

 

그 전 주 토요일(6일) 아침에 교무부장 선생님께서 이제는 더 기다릴 수 없으므로 운동회 예고를 하겠다면서 물었습니다. "비가 오면 순연하겠다고 할까요?" "물론이죠." 그렇게 대답하면서 아침에 텔레비전에서 보고 나온 기상청 예보의 그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해'와 '비'가 함께 그려진 그림으로, 그 그림을 보면서 아마 제주도 쪽에는 비가 오고 이곳은 맑겠다는 뜻이려니 좋게 해석하기도 했었습니다. 태풍 '크로사'의 간접 영향으로 다음 주 수요일(10일)까지는 비가 오겠다는 예보도 있었으므로 그날 아침 교무부장 선생님이 교장실을 나간 뒤 인터넷을 통해 마지막으로 확인한 다음 주 예보는 적어도 수요일까지는 비가 내린다는 예보는 아니었으나 이제는 그것도 미덥지 않았습니다. 기상청에는 매우 미안한 표현이지만 그 자료를 믿을 수가 없었으므로 당연히 '우천시는 순연'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감선생님 두 분, 행정실장과 미팅을 하며 "이번에 또 비가 오면 이제는 운동회를 포기해야 할 것"이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기상청에는 미안하다는 표현은 사실은 원망스러운 느낌도 포함하는 표현입니다. 웬만하면 미안할 것까지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난 9월 18일은 정말로 원망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비가 온다 해도 저녁때나 올 것처럼 예보한 것이 빗나가 아침부터 시작된 비가 오전 9시가 되자 그야말로 주룩주룩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모처럼 학교에 오신 학부모님들은 - 그분들 중에는 당연히 연가를 내신 분도 계시겠지요. - 도무지 집으로 돌아가실 생각을 하지 않으셨고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한둘씩 발길을 돌려 나로서는 그야말로 곤혹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런 입장의 학부모님들은 며칠 후 추석연휴로 적어도 4~5일씩 회사를 쉬고 다시 자녀의 운동회 날이라고 연달아 연가를 내셨는데 또 비가 온다고 가정해보십시오. 내 꼴이 뭐가 되겠습니까. 사실은 자꾸 회사를 쉬어야 하는 학부모님들의 입장에 대한 생각으로 추석 연휴 바로 다음 주인 10월 초에 운동회 날을 잡지 않고 한 주를 건너서 둘째 주 화요일인 9일로 날을 잡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기상청보다 관측능력이 더 나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고, 10월 1일 월요일 아침 운동장에서 열린 조회에서는 "비 오는 날을 운동회 날로 잡아서 여러분을 실망시켰으므로 대단히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10월에는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하고 전교생에게 사과도 했었습니다.

 

신문보도를 보았더니 기상청에서는 지난 2004년에 500억원을 들여 미국에서 슈퍼컴퓨터 2호기(연산능력 세계 4위인 기상 컴퓨터)를 들여왔는데도 호우에 대한 특보 정확도는 이전(74.7%)에 비해 오히려 더 낮아졌고(66.3%), 대설, 황사, 태풍을 포함한 4대 특보의 정확도는 79.4%에서 72.1%로 오히려 낮아졌다고 합니다(오죽하면 지난해 4월에는 기상청장이 황사 오보에 대한 공개사과까지 했겠습니까). 어느 신문에서는 "동전 던지기보다 못한 기상관측"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그 통계를 실었습니다. 안타깝고, 납득하기가 어렵고, 의아해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기상청의 오보 이유는, 컴퓨터만 슈퍼이고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수치예보모델)은 17년째 구식 일본 모델을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예보관들의 역량과 예보 시스템이 뒤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 잠정적인 결론이라고도 했습니다. 기사를 살펴보면 전문가들은 2009년에 다시 500억원을 들여 슈퍼컴퓨터 3호기를 들여오기로 한 것도 못마땅해 하는 것 같았습니다. 말하자면 그런 장비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 장비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장비부터 갖추어 놓고 연구해야 하는 것인지, 연구부터 잘 하고 장비를 갖추어야 하는 것인지.

 

9월 18일, 비 내리던 그날 어느 어머님께서는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학교는 행사 때 절대로 비가 오지 않았는데요." 정말로 그렇다면 그 말씀을 하지 않으셨겠지만 나는 그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했고, 이래저래 '폼 나는 교장'이 되기는 참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나는 앞으로 또 큰 행사가 다가오면 이번에는 어떤 판단이나 예감으로 날짜를 잡는 것이 현명할지 깊은 고민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들이 장차 이 세상의 흐름을 주도해나가게 되는 날, 그 중에는 기상관측에 관한 멋진 전문성을 갖춘 인물도 있기를 또 한번 기대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돈을 얼마나 버느냐 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일입니다. 그러면 어떻겠습니까. 그로 인해 우리 국민들의 생활이 몰라보게 편리해질 테니까요. "와, 대단하다. 남양주양지초등학교를 나온 사람이라며?" 신문이나 방송기자들이 그렇게 말하겠지요.

 

 

 

'학교장 컬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주회 풍경과 교실 풍경  (0) 2007.10.22
오남에 사는 이유  (0) 2007.10.17
전근 축하 전보와 편지  (2) 2007.10.04
노老 교사의 힘  (0) 2007.10.01
학교장 칼럼을 시작하며  (0) 2007.09.28